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경찰관 아버지의 폭력, 아들이 그대로 재현

[서평] 학교 폭력 다룬 <방관자>를 읽고

등록 2012.03.12 14:01수정 2012.03.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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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가 그런 일에 끼지 말라고 했어. 난 문제가 생기는 걸 원치 않아."
"그리핀이 좀 거칠긴 했지…. 근데 말이야…. 그때 네가 뭐라고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냐? 바로 얻어 터졌을 걸?"
"우리가 참견할 일이 아니야."
"누구한테 그 사실을 말하겠냐? 교장선생님? 담임선생님? 선생님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봐, 에릭. 내 말 잘 들어. 그냥 쉽게 생각해. 왜 문제를 키우려는 거야, 응? 맞는 애는 항상 있기 마련이야. 그게 인생이야. 과학에서는 그걸 뭐라고 그러는지 알아? 그런 걸 자연선택, 적자생존이라고 하는 거야."
-<방관자>에서

얼마 전 그리핀은 할렌백을 폭행했다. 자칫 장애를 입거나 목숨까지 잃을 정도로 심한 폭행이었다. 그날 얼떨결에 함께 있었던 에릭이 함께 있었던 또 다른 아이들에게 "그리핀이 너무 심했다. 우린 그걸 왜 막지 못했는가?"라고 묻자 아이들은 이처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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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 ⓒ 미래인

<방관자>(미래인 펴냄)는 아이들 사이의 폭력과 집단 따돌림을 다룬 청소년 소설이다. 책속 아이들의 대답이나 모습은 우리 아이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니, '우리 아이들도 이처럼 휩쓸리고 누군가를 따돌리고 폭행까지 하겠구나!'의 생각이 들곤 했다.  

문득 생각나는 것. 지난 한 해 동안 딸은 종종 "화장실에서 담배피우는 아이들(담배 연기)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곤 했다. 딸은 한 번씩 "선생님 말대로 담배 피는 것을 보면 핸드폰으로 찍어 선생님께 증거를 제시하겠다"고 했다.

그런 아이에게 난 첫번째 아이의 엄마처럼 "끼어들지 말고 그냥 참으라"고 애원했다. 소설 속 할렌백처럼 나쁜 애에게 밉보이거나 혹은 보복을 당해 시시때때로 (집단)폭행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집단 따돌림 '모른척'...어쩔 수 없는 선택

최근 집단 따돌림과 폭행 관련 보도가 좀 많았나. 다른 엄마들 역시 아마도 나처럼, 소설 속 아이의 엄마처럼 끼어들거나 참견하지 말기를 당부하지 않을까. 못 본척하거나 관심 끄라고, 개입되지 말라고 말이다. 잘못된 줄 알지만, 이런 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더 큰 폭력과 왕따를 양산한다는 걸 잘 알지만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소설은 내 친구 중 누군가 심하게 맞는 것을 보면서도 끼어들기 싫어서, 그리고 귀찮아서,혹은 그 애 눈에 거슬리거나 보복 당할까봐 두려워서 등과 같은 이유로 폭력을 방관하거나 침묵하면 언젠가 나도 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중2 에릭은 얼마 전 오하이오에서 롱아일랜드로 이사 온 전학생이다. 대부분의 전학생들처럼 에릭 역시 친구들을 사귀고 학교생활에 적응하는데 온 신경을 쓴다. 이런 에릭이 처음 만난 애는 케첩 범벅이 돼 도망치는 할렌백과 그 뒤를 쫓는 그리핀 무리.

아이들 폭행에 우두머리격인 그리핀은 인사 잘하고 잘생긴 훈남이다. 게다가 어른들 맘에 드는 말만 골라서 한다거나 비위 잘 맞추고 워낙 싹싹하다. 그런지라 어른들과 선생님은 그리핀이 실은 못된 아이란 걸, 아이들을 이용해 맘에 들지 않는 아이를 괴롭히거나 폭행한다는 걸, 도둑질까지 한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

<방관자>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방관자'의 도덕적 딜레마를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으로 들려준다. '방관자가 곧 다음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폭력에 대한 방관과 무관심 혹은 침묵은 또 다른 폭력을 자라게 한다.'와 같은 메시지로 '폭력에 대한 방관과 침묵도 또 다른 폭력'이라는 걸 경고한다.

에릭에게 그리핀은 호의적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에 그런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는 자기 집으로 데려가 자신의 보물 1호와 같은 소중한 것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들키고 싶지 않은 치욕스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에 에릭 역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등 마음을 털어 놓으며 그리핀과 어울리게 된다.

