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부 또 있을까?...'정권교체 위한 필독서'

[서평] 15명 페이스북 이용자와 함께 읽은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등록 2012.03.21 14:28수정 2012.03.2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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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표지 ⓒ 개마고원

위키리크스가 25만1287건의 외교문서를 폭로한 이후, 대한민국에서 새로 18만 건의 외교문서가 공개되었다. 위키리크스에 침묵하던 언론은 이번에는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폭로자가 위키리크스가 아니라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다. 그것도 1981년 외교문서다. 20년도 더 지난 외교문서에 수많은 언론이 열광한 이유는 뭘까?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이하 <그들은…>)을 읽은 15명의 독자들은 59개의 댓글을 달며 함께 읽기에 참여했다(바로가기). <그들은…>은 미국 외교전문 속에 비친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인, 관료들의 모습을 현직 기자가 탐사 저널리즘의 전문성과 열정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용진 기자의 이력보다 이 책을 잘 표현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는 이미 옛 이름이 되어버린 <미디어포커스>의 데스크와 KBS 탐사보도팀장을 역임했으나 MB정권 때 프로그램이 폐지당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부산으로 전보되었다가 다시 울산으로 옮겨졌다. 마치 누군가가 보기 싫다고 자꾸 밀어낸 것처럼 저자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밀려났다.


책을 읽은 박정희씨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분노를 조절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세교씨는 더 나아가 "절반 정도 읽었을 뿐인데도 참담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정부의 외교정책이 국익보다 국민을 상대로 한 프로파간다에 주안점이 있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오일수씨 역시 "책을 읽는 내내 이렇게 분노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오영미씨 표현대로 "이렇게 국민을 외면하는 정부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떤 대목에서 화가 났는지는 가지각색이지만 내가 책에서 화가 난 점을 다섯 가지만 꼽자면 아래와 같다(괄호는 책의 쪽수).

1. 미국 정부의 FTA 재협상 입장을 확인하고 동의했으면서도 국민들에게는 '재협상은 없다'고 외치는 사이에 FTA 재협상 당사자들은 미처 대응할 기회를 놓쳐버렸다.(275)

2. 남북 대치는 정권 초기부터 정해진 입장이며, 대통령은 이 상황을 편안하게 여겼으면서도, 정부는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북한이 어깃장을 놓았다는 식으로 몰고 갔다.(325)

3. 정부는 국민에게 굴종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미국에게 배우처럼 연기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연기를 해준 대가를 지불했다.(113)


4. 2007년 9월 7일 故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의 복수의 '정보원'(사실상 간첩)들은 미국에 대응할 대통령의 필승카드를 누설함으로써 쇠고기 시장을 매우 불리하게 만들어버렸다.(336)

5. 2007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직후 주한 대사는 "한국 새 정부의 생각을 주조하고"라는 표현을 썼다.(372)

서준규씨의 절규가 가슴을 찌른다.

"대한민국은 자주와 민주가 있는 나라잖아요. 국민 모두가 그런 생각으로 이 땅에 살고 있지 않나요?"

[논쟁] 정권 교체 VS 국민 변화

책을 읽은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한국 정부의 영혼 없는 사대주의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렸다. 정권교체가 우선이라는 주장과 정권교체보다 더 본질적인 국민의식의 문제라는 주장이 부딪쳤지만 이 두 가지는 상호적이기 때문에 닭과 달걀의 관계와 같다.

김재원씨는 이 책을 "정권교체를 위한 필독서"라고 불렀고 오영미씨도 이 주장에 동의하며 "정권교체가 필수"라고 말했다. 김문성씨 역시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은 한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주류 정치집단이며, 이들은 뭐 하나 탐욕적·음모적이지 않은 게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서 좀더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독자들도 많았다. 정철희씨는 이 책을 "국민의식전환용 필독서"라고 불렀다. 권오철씨는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이 나라는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라고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이현석씨가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위키리크스로 본 관료들은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을 때 잡음이 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미국의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외교정책과 국내 권력자들의 권력욕, 관료들의 보신주의가 맞아떨어진 데다, 론스타 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까지 가세한 4각의 편대가 완성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압제는 점점 더 세련되어 지고 숨겨져서, 그 모양새를 알기 어렵"게 되었다(배범호씨).

