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꽃다운 비정규직 사육사는 왜 죽었나

[현장] 삼성노조 등 고 김주경씨 사망 진상규명 요구 기자회견 열어

등록 2012.01.26 21:38수정 2012.01.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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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1시, 삼성 에버랜드 앞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한 동물원 사육사 고 김주경씨 사건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김지수



"당신들이 지금 여기서 무얼 하는지 알아야 돼. 보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지금 당신들 실수하는 거야."
"우리가 뭘 모르는데? 사람이 죽었어. 진실을 밝힐 거면 유가족 앞에서 당당히 밝히란 말이야."

삼성 에버랜드 정문은 삼성측 직원들과 유가족, 노조원들이 벌이는 실랑이로 소란스러웠다. 회견용으로 쓸 앰프와 캠코더를 사측 사람들이 무단으로 가져가자 회견 주최측인 유가족과 노조원들의 항의가 거세졌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어느 기자가 던진 한 마디가 오늘 논쟁의 핵심이었다.

"아니, (사측에서) 뭔지 알면 안다고만 하지 말고 얘기를 해줘야 될 거 아냐. 그거 말하라고 지금 기자회견 하는 건데."

26일 오후 1시 용인시 삼성 에버랜드 정문에서는 패혈증으로 사망한 동물원 사육사 고 김주경씨 사건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유가족 및 삼성노동조합과 다산인권센터, 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 '반올림'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성수기에는 월급이 두배 뛸 정도로 일했다"

꽃다운 나이의 비정규직 사육사가 갑작스러운 숨졌다. 2011년 2월에 삼성에버랜드에 입사한 고 김주경씨는 10개월 동안 장기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던 중 지난 1월 6일 갑자기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김씨와 같은 젊은 사람이 패혈증으로 사망할 수 있으려면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의의 분석이다.


이에 사망 원인으로 김씨가 근무했던 노동환경이 지목됐다. 그토록 면역력이 떨어질 정도였으면 일을 도대체 얼마나 많이 시켰겠느냐는 것이다. 노무법인 '현장'의 문은영 노무사는 기자회견장에서 김주경씨의 노동 여건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 달에 네 번 정도 쉬고, 성수기엔 주로 연장근무를 했는데 입사했을 때 100만 원 남짓하던 월급이 성수기에는 두 배 가까이 뛸 정도로 일했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김씨는 다쳐서 아파도 의무실에 가겠다고 말 한 번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견뎠다."

그러나 회사측의 대응방식은 탐탁지 않았다. 사측은 "술 먹고 2차 갔다가 넘어진 상처가 운 나쁘게 패혈증으로 번졌다"라고 사망원인을 설명했지만, 그 상처는 사실 "동물원에서 근무도중 철문에 찢긴 상처"였음이 드러났다. 유가족들은 김씨의 싸이월드와 스마트폰에서 친한 친구와 나눈 대화를 근거로 산재처리를 요구하고 항의했다. 하지만 현재 삼성 쪽에서는 어떠한 공식적인 의견도 내놓고 있지 않다. 

또한 김씨가 중환자실에 들어간 날부터 장례식장에 인사관리팀 직원들이 들어와 대화에 간섭하고 유가족들의 집에 찾아가기 시작했다. 박원우 삼성노조 위원장은 "아까 기자회견장을 가로막았던 사람들이 바로 그날 장례식장에서 취재기자의 사진을 찍고 동태를 살피던 사람들"이라며 "이 외에도 삼성은 직접 관련되지 않은 직원까지도 불러 간부 설명회를 통해 삼성노조가 유가족을 속이고 사실을 왜곡한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12일 박원우 위원장의 메일로 사측에서 수신한 '고 김주경 관련 상황보고'라는 메일이 들어왔다. 박 위원장은 "수신인은 '삼성에버랜드 리조트 인사팀 차장'으로 되어 있었고, 안에는 일자별, 시간별로 김씨 유가족의 이동 경로와 노조의 움직임, 유가족 설득을 시도한 일체의 내용이 전부 기재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처음에 이 메일을 받았을 때는 (사측이) 일부러 낚으려는 줄 알고 안 믿으려 했으나 나중에 관계자들이 유출사실을 인정했다"며 "관계자의 실수로 메일이 발송된 것 같고, 실제로 이후 관계자들이 찾아와 사규에 의해 징계할 것이라며 문건을 공개하지 말라는 협박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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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주경씨 부모는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 구영식


눈물 흘리는 김주경씨의 부모 "꼭 진실이 밝혀졌으면..."

이어 발언대에 오른 고 김주경씨의 아버지는 단 세 마디만 내뱉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식을 보낸 아비로서 할 말이 없습니다. 꼭 진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것이 제 마음입니다. 우리 아이가 하늘나라에 갔어도 꼭 진실만은 밝혀지기를..."

김씨의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김씨 부모는 회견 이후에 이어진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도 정중히 거절했다.

문 노무사는 "유가족 분들이 너무도 상처가 커 더 이상 말을 잇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더 이상 유가족들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선 그 과정을 투명히 밝혀야 하는데도 지금 사측에선 어떠한 공식적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메신저에 본인이 직접 쓴 내용과 담당 책임자의 발언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누가 봐도 알 수 있다"며 "삼성은 진실을 안다면 공식적인 의견부터 명확히 밝혀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을 비롯한 주최측은 진상 규명을 비롯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박 위원장은 "이미 김주경씨 이외에도 삼성의 많은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고 지난번에는 한 노동자가 스트레스로 자살까지 했는데도 발병원인을 은폐하려는 삼성의 움직임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진보신당 경기도당 김기홍 부위원은 "삼성은 이번 사태로 노동조건이 과연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엄격하게 따지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기자회견이 도중에 잠깐 중단되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발언을 계속할수록 에버랜드 전경에서 울리던 배경음악이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귀를 찢을 듯했기 때문이었다. 기자회견장 근처의 스피커 출력을 따로 높여 놓은 것이다.

문 노무사는 "어둠이 있다고 촛불이 안 켜지는 것이 아니듯 진실이란 밝혀지게 되어 있다"며 "삼성이 더 이상 김주경씨의 죽음을 왜곡하지 말고 그의 죽음 앞에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삼성노조와 유가족들은 회견 이후에도 김씨의 사연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 1인시위와 집회 등을 열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김지수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대학생 인턴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지수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대학생 인턴입니다.
#삼성 에버랜드 #기자회견 #사육사 #김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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