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 둘러쳐진 탑... '그놈'들이 원망스러워

[의성여행⑧] 단촌면 관덕동 3층석탑

등록 2012.01.26 09:30수정 2012.01.2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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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동 석탑. 국가 지정 '보물'이다. ⓒ 정만진


의성의 또 다른 보물인 관덕동 3층석탑을 찾아가 보자. 국보인 탑리 5층석탑, 그의 '동생'인 빙산사지 5층석탑을 살펴보았으니 답사의 대상을 계속 탑으로 하는 것이 '공부'의 흐름에 맞을 것이다.

관덕동 3층석탑은 단촌면에 있다. 의성읍과 안동시 중간 지점에 있는 단촌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고운사로 가는 도로에 들어서면 금세 이 보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무심코 지나치다가는 놓칠 수 있으니 도로 오른편에 창고가 있는 작은 삼거리에 닿았을 때, 그 맞은편에 세워져 있는 '보물 188호 의성 관덕동 3층석탑 義城觀德洞三層石塔 Uiseong Gwandeok-dong samcheung seoktap 1.6km' 이정표를 놓치지 않고 잘 확인하여야 한다.   


그리로 들어가, 200m 될까 말까 정도의 논길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마을이 보인다. 집들이 끝나갈 즈음의 길가에, 석탑으로 가는 왼쪽 진입로를 안내하는 작은 이정표가 호젓이 세워져 있다. 좁은 도랑을 따라 난, 역시 좁은 길로 들어가면 보덕사라는 작은 사찰이 마을 끝에 숨어 있다. 하지만 석탑이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석탑은 보덕사에서 100m쯤 더 올라가면 나타나는 추원재(追遠齋)라는 재실 뒤편의 숲 안에 있다. 길에서 보이지 않아 산속으로 얼마나 올라가야 하는지 의심스럽지만, 발걸음을 뗀 답사자는 이내 웃음을 짓게 된다. 석탑이 추원재에서 불과 50m 정도밖에 아니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이다.

"차량 통행 금지"... 검붉은 녹물이 꼭 '눈물'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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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차량통행금지' ⓒ 정만진


그런데 정작 당혹스러운 것은 탑이 길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추원재에서 석탑으로 오르는 임도(林道) 첫머리에 쇠사슬이 가로막고 있고, 잔뜩 녹이 슨 그 검붉은 쇠사슬에 '차량 통행 금지'라는 글자가 쓰인 양철판이 매달려 있다는 점이다. 검붉게 녹이 슨 철판에 또 다시 녹물이 거칠게 흘러내린 '차량 통행 금지' 글자는 두 눈을 부라리며 답사자를 노려보는 듯하여 문득 가슴이 섬뜩해진다.

쇠사슬에는 '문화재를 보호합시다. 문화재청장 의성군수'라는 글씨가 쓰인 작고 뽀얀 '협조 말씀'도 매달려 있다. 하지만 문화재 주변이면 으레 볼 수 있는 그 말이 이곳에서는 단순히 협조를 당부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답사자는 이내 깨닫게 된다. 쇠사슬과 '차량 통행 금지'의 녹물이 그저 자연현상이 아니라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내기 위한 애타는 '눈물'이라는 사실을 답사자는 곧 알게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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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동 석탑을 지키던 돌사자. 지금은 대구박물관 안에 모셔져 있다. ⓒ 정만진


탑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의 마지막 문장이 답사자의 가슴을 찌른다. 빙산사지 5층석탑 안내판에서는 왜군들이 감실 속의 불상을 훔쳐갔다는 비극을 확인했는데, 이곳의 안내판 끝에 적혀 있는 '(이 탑의) 하층 기단 덮개돌 네 귀퉁이에는 암수 2구씩 4구의 석사자가 있었으나 이 중 2구는 도난당하고 남은 2구는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 중이다'라는 이 말은 또 무엇인가. 도대체 누가 문화재를 훔쳐간단 말인가!

의성관덕동3층석탑
보물 188호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899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의 3층석탑으로 높이는 3.65m이다. 한 변의 너비가 1.81m인 지대석 위에 이중(二重) 기단과 3층 몸돌을 갖춘 일반석 3층석탑인데, 석탑의 기단과 탑의 몸돌에 장식이 풍부하다. 4매석으로 지대석을 짜고 중석 또한 4매석으로 구성하였다. 2층 기단 위에 세운 3층석탑으로 하층 기단에는 비천상(飛天像), 상층 기단에는 각면마다 우측에 보살상(菩薩像), 좌측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1층 탑신에는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는 이 탑은 웅대한 기상은 없으나 매우 아름다운 걸작이다. 하층 기단 덮개돌 네 귀퉁이에는 암수 2구씩 4구의 석사자가 있었으나 이 중 2구는 도난당하고 남은 2구는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안내판은 이 탑이 '(웅대한 기상은 없으나) 매우 아름다운 걸작'이며 '기단과 몸돌에 장식이 풍부하다'고 해설하고 있다. 한적한 마을 뒷산 쓸쓸한 숲 속에 숨은 듯 남아 있는 이 관덕동 3층석탑이 어떻게 국가의 보물로 지정을 받을 수 있었는지를 한마디로 알려주는 해설이다.

