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나오는 데 10분... 이 카페 '별꼴'이네

[인터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카페, '별꼴'의 사람들

등록 2011.10.31 10:45수정 2011.10.3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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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커피 한 잔이 간절할 때가 있다. 하지만 막상 나서려니 도통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마땅한 카페가 없어서다. 소규모 커피 전문점들은 프랜차이즈에 밀려 동네를 떠났다. 대형카페에 가자니 그 북적북적함을 견딜 자신이 없다. 진정 트레이닝복 차림의 나를 반겨줄 '동네 카페'는 없는 것인가! 비탄에 빠져있던 그때, 트위터 타임라인에 '별꼴'이라는 별난 카페가 등장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세상에, 우리 동네에 있잖아.

27일 오후, 조금은 특별한 카페 '별꼴'을 찾았다. 이곳은 우선 커피가 느릿느릿 나온다. 5가지 정도의 단출한 메뉴 가운데 카푸치노를 선택했다. 주문과 동시에 커피를 내어주는 테이크아웃 전문점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10분이 지나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커피에 슬슬 조바심이 났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풍부한 거품에 잔이 큰 탓인지 양도 많다. 게다가 맛있다! 따끈함을 즐기며 커피를 내려준 바리스타의 모습을 찾았다. 조심스러운 손길의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렇다. 바리스타 김명학씨는 뇌병변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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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카페 '별꼴' 내부 ⓒ 박가영


별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곳, 카페 '별꼴'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둥지를 튼 문화예술카페 '별꼴'은 이러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위해 태어난 곳이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카페는 아니기에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카페를 열게 되었는지 직접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바리스타 김명학씨, 매니저 사비(가명)씨와 마지연씨가 바로 그들이다.

- 이름이 특이하다. '별꼴'을 카페 이름으로 정한 이유는?
사비 : "쉽게 정해진 이름은 아니다. 후보가 많아서 하루 만에 정할 수 없을 정도였다. '꼴값', '삼류인생' 등 익살스러운 것부터 저항적인 이름까지 종류가 많았다. 그러나 듣기에 과격한 것은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별꼴'로 정하게 되었다. '별꼴'에는 '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별 사람이 다 있는, 그래서 별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이라는 뜻을 담았다."

- '별꼴'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사비 : "문화예술카페 '별꼴'은 장애인 극단 '판'의 문화사업으로 시작되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카페를 선택하게 되었다. 원래 김명학씨는 노들장애인야학에 있었고, 매니저인 우리(사비씨, 마지연씨)는 인문학 모임인 '수유너머R'의 세미나로 알게 된 사이다. 총 다섯 명이서 이 사업을 기획하고 꾸려나가고 있다."


- 카페를 열기까지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사비 :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재정적인 어려움이 가장 컸다. 다행히 한국교육진흥원으로부터 지원을 받았지만 그 과정도 녹록치 않았다. 이런 공간을 만들고 카페를 운영한 선례가 거의 없는지라 의구심을 갖는 분들도 있었고, 때문에 지원금을 따내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마지연 : "카페의 방향성을 정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일반적인 복지관이나 장애인 센터와는 그 성격이 분명 달라야 했는데 이 점을 어떻게 차별화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공간이지만 자칫 한 쪽만을 위한 공간이 될까 염려스러웠다. 대화와 휴식에 초점을 맞춘 '카페'에 무게를 실어야 할지, 아니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위한 '활동'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할지. 지금도 고민스럽지만 차차 운영해나가며 균형을 맞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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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나 세미나를 열 수 있는 공간. 휠체어가 없으면 13명까지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 박가영


- 장애인 자활공간으로 카페를 선택한 것이 인상 깊다. 운영 방침에 대해 알고 싶다.
마지연 : "운영시간은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이고, 앞서 말했듯 5명의 멤버가 돌아가며 카페 운영을 맡는다. '별꼴'은 사회적 기업의 일환으로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이윤을 창출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남아 있었으면 한다."

- 김명학씨가 직접 커피 내리는 일을 하시는데, 일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김명학 : "아무래도 손에 익은 일이 아니다 보니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또 거의 대부분의 커피전문점용 가구들이 비장애인들의 신체구조에 맞춰져 있다 보니 눈높이보다 너무 높고 사용하기 불편할 때가 많다."