세련된 압제는 일정 정도 역사적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더해졌다. 김진태씨는 현재의 미국 외교 정책은 미국의 창건자 중 한 사람인 해밀턴의 중상주의, 즉 "돈이 되면 뭐든지 한다"는 기조에 기반한다고 말했다. 주한 미 대사관이 론스타 문제와 무기 판매 문제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다.

한국 역시 김세교씨의 지적처럼 신라시대에는 당나라, 조선시대에는 명나라,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일제, 미군정, 미국 정부에 기생하던 노예근성이 1000여 년 동안 반복되어 왔다.

위키리크스로 본 한국 언론의 자화상

박준씨가 제기한 정보비대칭 문제도 음미해볼 만하다. 정보공개를 최대한 하는 외국에 비해 한국 정부는 정보를 꽁꽁 숨겨놓는다. 그 사이에 대한민국의 국익은 산으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다. 박준 씨는 정보비대칭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국민이 나름대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을 주문했다.

위키리크스가 처음으로 외교전문을 공개했을 때 영국의 <가디언> 등 글로벌 언론은 대대적인 검증 작업에 착수해서 큰 성과를 이뤄냈다. 반면 우리 언론은 그다지 보도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이 점을 무척 이상하게 생각했다. 때문에 김재원씨는 주류 언론의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저자인 김용진 기자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위키리크스의 정보들이 현 정권에 타격을 주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보도를 꺼린다는 것. 이는 현 정권과 주류 언론이 사실상 공동 운명체라는 말이다.

둘째, 전문성의 약화에 있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에 정부 광고를 끊거나 기업에 압력을 가해 기업광고를 끊는 등의 방식으로 비판 언론사에게 큰 타격을 준다. 그리고 김용진 기자의 경우와 같이 언론사 내에 탐사보도를 하는 조직이나 개인들을 제거함으로써 언론의 손과 발을 잘라버린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은 기자정신과 탐사 저널리즘의 전문성, 애국심 등 기자가 갖춰야 할 모든 점을 두루 갖춘 저널리즘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기자를 하나의 직장인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기자 지망생이라면 큰 영감을 받을 것이다.

언론의 진화된 모습을 읽어낸 독자도 있었다. 이희진씨는 <닥치고 정치>와의 비교를 통해서 "<닥치고 정치>가 저자의 추론에 근거해 아니었으면 좋겠으나 아마도 그랬을 것이 뻔한 이야기들의 아귀를 끼워맞춰 개안으로 이끌었다면, <그들은…>은 그 추론을 방증할 만한 얘기들을 그야말로 쏟아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닥치고 정치>와 <나는 꼼수다>는 언론 전체에 대한 에디팅과 쇼(난장)의 결합이다. 기사의 편린들을 모아서 모자이크를 짜맞추지만 '~라고 추정되는'을 많이 사용하기에 소송 등 외부공격이 잦다.

하지만 <그들은…>은 위키리크스라는 새로운 언론의 모델과 정통 탐사 저널리즘의 만남이 시너지를 일으키는 경우다. 폭로된 외교전문 자체를 부정할 수 없으며, 이를 토대로 한 기사 역시 부정할 수도 공격할 수도 없다. 나는 <그들은…> 같은 모델이 종국에는 더욱 파괴력을 발휘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함께 읽기를 진행하면서 독자들의 생각을 하나씩 보태어 보았더니 무척 흥미로웠을 뿐만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음을 느꼈다. 우리는 하나하나가 대단히 중요한 정보원일 뿐만 아니라 국가도 무시 못할 만큼의 권력이다. 단, 연결돼 있을 때만.

덧붙이는 글 | *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김용진 씀, 개마고원 펴냄, 2012년 1월, 400쪽, 1만6000원
* 이 기사는 필자의 페이스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김용진 씀, 개마고원 펴냄, 2012년 1월, 400쪽, 1만6000원
* 이 기사는 필자의 페이스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 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 대한민국의 알몸

김용진 지음,
개마고원, 2012


#위키리크스 #김용진 #그들은 아는,우리만 모르는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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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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