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의혹 사건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18일 오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 출연해 이번 사건의 막전막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한기
청와대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등 민간인 불법사찰세력과 영화 속 조직폭력단은 꼭 닮았다.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의 순차적인 폭로 내용을 접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조폭영화에서 가장 흔하게 나오는 내용이 '덮어쓰기'다. 두목은 살해할 대상을 지목하고, 하급 조직원이 이를 실행한다. 경찰에 체포된 조직원은 아무도 믿지 않는 '나 혼자 결심하고 실행한 일'이란 진술을 반복하고, 두목은 '나는 전혀 몰랐다'고 둘러대고, 경찰은 살인교사의 증거를 찾아 헤멘다. 혹은 범행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조직원이 '형님' 대신 모든 혐의를 덮어쓰는 경우도 있다.
청와대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증거 인멸과정에도 바로 이 '덮어쓰기'가 등장한다. 대포폰을 지급하고 증거인멸을 지시한 청와대가 이 사건을 총리실 직원이 처벌받는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했다는 정황은 장 주무관이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를 통해 공개한 최종석 전 행정관과의 대화 녹음에서 이미 드러났다. 조폭 두목의 혐의를 일개 조직원에게 덮어씌우듯, 청와대의 증거인멸 개입을 총리실 직원들에 몽땅 덮어씌우려 한 것이다.
문제는 불법사찰 사건 수사가 조폭 사건 수사만도 못하다는 점이다. 장 전 주무관에 따르면 검찰 수사 과정에서 그는 대포폰 지급과 증거인멸 지시가 청와대로부터 왔다는 걸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은 해당 내용이 담긴 신문조서를 법정에 제출하지 않았다. 조폭수사에 비유하자면, '형님이 살인을 지시했다'는 피의자의 진술이 있었지만 수사관이 "못 들은 걸로 할게"라며 넘겨버린 상황이다.
조폭처럼 '뒤 봐주겠다' 약속해놓고 미국 도피조폭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또다른 장면은 '형님'이 범행을 대신 저지른 조직원에게 '출소 뒤엔 내가 널 책임질 테니, 맘 편히 있다 와라'고 약속하는 대목이다. 몇몇 영화에서 하급 조직원은 복역하다가 출소 뒤 행동대장 같은 중책을 맡는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조직원의 가족은 '형님'이 보살펴준다. '형님'의 혐의를 덮어쓰고 감옥에서 썩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요 '뒤 봐주기'다.
장 전 주무관이 공개한 녹음에서 증거인멸 혐의를 덮어쓰도록 '권유'한 청와대 최 전 행정관도 장 전 주무관의 취직자리를 보장하겠다거나 필요하면 현금을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하며 끝까지 입을 다물라고 회유했다.
장 전 주무관은 2억 원을 준다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으로부터 2000만 원을 건네받았다가 돌려줬다고 주장한 바 있고, 19일엔 "작년 4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윤리비서관이 마련했다는 5000만 원을 받았다"고도 폭로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조폭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 '뒤를 봐주겠다'던 최종석 전 행정관은 작년 8월 미국 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관 주재관으로 가버렸고 장 전 주무관의 폭로가 시작된 시점부터는 잠적해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이영호 청와대 전 고용노사비서관은 불법사찰 사건 수사 당시 퇴직해 지금은 행방이 묘연하다. 재수사 시 신병 확보부터 서둘러야 할 판이다.
조폭 조직문화가 그대로... 국민 세금으로 상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