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지방자치에 내각제를 도입하자

박원순 후보 선거운동을 마치며

등록 2011.10.31 13:16수정 2011.10.3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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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일 정도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의 공동선대본부 구로갑 지역 선거사무원으로 등록, 직접 선거운동을 했다.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지하철역/버스정류장을 찾아 이른 새벽부터 출근인사를 하고, 이후 낮시간에는 지역의 상가방문 및 거리유세를, 저녁시간에는 다시 전철역 등을 찾아 퇴근인사를 했다. 또 중간중간 후보의 직접유세를 지원하기 위해 영등포역, 구로시장, 고척근린공원, 광화문 등을 찾기도 하였다. 

 

아마도 매번 선거들이 그랬겠지만 이번 선거도 서로 다른 대안을 내놓고 다투는 정책선거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선거공약집을 직접 나누어 주며 선거운동을 했던 나 자신조차도 얼른 기억나는 공약이 제대로 없다. 온갖 네거티브 선거전에도 끝내 박원순 후보가 승리한 것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 그리고 전임 시장 및 MB정권에 대한 분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야권이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렇게 환호할 일만은 아니다. 박원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매번 열광적이지만은 않았으며, 소규모 자영업자들을 찾아가서 박원순 후보가 서민을 위한 후보임을 내세워도 그들의 반응은 대부분 무덤덤한 정도였다.

 

한 번은 이른 오후 떡볶이, 오뎅을 파는 작은 가게에 들어섰을 때, 장사준비를 하시던 3명의 아주머니 가운데 한 분이 나를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아직 마수걸이도 안했으니 얼른 나가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나를 바라보던 다른 아주머니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려주어서 잠시 지지를 호소할 수 있었다. 가게를 나서며 나의 모습이 마침 비가 내렸던 날이라 우산을 지팡이 삼아 들고 있었고, 선거운동용 앞치마를 두르고 있어서 모양새가 딱 걸인과 비슷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쓴웃음이 일었다.

 

슈퍼, 문방구, 분식점, 치킨점, 술집, 철물점, 세탁소, 부동산, 소형 학원, 식당, CD대여점 등 수많은 자영업자들에게 새로운 서울, 변화하는 서울을 말하거나 선거공약집을 건네며 지지를 호소했을 때 그들의 무표정한 표정이나 건성으로 나오는 대답은 이러한 선거운동보다 차라리 내가 1000원짜리 손님이 되는 게 훨씬 더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의 선거운동이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며, 반드시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후 시장, 도지사, 군수, 구청장 등의 선출방법과 관련, 지방자치단체장을 따로 뽑지 말고 시의원, 도의원, 구의원 등을 다수 배출한 정당에서 자치단체장이 나오도록 지방자치제도를 내각제 형태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 오세훈 시장 사례에서 보듯이 시장과 시의회가 대립하는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고, 또 시장이 임의로 사퇴할 경우 이번과 같은 보궐선거를 치르지 않고 다수당이 다시 새로운 시장을 내세우면 되므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임기 동안 책임정치가 가능하게 된다.  

 

또한 야권통합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문제점도 해소할 수 있다. 각 정당은 자신들의 정책을 가지고 시의원 선거에 참여하고, 그 선거 결과에 따라 각 당의 정책들을 협상하여 연합정부를 구성하면 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위에서 보았듯이 공허한 선거운동을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최소한 새로운 서울이나 정직한 서울 등의 막연한 구호가 아닌 지역의 현안을 찾아 시의원 당선을 호소할 것이기 때문에 시민들과 소통하는 기회가 될 것이며, 보다 많은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지방자치제 수준에서 내각제를 시범 실시하여 본 후 기존의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바꾸는 것을 검토했으면 한다. 우리는 과거의 안좋은 사례 때문에 아직 내각제를 기피하고 있으나,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내각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내각제가 민의를 보다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제도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비례대표를 늘려 다양한 정당들의 정치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양당제를 고수하려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번 기회를 계기로 정치제도 개혁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야 한다.

 

이번 선거 이후 한나라당이 환골탈태를 주장하며 혁신을, 민주당은 야권통합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자기만족적인 행위에 불과한 일이 아닐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혁신이고 야권통합인지를 국민들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후보가 당선된 이번 선거결과를 계기로 정치권은 이제 더 이상 기존의 기득권에 안주하려 하지 말고 정치 및 선거제도를 개선하여 정치권을 외면하고 있는 말없는 다수의 국민들에게 다가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11.10.31 13:16 ⓒ 2011 OhmyNews
#박원순 #정치제도 개혁 #지방자치제 #내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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