- 일하면서 느낀 점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김명학 : "우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것'이 좋다. 몰랐던 것을 서로 물어보고 알려주면서 도와가는 이 과정이 보람되고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사비 : "그렇다. 특히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내가 대충대충 처리하는데 반해 명학 삼촌이 훨씬 꼼꼼하고 섬세하다.(웃음) 이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좋다.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역시 카페 오픈 날의 기억이다. 카페에 도움을 주셨던 분들과 인근 지역주민들까지 참석해 주셔서 기뻤다. 또 아직까지는 주변 분들만 입소문을 타고 오는 편이라 새로운 손님이 오면 무척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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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맞이에 분주한 '별꼴' 직원들 ⓒ 박가영


"'느리지만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기억해주세요"

- 재정적인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
사비 : "메뉴 가격을 정하는 것부터 운영비를 산출하는 것까지 전부 멤버들이 맡아서 운영을 하고 있다. 처음 카페를 시작할 때는 재정 지원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카페 수익만으로 자립·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마지연 : "이윤을 축적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공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꾸준히 수익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동시에 진행되는 '카페'인만큼 책임을 갖고 운영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하루 매출이나 직원 월급 등이 궁금하다.
사비 : "요즘은 하루 3만 원에서 5만 원 정도. 계속해서 운영해 나가려면 이보다는 더 많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김명학 : "월급은 최저임금에 맞춰 산정하고 있다."

- 장애인 자활 사업과 대안공간 마련을 위해 카페 말고 다른 방안을 생각하고 있나?
사비 : "카페 외에도 다양한 대안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지적장애인들의 자활을 돕고 이들이 직접 구운 유기농 쿠키를 판매하는 위캔쿠키, 노들의 장애인 현수막 포장사업, 우편물 DM 발송 등 장애인의 직업자활을 돕는 여러 사례가 있다.

그리고 우리처럼 카페를 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안에서 인문학 강의를 연다든지, 전시·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면 수익은 물론 문화·예술 부분에서 소외된 다른 장애인들이 이런 프로그램들에 직접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규모가 커지면 그런 사업들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 그렇다면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들의 관심이 절실해 보인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김명학 : "따로 '노력'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저 평범한 카페에 오듯이 편한 마음으로 찾아주시면 된다.

사비 : "'저 카페는 장애인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더 도와줘야 해'가 아닌, 동네에 있는 보통 카페에 온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다만 속도의 차이는 어느 정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비장애인의 기준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장애인들의 눈높이에서 다가와주셨으면 한다. 비장애인들이 5분 만에 할 일을 장애인들은 30분에 걸쳐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그것은 속도의 문제 일뿐 결과에는 별 차이가 없다. '느리지만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 앞으로 별꼴이 지향하는 공간은 어떤 것인가?
사비 : "별꼴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하는 공간'을 표방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구에게나 편안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장애인에게 편안한 공간이라면, 비장애인은 물론 노인이나 어린이에게도 접근하기 편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공간 안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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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꼴을 꾸려나가는 사람들. 차례대로 김명학, 사비, 마지연 씨 ⓒ 박가영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카페 '별꼴'. 별 웃기는 사람, 별 희한한 사람 모두가 모여 신기하고 재밌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그들의 바람을 실현하기에 '별꼴'은 더없이 알맞은 공간이다. 11월부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베이킹 클래스 '가난뱅이 생활기술 워크숍'과 시·소설 읽기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니 깊어가는 가을을 뜻있게 보내기에 썩 괜찮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별별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면, 혹은 그저 커피 한잔 하고 싶다면 '별꼴'을 찾아가보라. 따뜻한 미소로 당신을 맞아줄 테니.

덧붙이는 글 | '별꼴' 온라인 까페 : http://cafe.naver.com/byulkkol


덧붙이는 글 '별꼴' 온라인 까페 : http://cafe.naver.com/byulkkol
#별꼴 #문화예술카페 #사회적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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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1기로 활동했습니다. 사람과 영화가 좋습니다. 이상은 영화, 현실은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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