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적인 사고의 지성인들, 책에서 길을 찾다

[서평] 장동석의 <살아 있는 도서관>

등록 2012.02.29 16:38수정 2012.02.29 16:38
0
원고료로 응원
a

책겉그림 〈살아 있는 도서관〉 ⓒ 현암사

▲ 책겉그림 〈살아 있는 도서관〉 ⓒ 현암사

어젯밤 어느 프로그램에서 서울 시장을 인터뷰한 걸 봤다. 그가 앉아 있는 집무실 광경도 신선했고, 그가 품어내는 말도 공감이 갔다. 새로 구상한 뉴타운 정책이라든지, 아들의 병역에 관한 의혹들, 그리고 민주당에 입당한 진정한 속내까지도 모두 보여줬다. 무엇보다도 힘든 시민들을 품고 대화로 나아가려는 자세가 압권이었다.

 

그처럼 이 사회를 이끌려면 적어도 시대상황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더욱이 그 시대가 요구하는 지성도 돋보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말만 무성한 게 아니라 그 행동도 그대로 묻어나야 한다. 그럴때만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그의 행보를 모두 닮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 인물들은 물론 책에서 배움을 얻는다. 그건 박원순도 마찬가지다. 수감사 시절 그는 전투하듯이 책을 읽었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 객원연구원 시절 그는 그곳의 책들을 모두 보고야 말겠다는 집념을 불태웠다. 아름다운 재산을 구상한 것도 실은 그때 읽은 책들 속에서 나온 것이다.

 

장동석의 <살아 있는 도서관>(현암사)은 사람과 책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사회 곳곳을 이끌고 있는 한국의 지성 23인에 관한 책 탐방서라 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껏 그들이 읽은 책들 가운데 어떤 책들이 영향을 끼쳤는지 그 깊은 면면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이 책을 대하는 독자들마다 추천하는 이들이 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고전의 광대무변한 세계를 누비고 있는 고미숙씨를, 어떤 이는 인간 냄새나는 한국형 평전을 그리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을, 또 다른 이는 여성학과 한의학의 행복한 만남을 엮어나가는 한의사 이유명호씨를 추천할 것이다. 그들의 삶과 그들이 읽었던 책들이 오늘날에도 생생한 감흥과 도전을 준다는 이유인 까닭이다.

 

그러나 내게 색다른 감흥과 도전을 준 이들은 이만열 교수와 김두식 교수, 그리고 양희창 목사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목회자의 입장에서 이 세상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을 그들이 안내해 주는 까닭이다. 당연히 그들이 소개하는 책도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조직이 까딱 잘못하면 어떤 권위주의 체제보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30여 년이 흘렀다고 해서 <야훼의 밤>의 가치가 떨어진 것은 아니다. 지금의 기독교 단체나 교회, 또는 조직들의 현실과 실상이 그 시절 <야훼의 밤>의 배경이 된 선교단체에 견주어 그리 나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51쪽)

 

이는 헌법학자인 김두식 교수가 <야훼의 밤>을 읽어보도록 추천한 이유다. 그것은 한국교회에 답습되고 있는 엉뚱한 권위를 해체시켜야 하는 까닭도 있다. 그런데 그 책은 이슬람에 관하여 전문가인 이희수 교수가 추천한 <정체성과 폭력>에도 일치한다. 이른바 도그마적인 정체성이 모든 사물과 사건을 선악의 구도로만 이해시키려 한다는 게 그것이다. 중동과 이슬람을 무조건적으로 단죄하는 경향이 그 구도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안에서 발견한<신약성경>에 매료되어 지금껏 한국기독교 역사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이만열 교수. 그는 한국기독교가 민족주의 요소를 지닐 것을 강조한다. 그것이 이기백의 <한국사신론>과 찰스 라이트 밀스의<들어라 양키들아>를 추천한 이유일 것이다. 한편 그는 한국교회의 개편 찬송가에 대한 일침을 가한다. 이유인 즉 새 찬송가의 가사가 은혜와 묵상을 방해하고,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들이 만든 찬송가가 너무 많다는 이유다.   

 

"사실 대안학교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의 동의가 절대적이다. 공교육 부적응이 이유가 아니라 '다르게 살겠다는 절대적 의지'가 대안학교를 찾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양희창 교장의 생각이다."(200쪽)

 

이는 제천 간디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양창의 목사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그곳에 전념한 것은 간디의 불복종 정신과 공동체를 지향한 열정 때문이다. 더욱이 신자유주의 물결로 양극화 문제가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이 때에 진정으로 소박한 꿈을 이루고 싶은 그 대안이기도 하다. 그런 마음을 품기까지 어떤 책이 영향을 미쳤을까? 간디의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가 그에게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렇듯 이 책에 등장하는 한국의 지성인들이 추천하는 책은 다 다르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소개하는 책이 몇 권 있다. 이른바 <사상계>와 <기독교사상>,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루쉰의 <아Q정전>,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에드워드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그것이다.

 

아울러 내 눈에 새롭게 띄는 책도 있다. 찰스 라이트 밀스의 <들어라 양키들아>, 장현광의 <우주설>, 데이비드 애튼 보로의 <식물의 사생활>, 윤노빈의 <신생철학>, 조성기의 <야훼의 밤>, 존 하워드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이 그것이다.

 

목회자로서 민족주의 색채 갖출 건 무엇인지, 신학과 과학의 만남은 어떤 출구에서 가능한지, 한국교회의 권위주의 요체를 개혁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그 점점을 알고자 하는 까닭에서다.

 

지금은 바야흐로 융합적인 사고의 시대다. 환경과 철학과 기술과 문학과 문학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대화하는 통섭의 시대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려고 해도, 부부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려 해도, 그 누구와도 외연을 넓히려 해도, 그야말로 총체적인 독서가 필요한 시대다. 그런 바탕에서 시대를 이끄는 인물도 태어나기 마련이다.

살아있는 도서관 - 천천히 오래도록 책과 공부를 탐한 한국의 지성 23인, 그 앎과 삶의 여정

장동석 지음,
현암사, 2012


#살아 있는 도서관 #야훼의 밤 #김두식 #이만열 #장동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