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당'·'간당간당'... 한나라당 개명 왜 환영 못받나?

[칼럼] '보수' 불신 국민의식 변화 못 읽으면 '신뢰' 얻기 어려워

등록 2012.01.29 13:06수정 2012.01.2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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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이름을 갈겠다고 한다. 26일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당명을 바꾸기로 결정하면서 새 당명을 국민공모에 부치겠다고 했다. 집권여당이 오죽 했으면 자진해서 이름을 갈겠다고 나섰는지 그 고충을 십분 이해할 만하다. 주지하듯이 당명 개정에는 당의 이념 변경이나 합당 또는 혁신 수준의 구성원 교체가 전제돼야 한다.

제대로 쇄신을 하려면 당을 혁파하고 '재창당'을 해야 할 터인데 선거가 눈앞에 닥친 시점에서 부담과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보수층 인적 자원의 고갈로 재창당을 한다고 해도 성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절충 타협안으로 우선 이름이라도 바꿔보자는 식의  '고육지책'을 내놓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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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의 민자당 3당합당 ⓒ 연합뉴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한나라당의 원조는 1981년 1월 15일 전두환·노태우 등의 군사반란세력이 주축이 돼 창당한 '민주정의당(민정당)'이다. 초기의 민정당은 반대자들을 정치 규제로 묶어 놓은 가운데 대선은 체육관 간접선거로(전두환 당선), 총선은 어용야당(민한당)을 들러리로 내세우는 기형적인 방법으로 집권 여당이 된 집단이다.

이후 민정당은 6·10 시민항쟁에 굴복하여 대통령 직선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수용했다. 1987년 대선에서 민정당의 노태우는 김영삼·김대중의 야권 분열로 당선될 수 있었지만, 이듬해인 1988년의 총선에서는 재적 299명 중 과반에서 24석이 미달되는 125석의 소수여당으로 위축됨으로써 위기를 맞는다.

1990년 1월 22일 전격적으로 '3당 합당'이 이루어졌다. 집권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 휘하에 야당인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와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것은 '여소야대'라는 총선 민의를 일거에 왜곡시킨 '일대사건'이었다. 이로써 재적 2/3를 훨씬 넘기는 218석의 거대여당 '민자당(民自黨)'이 조합됐다. 이때의 당 이름 '민자당'은 김영삼의 제안으로 지어졌는데, 이는 기존의 '민정'에다 '자유'를 합성한 것이었다. 이것은 김영삼이 자유당 국회의원 출신이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당명 개정은 위기 돌파를 위한 상투 수법

1995년 12월 5일 민자당이 새당명을 '신한국당'으로 사용함에 따라 중앙당사 현관에 설치됐던 민주자유당 입간판이 철거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후 1992년 총선에서 민자당은 이전보다 69석이나 줄어든 149석을 얻는 데 그치는데 이것은 3당합당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이 일정 부분 반영된 결과였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의 실언과 실정으로 민자당 인기가 동반 추락하게 된다.

민자당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15개 광역단체장 중 5명(부산·인천·경기·경북·경남)밖에는 당선시키지 못했다.

지방선거에서의 패배를 뼈아프게 느낀 김영삼은 당시로서는 신선한 인물로 평가 받던 이회창과 박찬종 등을 영입하면서 민자당의 이름을 '신한국당'으로 바꾸었다. 결과 1996년 총선에서 139석을 얻어 지방선거의 참패를 만회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아들 김현철의 국정 농단과 IMF 환란 등으로 인기가 추락할 대로 추락한 신한국당은 또다시 자구책을 강구해야 했다. 당시 대선후보 이회창 측은 지지율이 한 자리수로 전락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탈당을 요구했다. 심지어는 길거리에서 '김영삼 화형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늘의 한나라당은 이런 와중에 탄생되었다. 1997년 11월 21일 신한국당의 이회창은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에 반대하는 민주당 세력과 합당하면서 한나라당을 창당했다. 이때 당 이름 '한나라'는 당시 김대중에게 등을 돌리고 이회창과 손을 잡은 조순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보수집권당 당명은 반어법의 역사