'보물사자' 훔쳐간 도둑놈들 때문에 쇠사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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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에 새겨진 조각들이 아름답다. 관덕동 석탑이 국가 보물로 지정되는 데에는 이 조각들이 한몫을 했다. ⓒ 정만진



이 탑은 또 탑리 5층석탑과 빙산사지 5층석탑과는 달리 몸돌 아래를 받치고 있는 기단이 2층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탑 전체가 3층이므로 이렇게 기단을 이중으로 설치하면 그 모양새가 아무래도 높아진다는 점을 감안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단을 2층으로 배치함으로써 조각을 새겨넣을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2층 기단은 풍부한 장식으로 탑의 아름다움을 한껏 제고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던 셈이다.

게다가 암수 네 마리의 석[石]사자까지 기단 네 귀퉁이에 멋지게 배치하였으니 그들이 본래대로 고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이 탑은 지금보다도 더욱 아름다울 게 분명하다. 이렇게 탑 둘레에 동물을 배치하는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모전석탑인 경주 분황사에부터 볼 수 있는 기법인데, 석공(石工)들은 이곳 관덕사에도 그렇게 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관덕동 3층석탑이 그 자체도 보물(188호)이지만 탑을 지키던 돌사자들 또한 보물(202호)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돌사자 두 마리를 훔쳐간 범인들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고, 탑으로 오는 진입로에 왜 쇠사슬이 설치되었으며, 그토록 심하게 녹이 슬도록 만든 하늘의 섭리도 저절로 헤아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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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의 조각 그림 ⓒ 정만진

(2층 기단 위에 세운 이 3층석탑은) 하층 기단에는 비천상(飛天像), 상층 기단에는 각면마다 우측에 보살상(菩薩像), 좌측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국보 29호인 성덕대왕 신종, 흔히 '에밀레종'으로 더 익숙하게 알려진 이 국보는 경주박물관 뜰에 있다. 이 종에 조각된 그림이 바로 하늘[天]을 나는[飛] 비천상(飛天像)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악기를 연주하고 꽃을 뿌리면서 부처의 근처에 머물다가 불교의 진리를 따르려는 중생들에게 축복을 내려준다.

관덕동 3층석탑 2층 기단의 오른쪽면에 새겨져 있는 보살상(菩薩像)은 표정이 온화하고 '하늘의 옷'을 입었으며, 호화로운 관과 팔찌 등으로 멋진 장식을 하고 있다. 보살상은 지금의 삶 이후에 다시 태어날 때를 대비하여 모범적으로 수행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즉, '깨달음을 얻은 지혜로운 사람, 석가'를 뜻하는 인도말 'budhisattva'에서 온 '보살'을 찾는 중생의 마음속에는 다음 세상에 부처로 태어나리라는 예언을 듣고 싶은 강렬한 소원이 깃들어 있다.     

절 입구에 가면 흔히 일주문(一柱門)을 만나게 된다. 일주문은 '세상의 어지러움을 잊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나[一]로 가다듬어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라'는 가르침을 상징한다. 그래서 좌우로 기둥을 둘씩 세우는 보통의 집들과는 달리 일주문에는 왼쪽과 오른쪽에 기둥[柱]이 각각 하나[一]만 있고, 그것도 한[一] 줄로 서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본당에 닿기 이전에 천왕문(天王門)이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천왕문 안에는 무섭게 생긴 사천왕(四天王)들이 위세를 자랑하며 버티고 있다. 사천왕에 '사(四)'가 들어 있는 것은 사천왕이 동서남북의 천(天)지 사(四)방, 즉 '온 세상'의 불교와 부처의 말씀을 지키고, 중생들을 지켜준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사천왕 앞에서 절을 한다. 사람들은 사천왕의 보호를 받으며 좋은 세상을 살고 싶은 것이다.

훔쳐가서도, 가두어서도 안 되는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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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이 들어 있는 비각과 석탑 ⓒ 정만진


관덕동 3층석탑 바로 뒤에는 유형문화재 136호인 관덕동 석조보살좌상이 있다. 그러나 볼 수는 없다. 훼손을 막기 위해 비각(碑閣)을 세웠는데, 그 비각이 기둥만 있는 조촐한 수준이 아니라 작은 집처럼 사방으로 벽을 두르고 앞면에만 방문을 단 튼튼한 건물형이기 때문이다. 앞면 벽에만 있는 방문을 굳게 자물쇠로 채워 아무도 들어갈 수 없도록 '금지' 해두었으니 이를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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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 뒤 비각 안에 들어 있는 불상. 문이 닫혀 있어 찢어진 문종이 틈으로 보아야 한다. ⓒ 정만진


사람들은 비각 방문의 빗살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한지에 구멍을 뚫어놓았다. 그렇게 하여 그 틈새로 간신히 불상을 들여다 본 것이다. 그 마음까지야 어찌 모두 탓하랴. 석탑을 지키는 돌사자를 훔쳐가는 그런 마음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재를 훔쳐가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가두어 두어서도 안 된다. 대도시의 박물관으로 옮겨져 갇혀 있는 문화재는, 없어지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본래의 그 문화재는 아니다.

문화재에게도 '고향'이 있다. 옛사람들은 집 한 채를 짓고 탑 하나를 세울 때에도 둘레의 자연과 어울리게 지었다. 관덕동 3층석탑과 보살좌상 역시 지금 이 자리에 고이 모시는 것이 최상이다. 관덕동 석탑이 5층이 아니라 3층인 것도 절터의 넓이와 전면의 좁은 논밭, 그리고 낮은 뒷산의 높이를 한결같이 고려한 결과일 테니, 아무리 도적이라 할지라도 문구멍만 뚫을 일이지 문짝까지 뜯지는 말지어다.
#의성여행 #관덕동3층석탑 #에밀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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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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