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기관, 전교조 교사 자택 압수수색...시민사회 '촉각'

인천 진보진영, 선거 앞두고 불똥 어떻게 튈지 촉각 세워

등록 2012.02.01 14:46수정 2012.02.0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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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간첩단 왕재산' 사건 이후 공안기관이 최근 인천지역 교사(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4명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해, 인천지역 정가와 시민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70여일 앞으로 다가온 19대 총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천은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발한 곳으로 어느 지역보다 남북 평화에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에 성공해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지방권력을 교체한 곳으로 수도권 최초의 진보 구청장이 2명이나 탄생한 도시다. 그 후 16개 광역시·도 중 개혁진보 정책이 가장 많이 실현되는 도시라 할 수 있다.

 

특히 송영길 인천시장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있다. 인천을 평화도시로 만들고,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구체화할 수 있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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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인천 지역 시민사회는 지난 8월 국가정보원 인천지부 앞에서 연 ‘정당한 노조활동 마구잡이 공안탄압 국정원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국정원이 왕재산 사건을 수사하면서 노동조합원에 대한 무리한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부평신문 자료사진> ⓒ 한만송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인천 지역 시민사회는 지난 8월 국가정보원 인천지부 앞에서 연 ‘정당한 노조활동 마구잡이 공안탄압 국정원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국정원이 왕재산 사건을 수사하면서 노동조합원에 대한 무리한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부평신문 자료사진> ⓒ 한만송

야권연대로 지방권력 교체하고, 진보 구청장 탄생한 인천 겨냥?

 

이런 인천에서 지난해 한상대 검찰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종북세력 척결을 천명함과 동시에 터져 나온 사건이 바로 '왕재산' 사건이다. 이 사건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주민투표 무산 다음날 검찰에 의해 발표됐다. 그 다음 달엔 곽노현 교육감의 후보 단일화 금품 거래 혐의가 발표됐다. 공교롭게도 이를 통해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 논란은 정치권과 언론에서 자취를 감췄다.

 

검찰과 국정원은 간첩단 왕재산이 주요 활동 무대를 인천으로 삼아 20년 동안 암약했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 225국은 2006년 1월 왕재산 총책에게 "인천 군과 경찰, 향토예비군을 비롯한 소위 '반혁명집단'에 근무하는 사람 가운데 성향이 좋은 대상자들을 찾아내어 포섭하거나 전쟁을 싫어하는 '염전사상(厭戰思想)'을 불어넣기 위한 사업에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한 검찰과 국정원은 2006년 1월 내린 지령에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최초로 진보정당 구청장이 당선된 남동구와 동구,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남구에서 2014년까지 행정기관과 방송국을 유사시 장악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내용도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남구는 저유소·주안공업단지·보병사단·공수부대 등에 핵심성원 1~2명을 점 형태로 배치하거나, 경비원·관리직원·장교 등을 매수해 2014년까지 폭파준비를 완료하라는 것이었다.

 

동구의 경우도 OO노조에 핵심성원 1~2명을 배치하고 지역 케이블 방송국과 경찰서에 진보적 핵심 인물을 배치하는 한편, 청년학생단체도 육성해 공산혁명을 위한 시민군을 결성토록 하라는 것이었다.

 

왕재산 사건으로 인천 들쑤셨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 없어

 

검찰은 지난 1월 26일 열린 이 사건 결심 공판에서 총책으로 지목된 김아무개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서울책과 인천책에겐 징역 12년, 선전책과 연락책에겐 징역 10년을 각각 구형했다.

 

왕재산 사건 발생 후 국정원은 인천지역 시민사회와 노동계, 야권을 들쑤셔놓았다. 지난해 말까지 참고인이라는 신분으로 120여 명을 소환했다. 이중 100여 명은 인천지역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6·15공동선언실천위원회, 종교계,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관계자였다.

 

진보성향의 활동가들은 '난, 100명 안에도 포함 안 된 거야. 기준이 뭐야. 열심히 해야 하는 거야'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참고인 소환은 무차별적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은 진보당 소속 구청장과 지방의원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고 보도해 '종북 콤플렉스'를 띤 진보당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었다.

 

왕재산 사건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국정원의 일부 수사관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침해하거나, '스토커'식 전화걸기로 일상생활에 심각한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공안기관, 이번엔 인천 전교조와 진보정당 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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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신문 ⓒ 한만송

부평신문 ⓒ 한만송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과 서울경찰청 보안3과 소속 경찰관들은 설 명절을 앞둔 1월 18일 박아무개 전교조 수석부위원장, 김아무개 전교조 인천지부 수석부지부장과 조합원 2명의 집과 학교 등을 압수수색했다.

 

전교조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전교조 평조합원인 H 교사는 설 명절을 앞두고 자녀가 보는 앞에서 무려 55시간 동안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국정원 등은 한국진보연대, 참교육 이론 논쟁, 한진중공업, 통일 소모임 관련 각종 자료를 압수했다. H 교사의 압수물품 목록이 A4 용지 수백장을 넘는다. 다른 교사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국정원은 H 교사의 이메일 수년 치를 검열해 증거를 확보하는 등 H 교사와 박 수석부위원장을 타킷으로 집중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압수수색을 당한 김 수석부지부장은 당시 서울청 소속 경찰관이 '전교조를 타깃으로 조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전했다.

 

전교조 등에 따르면, H 교사는 서울의 한 사회단체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인천의 진보 구청장들이 추진하는 '혁신학교' 사업 등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교조 소식이 알려지자, 인천 지역에서 혁신학교를 함께 준비한 일부 시민단체 회원과 학부모들은 혁신학교 사업에서 발을 빼고 있다.

 

전교조 측은 "2003년 이후 진행한 남북 교육자 교육 협력 사업에서 북측 인사를 만난 것 등을 이유로 이적표현물 소지·배포, 이적단체 결성, 고무찬양 혐의를 두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곧 있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진행되는 전교조에 대한 공안탄압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한심한 작태"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와 관련, 인천지역 진보당 관계자는 "왕재산 사건으로 인천에서 시민사회, 야권연대 등을 위축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120명을 무차별적으로 소환했지만 어떤 결과물도 내놓지 않았다"며 "이번 전교조 수사를 통해 공안당국은 전교조를 비롯해 인천지역 시민사회, 진보정당에 다시 '자기검열'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노리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천 민변 준비모임 소속 변호사도 "압수수색 현장에서 보니, 이적 표현물이라는 것이 북한 서적과 영화들이었다. 전교조에서 통일 교육 사업을 담당한 교사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자료들이었다"면서, "시민사회나 전교조 등에서 우려하는 활동 위축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예상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전교조 관련 공안 사건이 반복됐지만 법원은 대부분 무죄를 선고했다.

 

2008년 2월 전북 소재 김아무개 교사를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지만, 법원에서 무죄로 밝혀졌다. 같은 시기에 검찰은 산청간디학교 최아무개 교사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지만, 역시 무죄가 선고됐다. 이들 사건 모두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발생했다.

 

또한 2007년 2월 서울 통일교사 2명을 구속기소했지만, 법원은 항소심까지 무죄를 선고했다. 공안기관은 지난달 경북의 배아무개 교사 등 2명을 국보법 위반 혐의(7조 찬양고무)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 당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2.02.01 14:46 ⓒ 2012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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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재산 #국가보안법 #국가정보원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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