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동의 없는 정신 건강검사, 괜찮은가

충분한 토론이 먼저 선행돼야...예민한 감수성이 필요한 때

등록 2012.03.27 11:47수정 2012.03.2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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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때때로 사회적·정치적 동물임을 잊어버릴 때가 많아-인간임을 잊어버리는 때도 있어 걱정이다-, 요즘 작심하고 셰리 버먼의 <정치가 우선한다>를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유럽에서 어떻게 사회민주주의가 형성되었는지 탐색하는 내용으로, 사회과학 분야에는 워낙 문외한이어서 공부하는 심정으로 읽고 있는데,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가 파시즘 등장에 관한 부분이다.


놀라운 것은 당시 정치·사회·경제의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인기영합주의적인 정책도 있었지만, 능력과 실력의 중시 같은 공정한 룰의 적용, 철도, 보험, 은행 등의 국유화를 제안하는 등 합리적이고, 공공성이 높은 정책을 지향하면서 파시즘이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획득했다는 것.

살갗으로 접하는 매일 매일의 삶의 문제가 너무 심각했기에, 다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반유대주의가 가져올 파국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바꾸어 말하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드높은 명분에 모두가 공감하면서, 그것이 배태하고 있는 숨겨진 폭력과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낙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훗날 파시즘은 광기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학교폭력이 연일 문제가 되면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올해 전면적으로 전체 학생들에 대한 정신건강검사를 실시하고, 내년부터는 학년을 지정하여 정신건강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학교의 장은 제2조제1호("건강검사"란 신체의 발달상황 및 능력, 생활습관, 질병의 유무 등에 대하여 조사하거나 검사하는 것을 말한다)의 정신건강 상태 검사를 실시함에 있어 필요한 경우에는 학부모의 동의 없이 실시할 수 있다"는 학교보건법 제7조제6항이 신설되었다. 사실상 학생들의 정신건강 검사는 강제 의무 이행 사항이 된 것.

몇 해 전 정신 건강 증진 시범학교 사업을 직접 신청해, 학생 정신건강 실태조사 사업에 참여를 했었다. 선생님들께 사업의 내용을 공유하고, 가정통신문으로 학부모님께 사업의 취지를 알리는 한편, 학부모 동의서를 취합하며, 학생들이 답변한 내용을 정신보건센터에 보내는 등 수시로 담당자와 업무 사항을 공유하는 행정적인 업무는 둘째 치고, 문제는 1차 정신건강검사 결과가 나온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검사 결과를 알고, 놀라신 학부모님과 아이들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중점관리가 필요한 대상으로 나온 학생에 대하여 정신보건센터로 의뢰하기 전 학부모님께 다시 동의를 구하기 위해 별도로 가정통신문을 보냈는데, 선뜻 동의하신 분이 한 절반 정도였던 것 같다. 학부모님이 동의했더라도, 아이가 싫어할 수도 있으므로, 다시 해당 학생에 대해 보건실에서 전문기관 연계 동의 여부에 대해  별도로 물었는데, 1/4가량은 거부했다.  


보건실에서 1차 상담을 해보니, 중점 관리가 필요한 학생은 크게 네 부류로 나누어졌다. 첫째, 자기 스스로도 뭔가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적극 해보고 싶다는 아이, 둘째,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전문적인 관리까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 셋째,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결과가 그렇다면, 전문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 넷째, 자신에게는 문제도 없고, 따라서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 없으며, 심지어는 검사 결과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아이.

똑같은 검사를 하고도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시범 사업을 하면서 가장 염려되었던 것은, 자칫 아이들이 검사 결과로 인해 받을 상처였다. 충분한 보건교육이 없는 상태에서 예민한 아이들은 스스로를 낙인찍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예방이란 명분 아래, 학부모의 동의 없이도 학생들의 정신건강 검사가 가능하다는 규정을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가해 및 또는 피해 학생으로 낙인찍힐 우려는 사소한 것으로 여겨져도 되는 것인지 말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 이론 중 한 명제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할 때, 그들이 속한 전형적이거나 표준적인 문화의 관점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정신 질환이 있는 것으로 낙인찍히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사전 동의 없는 감시의 폭력을 행사해도 괜찮은 것인지, 충분한 사전 및 사후 보건교육 없이 정신 건강 검사를 추진할 때 야기될 문제와 우려에 대해 충분한 토론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예민한 감수성이 필요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건교육 #정신건강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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