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노종면 앵커를 기억하십니까
부끄러운 YTN, 사장님 좀 바꿔주세요

[기고] 4년 전 치열하게 싸우고도, 우리가 또 싸움에 나선 이유

등록 2012.03.20 18:09수정 2012.03.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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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22일 오전 11시 20분]

2010년 10월 24일 서울 남대문로 YTN사옥 앞에서 열린 'YTN 구본홍 사장 출근저지 투쟁하는 100일 기념 촛불문화제'에서 YTN 카메라기자가 카메라에 '공정방송' 스티커를 붙이고 취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YTN에서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시작된 건 벌써 4년 전. 이명박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언론특보를 지냈던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내정되면서 부터였습니다. 특정 후보의 선거캠프 출신 인사가 언론사 사장이 되면 뉴스의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으로 싸움은 시작됐습니다.

민중가요 한 번 불러보지 않았고, 팔뚝질 한 번 해보지 않았던 YTN 노조원들이었지만, 투쟁의 강도는 무척 높았습니다. 주주총회를 한 차례 무산시켰고 낙하산 사장의 출근을 저지했으며 전면 파업에까지 돌입했습니다. 공정방송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달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권력의 탄압은 무참하리만큼 가혹했습니다. 파업 하루 전날인 휴일 아침, 가족이 보는 앞에서 기자 4명을 긴급체포하고, 노조위원장이던 노종면 앵커는 구속시켜 버렸습니다. 6명이 해고를 당하고 33명이 징계를 당했습니다. 너무나 가혹하고 억울했습니다. 목이 잘리고 차가운 감방으로 보내지는 동료들을 바라봐야만 했던 주변 동료와 노조원들 또한 고통스러웠습니다. 

극단의 대결은 합의를 가져왔습니다. 노조가 구본홍 사장을 인정하는 대신 사측은 구속된 노종면 위원장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해직자 복직 문제는 법원의 판결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공정방송을 훼손하지 않도록 강력한 제도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낙하산 사장 때보다 더한 암흑기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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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YTN 해직기자들이 2009년 11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해직·징계무효소송' 1심 선고공판에서 "구본홍 전 사장 반대 투쟁을 벌인 노조원에 대한 사측의 징계는 부당하므로 해고는 무효"라며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파업과 구속, 해직의 큰 아픔으로 맺은 작지만 소중한 결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낙하산 구본홍 사장이 물러나고 배석규씨가 새로운 사장으로 등장했습니다.


사내에는 노조를 제압하지 못한 구본홍씨가 버림받고, 새로운 진압군으로 배석규씨가 나섰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기 시작했습니다. YTN 출신 사장인 만큼 내부적으로도 의견이 분분했지만 배석규씨의 정체가 드러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장 자리를 꿰찬 배석규씨는 가장 먼저 YTN의 대표 프로그램이던 <돌발영상>을 무력화 시켰습니다. 기자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하던 보도국장 복수추천제를 일방적으로 폐지한 뒤 임명제로 바꿔 버렸습니다. 뉴스의 공정성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했던 공정방송위원회 역시 멋대로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편집권 독립과 공정방송 지키기를 위한 장치들은 한 순간에 무장해제됐고 YTN에는 낙하산 구본홍 사장 때보다 더한 암흑기가 찾아왔습니다.

사장의 부당한 조치에 항의하던 사원들은 지방으로, 자회사로 쫓겨났고 <돌발영상> 제작진은 해직과 징계, 인사발령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앵커들은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비정규직으로 교체됐고, 보직 간부들은 위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인사'들로 채워졌습니다.

깨지고 피 흘려도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

당초 법원 판결에 따라 해직자 문제를 처리하자던 사측은 법원이 해직자들에 대해 복직 판결을 내리자, '대법원 판결을 따른다'는 억지 논리를 내세웠고, 이 때문에 해직자 문제는 3년 넘게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기사들은 점차 자취를 감췄고, 정책 홍보 기사들이 스멀스멀 뉴스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한 간부는 다른 부서 후배에게 자기 부인이 운영하는 업체를 소개하는 리포트 제작하라고 몰래 지시하는 등 민원성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간부는 회사 재산인 공연 티켓을 자신의 재판 기간에 검찰총장과 검사장급들에게 민원용으로 건네려고 시도하는 등 부정부패가 득실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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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문화마당에서 열린 '방송3사(MBC, KBS, YTN) 공동파업 집회'에서 각 방송사 노조원들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청와대 지시를 받고 <돌발영상> 방송을 막았던 간부는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영전해갔고, 언론인의 정치권 진출을 비판하던 기사를 쓰던 간부들은 축하 전화를 주고받으며 연신 웃음을 흘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는 사이 부끄러움을 참지 못한 일부 기자들은 회사를 떠났고, 남은 기자들은 자기 검열과 무력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습니다.

3년간 이 모든 일을 저질러놓은 배석규씨가 또 3년간 사장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사원 260명이 실명을 내걸고 반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파업이라는 싸움을 시작합니다. 권력의 칼부림에 이미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YTN이 언론이라면 공정방송의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서는 존재의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깨지고 피를 흘려도,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쓴 기자는 YTN 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쓴 기자는 YTN 기자입니다.
#YTN파업 #배석규 #구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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