일찍이 공자는 '정명(正名)'이라는 말로써 '이름 붙이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름지기 모든 이름은 실체에 상응하도록 붙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 보수집권당의 이름을 회상해 보자면 이름과 실체가 상응하기는커녕 아예 정반대의 양상을 보여 왔다. 우선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共和, 함께 화합함)부터가 그랬다. 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을 자행한 5공세력이 '민주'와 '정의'의 이름을 쓴 것은 희극적이었다. 또한 김영삼 정부는 '신한국당'보다는 차라리 '구한국당'이라고 했어야 더 잘 어울릴 성 싶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어떤가? '한나라'의 접두사 '한'에는 '크다'는 뜻과 함께 '하나'라는 뜻, 그리고 한민족 할 때의 '한(韓)' 개념이 동시에 담겨 있다. 그런데 정작 한나라당은 큰 정치를 한 적이 있던가? 그들은 1%만을 위한 정당이었다는 점에 동의하는 국민이 단연 더 많다. 한나라당은 말 그대로 '하나의 나라'를 지향했던가? 한나라당이 집권한 지난 4년 동안 남북관계는 파탄지경으로 치달아 '한민족'은 확연히 '두 나라'가 되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시작부터 전혀 한민족답지 않은 '어륀지' 따위만을 선보이지 않았던가.

"그래도 한나라당은 가장 오랜 정당 아닌가? 보수는 전통을 소중하게 여긴다. 이름을 파는 건 몸을 파는 것보다 더 더럽다. 이름은 정체성(正體性)의 집약적 표현이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성(姓)을 가는 짓이다. 정체성에 담긴 가치관 포기를 의미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은 살 자격이 없다."(조갑제 닷컴)

조갑제씨는 한나라당의 개명을 몹시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한나라'라는 이름에 현재 한나라당의 진정한 가치와 정체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인사 중 하나인 것 같다. 하지만 다수 국민의 생각은 조갑제씨와는 크게 다르다.

한나라당에 '정명(正名)'을 부여하고자 하는 국민적 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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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자료사진). ⓒ 유성호


마침 한나라당이 새 당명을 국민공모에 부치겠다고 하고 신청을 받자 국민들은 예사롭지 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한나라당의 이미지에 걸맞은 이름이 회자된 적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든다면 '차떼기당'과 '성나라당'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자진해서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자 국민들은 마치 물을 만났다는 듯이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트위터 등을 통해 폭발적(?)인 호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는 허당, 악당, 꽈당, 매국당, 미국당, 일제잔당, 간당간당, 구린내당, 미치겠당, 돈나라당, 한밑천당, 강부자당, 한통속당, 숭구리당당, 비서가했당, 내가공주당, 그나물그밥당 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자위당(자유위민당), 사정당(사회정의당), 정자당(정의자유당), 소름당(소수를 위해 늠름한 당), 불한당(불의를 척결하는 한나라당), 사기당(사라지면 기분 좋겠당), 발기당(발전하는 기독교당), 미친연당 (미래친박연합당) 등 약자 풀이까지 해 놓은 당명도 있다.

'걸레를 빤다고 행주되지 않는 당'이라든지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되지 않는 당'처럼 아예 당명 개정 시도 자체를 풍자하는 것도 있다.

대한민국, '진짜 우익'이 거세된 나라

집권여당이 자기쇄신을 위해 이름을 갈겠다고 하는데도 국민들은 이해와 격려는커녕 이토록 극렬한 야유와 조롱만을 퍼붓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라당의 개명 작업을 순수하고 진실한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국민들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그것은 또 하나의 '위장폐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냉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당명 개정과 함께 보수를 상징하는 푸른색과 로고까지 바꾸겠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보수' 자체를 불신하게 된 우리 국민의 의식 변화를 읽은 것이다. <한국전쟁> 연구의 권위자 김동춘 교수는, 대한민국은 미군정과 6·25 전쟁, 그리고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가짜 우익에 의해 공적인간이 거세된 나라'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대한민국에 진짜 우익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는 1987년 6·10 민주화 이후에 민선된 김영삼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경험하면서 과연 한국의 보수세력에게 민주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기본 자질이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다. 한나라당의 개명에 국민이 이토록 극렬한 야유와 조롱으로 대응하는 것은 비단 김영삼, 이명박 등의 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 터이다. 국민들은 당분간 이 땅에서 보수를 자칭하는 세력을 신뢰하는 것은 대단히 맹추 같은 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한나라당 #당명개정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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