….아이들이 이 게임(주: 한 사람을 상대로 여러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팰 듯 주먹 등이나 말로 겁을 주는 일명 겁주기 게임)을 하는 동안 에릭은 한마디도 안 했다.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에릭은 생각했다. 그 못된 장난에 참여한 적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할렌백을 괴롭히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한 적도 없고, 그 게임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에릭은 한 걸음 물러난 채, 그저 못 본 척했다. 하지만 사실 에릭은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었다. 복도에 있는 다른 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점차 그 장난의 본질을 깨닫기 시작했다. -<방관자>에서

에릭은 그리핀의 호의로 무리들과 어울리며 여럿 아이가 한 아이를 희생물로 삼아 놀리는 겁주기 게임이나 폭행에 가담하게 된다. 그리하여 누군가를 괴롭히고 폭행하는 것을 수없이 보게 된다. 하지만 자신은 이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으니, 그리고 누군가를 직접 폭행하지도 않으니, 그저 보고 있는 정도니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까?

에릭이 침묵과 방관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하는 순간, 그리핀은 함께 어울렸던 무리들과 함께 에릭을 처참하게 폭행한다. 이어 에릭의 사물함에 이상한 것이 들어 있으니 검사를 해야 한다는 등의 허위신고로 그동안 폭행을 방관한 에릭은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누구에게나 그래왔듯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그물을 친 그리핀은 에릭을 협박한다. (에릭이) 애견 산책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 로젠 아줌마네 집에서 수집용 오래된 은화 몇 개를 훔쳐 자신에게 주면 폭행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에릭의 개인 사물함에 퇴학 대상 불법 소지물인 약이나 무기 등을 넣겠노라 협박하는데….

사실 학교 폭력, 집단 괴롭힘 문제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요즘처럼 심각한 적은 없었다. 주인공 에릭은 파란 눈의 아이이지만, 사실 우리 아이들의 자화상과 같다. 청소년 대부분이 그와 같은 고민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방관자의 태도를 벗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면, 집단 괴롭힘 문제와 학교 폭력은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이 책이 우리 아이들의 고민을 덜어주고, 학교 폭력의 진정한 해법을 알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천사 '신순갑(청소년 폭력 예방재단 사무총장)'

수많은 아이들이 이 책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약간은 고통스럽겠지만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추천사 '퍼블리셔스 위클리(미국 출판 전문지)'

폭력 근절 이유, 또 다른 폭력을 부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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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미래인

1961년 뉴욕 주 원토에서 태어나 뉴욕주립대학을 졸업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대형 출판사 '스콜라스틱'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모리스 샌닥, 윌리엄 스타이그, 에릭 칼 등 유명 아동문학가들과 교분을 쌓게 되었고, 이에 자극받아 '나라고 못 쓸소냐' 하는 패기로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다.

1997년 제1탄을 펴낸 '직소 존스 미스터리 시리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일약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 시리즈는 현재 40권이 출간되었으며, 1천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방관자>는 그의 첫 청소년 소설로, 2009년 출간 이후 "고통스럽지만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주니어 라이브러리 길드(JLG)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또한 뉴욕, 플로리다, 버지니아 등 미국 전역에서 중학교 사회과 토론교재로 널리 읽히고 있다.(책에서)

폭력을 근절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기 때문이다. 폭력 속에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폭력을 행사할 확률이 높단다.

<방관자>는 이에 대한 경고까지 놓치지 않는다. 허구한 날 맞기만 하던 할렌백이 그리핀의 실체를 알아채고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에릭을 그리핀 일당에게 유인해 무리들과 함께 폭행하는 것으로.

허구한 날 술 속에 빠져 그리핀의 눈이 밤탱이가 되도록 패는 전직경찰관 그의 아버지는 폭력으로 폭력을 양산하는 전형적인 인간이다. 엄마와 누나가 떠나버린 집에 남겨진 그리핀은 온몸으로 받아낸 아버지의 폭력을 친구들에게 고스란히 재현하니 말이다.

이런 점에서 그리핀이 한편 가엽고 안타까운 것을 어쩌랴. <방관자>는 아이들에게 폭력의 옳지 못함과, 누군가 폭력을 당하고 있으면 방관하거나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폭력 앞에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등을 제시한다.

덧붙이는 글 | <방관자>ㅣ저자:제임스 프렐러ㅣ역자:김상우ㅣ미래인 출판사ㅣ2012-3-5ㅣ값:9500원


덧붙이는 글 <방관자>ㅣ저자:제임스 프렐러ㅣ역자:김상우ㅣ미래인 출판사ㅣ2012-3-5ㅣ값:9500원

방관자

제임스 프렐러 지음, 김상우 옮김,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2012


#학교 폭력(폭행) #집단 따돌림(왕따) #집단 폭행 #청소년 소설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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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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