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동창생들의 밤, 광란의 밤?

졸업한 지 45년 된 초등학교 동창회

등록 2011.12.06 14:14수정 2011.12.0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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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45년 된 친구들이 모였다. 사는 얘기며 근황을 소개하는 자리다 ⓒ 오문수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45년 된 동창생들이 모였다. 한국 전쟁이 끝난 해(1953년)에 태어난 친구들이 전남 곡성에 있는 오곡초등학교를 입학한 인원은 70여 명. 당시 동창생 중에는 나보다 세살 위의 친구들도 있었다.


머리가 젊은이처럼 검은 친구도 있지만 완전히 벗겨진 친구, 머리가 빠지고 듬성듬성 남아있는 친구가 대부분이다. 하얀 새치를 감추기 위해 염색한 경우는 부지기수.

동창생 중에는 병사하거나 사고로 비명횡사한 친구도 있다. 천년만년 살 줄 알았는데…. 학창시절 노래를 잘 부르고 예뻤던 여학생 친구도 세월엔 장사가 없다. 세어진 머리와 주름살, 펑퍼짐한 엉덩이와 뱃살들이 세월의 무게를 말해준다.

순천 사는 총무는 맛있는 물김치를, 경상도 사는 친구는 맛있는 김치를, 경기도 사는 친구는 떡을 해가지고 왔다. 서울 친구들은 아예 차를 대절해 고향까지 왔다. 여자 동창생 한 명은 45년 만에 처음 만났다. 환갑이 다 된 나이지만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고 입을 가린다. 쟤가 내 동창이었나?

동창회장의 인사말과 친구들의 동정을 들은 후 맥주와 고기 안주를 곁들여 술을 마신다. 입담좋은 친구의 넉살은 술안주가 된다.

"야! 학교 다닐 때 너를 좋아했는데 너는 몰랐지?
"야! 임마! 그러면 그때 말을 하던지, 아니면 발이라도 걸던지. 그랬으면 너를 따라서 살았을 것 아니냐."
"야! 그러면 지금이라도 나한테 시집올래?"
"미쳤냐? 쭈글쭈글하고 늙어빠진 너한테 누가 시집간대!"


여자 친구의 넉살에 친구들은 배꼽을 잡고 웃는다. 맥주가 몇 순배 돌고 노래방 기계 볼륨이 높아가자 부끄러워 말도 안했던 여자 친구들이 온몸을 흔들며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잘 부르건, 못 부르건, 음정박자 상관없다.  그야말로 깨복쟁이 친구들이라 흉허물이 없다.

누가 봤으면 광란의 밤이라고 경찰에 신고할 텐데 여기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깊은 산 중에 자리한 집 한 채를 빌려 악쓰고 노래해도 신고할 사람도 없다.

친구들의 노래와 온몸으로 추는 춤들이 전혀 밉지가 않다. 그래 신나게 놀아라. 목청이 터지라고 노래 불러라. 네 안의 한을 날려 버릴 때까지. 친구들 특히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자 친구들은 한명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식모살이를 해야 했고, 재봉공장에 가서 미싱을 돌리며 돈을 벌어 오빠나 동생들 학비를 송금하면서 자랐다.  

한 여자 친구가 온몸으로 절규하며  <여자의 일생>을 노래하다 지쳐 옆방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야! 인생에 무슨 한이라도 맺힌 것 아니냐?
왜? 내가 그렇게 보여?
응. 그렇게 보여. 얘기해봐"

"중매로 시집을 갔는데 4대 종손 집으로 갔었지. 30년 동안 시집살이, 신랑살이, 시동생살이를 하고 나니 우울증이 왔었다. 아플 때는 모든 게 싫어 죽어버리고 싶었다. 이제 나았는데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나니 순리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가슴 속 절절한 아픔을 겪어 보니까 남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제는 더불어 살고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깨친 거야. 이제야 조금 편안해 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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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동창생들. 광란? 전혀 아니다. 그동안 힘들게 살면서도 뒷전에만 물러나 살았던 친구들이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흉허물이 없어지자 마음껏 논다. ⓒ 오문수


그랬다. 친구들, 특히 여자 친구들은 맺힌 한이 너무 많다. 가난해 중학교 진학도 못해서 남앞에 서지도 못하고 그냥 뒷전에서만 살아야 했다. 먹을 게 없어 점심을 굶거나 고구마만 싸오거나 미국에서 구호품으로 보내준 강냉이 죽을 얻어먹던 친구들이다.

전라도에서 서울로, 강원도로, 경상도로 시집 장가갔던 친구들이 모였다. 나이드니 더 고향 친구가 생각난다는 게다. 45년 만에 처음 참가한 여자 친구 왈 "깨복쟁이 친구들 만나니 정말 좋다. 다음부터는 꼭 참가할 게"  

볼일이 있어 함께 잠을 자지 못하고 늦은 밤 산골짝을 운전해 나오는 차창 문을 여니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친구들을 생각하니 내 가슴이 싸하다. 겨울바람만큼이나 힘든 인생을 살아온 친구들의 노래 소리가 계곡에 메아리친다. "~여자의 일생" 그래! 목청껏 노래 부르고 놀아라. 가슴 맺힌 한이 풀릴 때까지….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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