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패권주의를 파(破)함

열아홉 살 '대학을 왜 가는가?'라는 케케묵은 물음에 대한 스물아홉 살 대답

등록 2011.11.28 10:39수정 2011.11.2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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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11 : 사춘기 후기 그리고 후기 사춘기


미친 듯이 공부해도 모자랄 고3 시절에도 나는 '왜 대학을 가야 하나?'라는 치기 어린 물음을 내 자신에게 쉼 없이 해대고 있었다. 어렵사리 기회를 얻은 재수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위 물음을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대체 시인이 왜 대학을 가야하지?'였다.

반드시 대학을 가야 하는 환경 속에서 당시 내가 주로 생각했던 학과는 국어국문학과, 국어교육학과. 그런데 국문과를 나와서 시인이 되는 한결같은 이력이 구렸다. 또 다른 선택지, 안정적인 직업을 겸할 수 있는 국어교육학과란 이력은 더더욱 구렸다. 구린내 풀풀 나는 목표 속에서 나는 오도 가도 못했다. 갑갑했다. 어떤 감투도 없이 그저 홀로 시인으로 크는 것. 그것만이 내가 원하는 길이었다.

대학. 이원화된 노동시장에서 상층부로 가기 위한 필수 관문. 바꿔 말해 학벌주의와 학력주의의 재생산 기관. 대학. 취업센터. 시장에 인적자원을 납품하는 하청업체. 결국 현실을 차갑게 바라보지 못했던 내 탓이지만 이렇게 속시원히 말해주는 어른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대학부터 가고 보라는 겁주고 협박하는 분위기 속에서 기관·제도·단체·조직에 대한 종잡을 수 없는 반감만 끝 간 데 없이 커져갔다.

고3 수능 성적은 참담했다. 경상대 한문학과를 수시로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밀양대 컴퓨터공학과에 지원했다. 재수 시절 성적도 기숙학원이란 호화로운 여건에 비하면 형편없었다. 경북대 국문학과, 춘천교대, 인하대 국문학과, 철도대 시설토목과를 지원해 모두 떨어지고 고려대병설보건전문대 물리치료과에 예비합격자로 겨우 붙었다. 밀양대 컴퓨터공학과, 철도대 시설토목과, 고려대병설보건전문대 물리치료과에 지원했던 건 당시 깜냥으로 국어국문학과, 국어교육과란 문과 울타리를 넘어 이과에서 문학 세계를 넓히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들어온 보건대지만 다니는 1년 동안 열등감과 자격지심 등 불필요한 감정을 떨치지 못했다. 군대 다녀와서 보건대 한 학기 더 다니다가 마침내 휴학하고 말았다. 이듬해 겨울 한 달 동안 유럽엘 다녀와서 교대를 목표로 다시 수능 공부를 시작했고 그해 여름 자퇴했다. 다시 수능을 볼 용기는,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물리치료과를 졸업하고 교대를 목표로 수능을 준비하던 선배 등을 매일같이 보는 동안 생긴 것이고, 교대를 목표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재수하고 교대에 지원할 생각을 처음 가졌을 때 느낀 짜릿한 쾌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8년 수능. 평균 4.4등급. 주위엔 지원했다고 거짓말하고 아무데도 원서 쓰지 않았다. 2009년 수능. 평균 3.4등급. 부산교대와 춘천교대에 지원했고 운좋게 춘천교대 1차에 붙었지만 결국 모두 떨어졌다. 2010년 수능. 평균 3.4등급을 받고 원서는 쓰지 않았다. 2011년 수능. 평균 5등급. 부산교대와 경인교대에 지원해 모두 떨어졌다.


다른 한편으로 대학 탐방을 했다. 고교 졸업을 얼마 앞둔 쌀쌀한 겨울날 "입학생이요?"라는 말에 손사래 치며 후달리는 다리로 걸었던 서울대를 기점으로 재수 시절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를 두근거리는 맘으로 방문하고, 2003년에서 2006년까지 한양대, 고려대 등 여러 대학을 두서없이 방문하고, 유럽여행 하며 '나도 여기 다니면 이론 하나 쓸 것 같아!'라고 친구가 외치던 케임브리지대학, 카를 요한스 거리의 오슬로대학, 운터 덴 린덴 거리의 훔볼트 대학을 가슴 벅차게 방문하고, 2008년 1월에 서울교대 방문하고, 서울에서 밀양, 밀양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자전거로 여행하는 동안 카이스트, 포항공대, 춘천교대 등을 기분 좋게 방문하고 2008년 봄에 서울대, 서울의대, 성균관대 인문사회과학 캠퍼스, 서강대, 연세대를 본격적으로 방문하고, 2009년에 경인교대 인천캠퍼스와 서울교대를 꼼꼼하게 방문했다. 더러는 그 학교 학생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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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첫번째 유럽 여행지 케임브리지. 위 사진은 케임강과 탄식의 다리. 2007년 1월 16일 사진 찍음. ⓒ 박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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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대 자전거 여행 중 방문한 포항공대. 2008년 2월 21일 사진 찍음. ⓒ 박민식


