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임진년, 토지 및 교육개혁을 생각하다

임진왜란 극복의 주역, 서애 유성룡의 개혁정책 회상

등록 2012.01.05 19:25수정 2012.01.0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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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기의 임진년 :1592년, 2012년

2012 임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2 임진년은 정치·경제적으로 한반도에 큰 변화가 일듯 합니다. 변화는 위기를 가져오고 위기는 늘 기회를 동반하지만 준비되지 못한 위기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420년 전 임진년을 기억해 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년 전부터 전쟁의 조짐이 곳곳에서 들려왔지만 조선의 지배층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착취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조선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야말로 하늘이 준비해둔 사람들 덕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전쟁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던 조선 수군을 맡은 이순신 장군,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막은 곽재우, 김덕령,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은 조선 멸망의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하늘이 준비해둔 인물들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전시에는 무신(武臣)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들을 발탁하고 전쟁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신(文臣)의 존재 또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순신, 권율 등이 최전방 전선에서 전쟁을 수행했다면 서애 유성룡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과 도체찰사를 맡아 전체 전쟁을 지휘하였던 중앙사령관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서애 유성룡은 이순신, 권율과 같은 무장들을 천거하여 전쟁의 흐름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지배층의 착취와 전쟁으로 이반된 민심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펼쳤습니다.

2. 유성룡의 개혁정책 : 3대 개혁입법, 조선을 구하다

역사를 돌아보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기득권층으로 들어가는 진입장벽을 구축하여 지배층의 위치를 견고하게 하려는 것, 기득권층은 국가유지에 필요한 재원과 병역의 의무 등을 피하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의무를 전가하는 것은 방식과 규모가 변하였을 뿐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하였던 권문세족들이 백성들을 소작농으로 착취하였던 고려의 토지제도를 개혁하여 민심을 얻어 세워진 조선도 200여 년이 지난 1592년에는 양반 사대부들의 엄청난 토지소유로 인해 조선의 토지제도 역시 고려와 그리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광대한 토지를 소유한 양반 사대부들은 조세를 회피하고 병역을 회피하여 일반 백성들에게 그 책임을 모두 전가함으로 조선의 백성들은 가족을 부양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양반과 그들의 재산인 노비는 병역에서 면제되고 조세 역시 양인들에게 과중하게 부과되는 선조 시대의 조선은 전쟁을 치를 군사도, 군량도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유성룡은 이반된 민심을 모으고 전쟁을 위한 병력과 재원 확보를 위해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펼칩니다.

노비들도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벼슬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신분제개혁법인 면천법(免賤法)을 시행했으며, 양반과 노비, 양인 모두 병역의 의무를 지는 속오군(束伍軍) 창설을 통해 병무개혁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수많은 가짓수의 공납을 쌀로 통일하고 조세부과의 기준을 호(戶)에서 토지면적 단위로 바꾸어 토지를 많이 가진 양반 사대부 계층에게 세부담을 늘리고 토지가 없는 농민들은 세금을 면제하는 작미법(作米法)을 제정함으로 이반된 민심을 다시 하나로 모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현상적으로 임진왜란을 바라본다면 이순신, 곽재우와 같은 무장들이 승리를 이끌었던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불평등한 제도와 관습을 타파하여 민심을 하나로 모은 명재상 유성룡과 같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안고 조선의 영토를 사수하였던 수많은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위기는 늘 기회를 동반하기에 임진왜란은 조선이 새롭게 갱신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유성룡의 개혁정책은 전쟁이 끝남과 함께 무력화되고 말았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이후 선조는 유성룡을 파직시키며 개혁정책들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입니다. 백성보다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선조와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한 양반 사대부들은 임진왜란이라는 시련을 겪고도 결국 아무런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조선의 역사를 돌아보면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제도를 철폐하기 위해 토지개혁, 신분개혁을 시도했던 조광조, 이이, 유성룡, 정약용과 같은 개혁정치가들이 있었습니다. 후세에 본받아야 할 명정치인으로 이름은 남겼지만 당대에 그들의 말로는 대부분 귀양이나 사형으로 끝났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양반 사대부들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던 조선에서 그들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개혁정책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갑오농민전쟁(동학혁명) 등 안팎의 전쟁을 겪으면서도 양반 사대부들의 완고함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조선은 일제식민지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근대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3. 유성룡의 개혁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임진왜란을 극복한 명재상 유성룡의 개혁정책 - 토지 및 조세개혁, 신분제타파, 병무개혁(안보보장) - 은 420년이 지난 임진년 2012년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정책과 6·25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한국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정책은 동일합니다. 

유성룡의 토지 및 조세개혁의 근간은 죽산 조봉암의 농지개혁과 이어집니다. 1950년 3월  조봉암에 의한 농지개혁과 6·25전쟁은 지주층을 혁파하고 자신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획득할 수 있는 자영농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어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하지만 60년이 지난 오늘 다시금 신지주층이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재벌은 기업 재산의 상당량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5.5%가 국토 면적의 74%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토지불로소득을 통해 노동의 정당한 몫에 기생하는 신지주층은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관철시켜 그들의 힘과 단결력을 과시했습니다. 반면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차별적인 대우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무너진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신지주층의 토대가 되는 토지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제도적 정비와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이 필수입니다.

또한 법적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오늘날에는 학벌이 유사신분제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1960-1970 산업화 시대를 살았던 대한민국 서민들은 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의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한 높은 교육열은 결과적으로 산업화 시대의 한국에 질 높은 노동력을 공급했습니다. 교육비를 위해 농촌과 공장에서 저임금으로 수고한 가족들의 노동은 초고속 경제 성장의 원천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부모의 재력과 자녀의 명문대 진학률은 정비례한다는 사실은 계층의 이동 수단이었던 교육이 계층의 고착화 수단으로 변질되어버렸음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능력이 아닌 부모의 재력에 의해 향후의 인생이 결정되는 현재의 입시 시스템과 사회구조는 한국사회의 공동체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습니다.     

4. 포기할 수 없는 개혁정책 - 다시 토지 및 교육 개혁을 말하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야권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전망을 밝게 봅니다. 하지만 반MB전선의 구축을 통한 정권 재탈환만으로는 과연 난마처럼 뒤얽힌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풀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19세기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인간진보의 법칙- 문명의 진전을 지배하는 법칙 - 을 '평등 속의 어울림'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가치를 일부계층이 독식하여 빈부의 양극화와 갈등을 초래하는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제도를 철폐하여 인간 사이의 소통과 교류를 확장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에너지를 건설적이고 진취적인 방향으로 모아가는 것이 진보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시장만능주의와 개발독재가 기형적으로 결합한 승자독식 한국형 천민자본주의 시스템을 '평등 속의 어울림'이 만개한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교한 정책대안들이 논의되고 경쟁해야 할 것입니다. 바야흐로 정책대안의 백가쟁명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근원적인 문제인 교육 및 부동산, 비정규직에 대한 올바른 정책대안해법들을 가지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는 진정성있는 정치세력의 등장을 기대해봅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이 운명하였을 때, 세상 사람들이 모두들 "유성룡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라며 애석해 했다고 합니다. 2012년 임진년에는 사회적 양극화로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는 대한민국의 서민들이 희망을 회복할 수 있는 유성룡과 같은 정치인이 등장하길 기대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유성룡 #토지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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