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라진 도심 속 판자촌 공동화장실

등록 2012.02.19 19:46수정 2012.02.1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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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중앙상가로 모습. ⓒ 김상현


포항시 북구 대흥동은 예부터 포항의 대표 도심 지역이다. 이곳에는 각양각색의 음식점과 은행, 상가가 밀집해 있다. 화려한 불빛의 쇼핑몰과 영화관도 들어서 있다. 그래서 포항시는 도로명 주소도 '중앙상가로'로 지었다.

하지만, 그 뒤편으로 몇 발짝만 내딛으면 중앙통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판자촌이 내팽개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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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쪽방촌. 롯데시네마 건물과 대조된다. 건설폐기물이 쌓인 곳이 화장실을 허문 자리. ⓒ 김상현


그 동네에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말 못할 고통'도 숨겨져 있다. 16일 낮 3시 30분께 포항시 북구 대흥동 576-11번지 일대. 한 눈에도 몇십 년은 돼 보이는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은 롯데시네마 건물 그림자에 덮여 대낮에도 을씨년스러웠다.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니 쪽방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골목 끝에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쓰던 화장실이 통째로 헐려 있었다.

마침 문이 열려 있는 집이 있어 안을 들여다봤다. 노인 한 명이 쪼그린 채 어둠 속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70대로 보이는 주민 A씨와 얘기를 나눴다. 그는 "집안에 화장실이 없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재래식이긴 하지만 공동 화장실마저 2주 전쯤에 없어졌다"고 했다.

그는 화장실이 있던 자리의 땅 주인이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고 화장실을 철거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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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상가로 판자촌의 화장실이 허문 모습을 설명한 삽화. ⓒ 김상현


주민들은 화장실이 철거된 후 영화관 화장실을 사용했다고 했다. 그러자 영화관 측에서 불만을 표시했고 그 뒤로 대부분 집에서 볼일을 보고 있다. 미안한 마음에 영화관 화장실을 쓰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B씨는 "외곽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시내 한복판에 이런 동네가 있다는 것은 포항시의 수치"라며 "절대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된다. 대부분 갈 곳 없는 노인들이고 평생을 대흥동을 떠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시가 이주대책을 내놓진 못하더라도 공동화장실은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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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쪽방촌. 롯데시네마 건물과 대조된다. 건설폐기물이 쌓인 곳이 화장실을 허문 자리. ⓒ 김상현


사정이 이런데도 포항시는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시 주민복지과와 청소과, 북구청 건축계는 등 떠밀기에 바빴다. 서로 담당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화장실이 사유시설이어서 주거환경 개선사업에도 해당하지 않고, 이동식 화장실도 자연발생 유원지에만 설치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화장실을 만들어 주는 게 긴급복지도 아니라고 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나마 동 주민센터가 문제 해결에 나섰다. 19일 주민센터 관계자는 "건축업자가 실수로 화장실을 철거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화장실이 있던 자리는 국유지다. 화장실의 원상복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해당 지역구 시 의원인 권광호·김상원 의원은 "수십 년 동안 있던 화장실을 맘대로 허무는 것은 안 되는 일"이라며 "현장을 방문해 문제점을 확인한 뒤 지역구 의원들과 상의해 시에 대책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포항시 #중앙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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