2012 : 서른, 잔치의 시작 ─ 청춘패권주의를 파(破)함

교대 가기에는 터무니없는, 초라함을 너머 참담한, 성적을 지속적으로 받은 이유는 깜냥이 모자라서가 첫째지만 진짜 이유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아니, 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 2007년에서 2010년 동안 나는 학원에 다니질 않고 혼자 공부했다. 처음 2년 동안 소위 스타강사란 사람들의 강의에 꽤나 얽매였다. 그만큼 죄의식을 넘어 죄악감에 시달렸다. 입시를 준비하는 기간에는 스스로의 정서마저 저버려야 하나 싶었고 '교대 가고 선생 되는 것은 결국, 기존 체제에 편입하는 것이고 방랑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정면에서 비껴나 안전한 데로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긴장 속에 침묵할 뿐이었다.

2003년 대입원서 썼을 때, 난생 첨으로 교대를 생각했던 때, 그때 느꼈던 심리적 확장의 쾌감은 무엇이었나?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2009년 1월 7일 부산대 면접 보기 전날 깨달았다. 교대가 문과·이과라는 경계가 지워진 전인적 학습 공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09년 봄에 방랑 계획서를 썼다. '13년간 시험과 공부에 맺힌 어두운 감정을 반드시(!) 푼다. 기필코 설욕한다.' 다시 입시에 실패할 경우 두말 않고 방랑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방랑 계획서엔 교대와 방랑의 장점과 단점을 써놨는데 교대의 첫째 단점은 기관, 권위, 제도, 시스템에 얽매인다는 것이고 방랑의 첫째 단점은 어버이에 대한 죄스럼이었다. 그리고 입시 실패. 방랑의 다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얼음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는 기분으로 "인생은 한 번이다. 한 번 뿐인 삶으로 소설 쓰는 거 아니다"란 뼈저린 가르침만을 얻었다.

2010년엔 시험만 봤지 아예 공부를 하지 않았다. 대신 2010년부터 2011년까지 과거를 정리하고 생각을 가다듬는데 주력했다. '정리하지 않고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노력하기 전에 노력하기 위한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큰 틀 아래서. 오랜 생각 끝에 노력하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를 발견했다. 첫째, 구린내. 안온한 환경 속에서 철밥통 차려 교대 간다는 사회적 통념에서 오는 구린내. 통념이 짙은 만큼 교대는 경계를 넘나드는 사회적 학습 공간임을, 내 의지의 샘밑은 모험과 창업임을 분명히 해야 했다. 둘째, 계급구조와 분배정의를 근간으로 하는 가슴사레(죄의식). 제도 안에서의 모든 노력이 콘크리트 명함과 반질반질한 밥그릇으로 귀결되는 엄연한 현실. 이건 발 딛은 현실에서 삶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자락. 대학·기관·제도·단체·조직에 대한 케케묵은 반감. 2년의 시간 동안 나는 사회적 구성원들의 욕망 충족의 틀이란 제도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고 기관, 자격증 등을 철저히 코드화 된 시스템 사회 안에서 선택적 전문성, 보편적 통용성을 위한 매체와 도구로 인식하는 등 화석화 된 반감을 부지런히 깨뜨렸다. 골자는 비판의식을 가지되 균형감각을 잃지 말자였다.

어떤 감투도 없이 그저 홀로 시인으로 크는 것. 그게 내가 본래 원하는 길이었다. 그럴 자신이 있었다. 열정이 있었다.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월을 부아가 치미는 원한과 가시 돋힌 반감, 열정 아닌 것들에 대한 집착 속에서 지리한 물음만을 되풀이하며 보냈던가. 관념적 방랑에 대한 헛된 집착으로 그토록 숱한 오늘을 희생해야 했던가.

삶 자체가 방랑이다. 국문과를 가건 안드로메다를 가건 간에 자유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시인이다. 내후년 봄,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12년 동안 7번 수능 봐서 들어온 서른하나 박민식이라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청춘 시절을 같이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추신 : 떨어지면? 나는 다만 삶의 이쪽에서 삶을 던질 뿐이다.
#교대 #대학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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