이분들, 다음부터 사라오름 출입금지입니다

[제주기행] 작은 백록담, 사라오름 산행

등록 2011.10.19 14:04수정 2011.10.1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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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판악의 가을 제주에도 가을이 성큼성큼 ⓒ 김향미


언제나 여행은 설렌다. 한 시간이든 일주일이든 한 달이 되든 일 년이든. 짐을 챙겨 떠나고 마음을 비우고 다시 돌아오는 그 길은 똑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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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판악의 가을 나뭇잎 결이 세월의 흔적같다.. ⓒ 김향미


모처럼 두 시간 이상 하게 될 산행에 몸과 맘은 벌써부터 긴장이다. 게다가 17년 만에 오르는 한라산이라니. 등산화도 없이 눈보라를 파헤치고 오른 첫 산행에서 우린 백록담을 보고야 말았다. 발아래 걸린 눈구름과 섬 둘레를 따라 퍼진 검푸른 바다와 '파아란' 하늘.


하늘은 파랬다. 지나간 17년과 앞으로의 17년을 생각하기에 더없이 상쾌한 날씨다. 물론 환갑이 되어서야 다시 오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 건 아니다. 햇살과 바람에 울긋불긋 물오른 단풍을 바라보노라니 아열대만 같던 제주에 찾아온 가을이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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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과 호돌이 곰인가 호돌이인가? ⓒ 김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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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남향이 좋아.. 사라오름 전망대에서 위미항을 바라보고 해바라기.. ⓒ 김향미


명승 83호로 지정되었다는 '사라오름'에 다녀왔다(물론 그곳이 명승으로 지정된 것은 이 글을 쓰는 지금 알게 되었지만). 사라오름에 대해 처음 들은 건 지난 4월 제주로 여행 온 후배를 통해서다.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진 모양이다. 한라산에 있는 40개나 되는 오름 중, 사라오름이 처음으로 작년 가을에야 일반에 개방되었다니 그 이름이 낯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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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고 마중나온 여치군^^ 우리도 반가워~~ ⓒ 김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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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없는 고라니 조릿대를 야금야금 먹고있다.. ⓒ 김향미


8시, 백록담에 오르는 마지막 팀들과 섞여 드디어 출발이다. 곱게 붉은 옷으로 단장한 단풍나무들이 햇살에 반짝이며 웃음 짓고 길 양 옆엔 조릿대가 빽빽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산길이라니. 한 시간 남짓 올랐나 했는데, 해발 1000미터 표석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조릿대와 나무숲. 한 시간 안짝으로 오르면 탁 트인 밭들, 돌담,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오밀조밀하게 서로 벗한 듯 다정하게 솟아오른 오름들이 평화롭게 펼쳐보이던 고즈넉한 오름 나들이와는 다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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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점심시간~! 사라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백록담 햇살만큼이나 따사로운 풍경.. ⓒ 김향미


재잘재잘 소곤소곤 쑥덕쑥덕 뽕짝뽕짝.. 단풍보다 더 다채로운 등산객들의 옷차림도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아~ 우리만 빼고 저 사람들 전부 백록담으로 빠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라오름으로) 빠지는 게 아니고?"
"…."


이렇게 가끔 '우주의 중심이 나'라는 주관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사는 날 일깨워주는 남편이 있어 참 다행이다. "그럼, 네가 싸~!"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썰고 볶고 지지며 애써 준비해준 재료로 '옆구리 터지는 김밥을 싼다' 구박할 때 타박 주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니다. 햇살에 고맙고 단풍에 고맙고 여치와 고라니에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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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를 찍다 남원을 담는다고.. ⓒ 김향미


정말 사라오름 입구까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사라오름 분화구를 거쳐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은 가파르긴 해도 나무로 계단과 데크를 만들어 수월하게 오르내릴 수 있게 돼있다. 물론 그곳에 사는 동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아마도 사라오름이 명승으로 지적된 이유가 모르긴 해도 작은 백록담으로 부르는 '산정화구호' 때문일 게다. 오늘은 노루오줌처럼 고여 있지만 장마철엔 데크까지 차오르도록 물이 고인다니까, 내년 여름에 다시 찾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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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오름 산정화구호 오늘은 노루오줌이지만, 내년 여름엔 커다란 호수가 될거요... ⓒ 김향미


백록담을 쳐다보며 전망대에 앉아 이른 점심을 먹고 하산하는 길, 올라갈 때 생각했던 것보다 경사가 가파르다. 오래간만에 하는 대여섯 시간 산행에 돌길이라 내려오면서 무릎이 꺾인다. 마음도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빗자루를 들고 다니며 미생물 하나도 죽이지 않으려는 자이나교 신자까지는 아니어도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버젓이 붙어있는데, 그 너머에서 촬영과 식사를 하는 사람들. 담부터 '사라오름 출입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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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 사라오름 출입금지.. 젊은 분들이... ⓒ 김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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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도, 사라오름 출입금지.. 점잖은 분들이.. ⓒ 김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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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오름 왕복 4~5시간이면 족하다.. ⓒ 김향미

덧붙이는 글 | 967일간의 배낭여행을 하고 [길은 사람사이로 흐른다](예담) 책을 펴낸 후, 4년 만에 다시 한달동안의 짧은 여행을 했다.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좋은생각)에서 라오스여행과 우리들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967일간의 배낭여행을 하고 [길은 사람사이로 흐른다](예담) 책을 펴낸 후, 4년 만에 다시 한달동안의 짧은 여행을 했다.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좋은생각)에서 라오스여행과 우리들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사라오름 #한라산 #제주도 #길은사람사이로흐른다 #시속4킬로미터의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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