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저주에 학살... 그들은 '왕따민족'이었다

[해외리포트] 미국 유태인들의 극적인 이미지 반전

등록 2012.03.31 12:10수정 2012.03.3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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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디시 지역에 있는 JCC 건물. 아래는 JCC 로고. ⓒ 위키미디아 커먼스


나는 올해로 미국 생활 13년째를 맞았다. 처음 8년은 북동부 매사추세츠 주의 시골 동네에서, 이후로는 남동부 조지아 주의 메트로 애틀랜타 지역에서 살고 있다. 북부와 남부의 차이, 시골과 메트로 지역의 차이가 크지만 상이한 두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유태인 커뮤니티'의 존재다. 

유태인들의 구심점 'JCC'

JCC(Jewish Community Center)라는 통일된 명칭으로, 메트로 애틀랜타 지역에서는 소위 학군이 좋다는 곳이면 어렵지 않게 JCC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다. JCC는 1854년 볼티모어에 처음 생겨난 것을 시작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유태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조직이다.

메트로 뉴욕 지역에만 48개가 있고, 미국과 캐나다를 합치면 350개가 넘는다. 이들 중 대다수는 미국 동부에 몰려 있지만 서부 샌프란시스코나, 중부 시카고 등지에도 상당수 있으며 미국 내 주요 도시마다 적어도 한 개 이상의 JCC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던 유태민족의 역사를 따라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구 소련에도 180곳, 라틴 아메리카에 70곳, 유럽에 50곳, 그리고 이스라엘에 500곳이 있다고 한다.

JCC는 여타 교육적, 문화적, 사회적 프로그램들과 더불어 유태인 정체성 함양을 목적으로 운영되지만 다른 민족에게도 문호를 활짝 개방해 놓아 누구나 참가하고 시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학령 전 아동들을 위한 프로그램의 질이 높아 유태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여기까지는 한국 사람들이 흔히 유태인들에 대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한다. 머리 좋고, 부지런하고, 교육열 높고, 이스라엘이라는 아주 작은 나라를 가졌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주변 이슬람 세계를 제압하며 잘 사는 민족….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지난 수천 년에 걸친 역사적 사실들에 비춰볼 때 참으로 극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다.


1349년 흑사병이 창궐하던 유럽에서는 병마를 퍼뜨렸다며 유태인들을 불태워 죽였다. ⓒ 위키미디아 커먼스


유럽 대륙의 천덕꾸러기

중국과 일본 사이의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어서 조상 대대로 전쟁이 잦아들 날 없었던 우리 민족의 역사도 기구하기 짝이 없지만, 기독교의 절대적 영향권 아래서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고 유럽대륙을 떠돌아다녀야 했던 유태인들의 역사에 비할 바는 아니다. '나라 없는 민족'으로 근 2천 년을 사는 동안 당한 박해는 이루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기록에 따르면, 서기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었을 때 약 110만 명의 유태인들이 죽임을 당했고, 약 9만 7천 명이 노예로 잡혀 갔다고 한다. 이슬람교를 겨냥한 중세 십자군 원정 때도 반 기독교적이라 하여 유태인에 대한 대량 학살이 수백 년에 걸쳐 자행됐다. 14세기의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조차 유태인 탓으로 돌렸다.

1347년에 시작되어 단 3년 만에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 전염병의 원인을 '신의 분노' 또는 '악마의 소행'으로 해석한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았고, 눈엣가시 같던 유태인들을 보복의 대상으로 삼았다. 수많은 유태인들이 생매장당하거나 불에 타 죽었다.

유태인 커뮤니티를 몰살하기 위한 각종 비방과 흑색 선전은 유럽 각지에서 시대를 막론하고 일상적으로 행해졌다. 기독교로의 개종을 요구 당하면 그때까지 일궈 논 삶의 터전을 모두 버리고 다른 나라로 이주해야 했다. 유태인들 중에 현금을 가지고 돈놀이를 하는 고리대금업자가 많았던 이유도 유럽 각국에서 유태인들로 하여금 토지나 건물을 소유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르네상스 시대로 들어오면서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가 줄어들자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유태인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그것은 폭풍 전야의 고요함 같은 것이었다.

20세기 벽두에 유럽은 1903년 러시아에서 처음 발행된 <시온 장로 의정서> (The 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로 인해 발칵 뒤집어졌다. 19세기 말에 열렸던 유태인 장로들의 회합을 문서화했다고 주장한 이 책자는 '언론과 세계 경제를 조종함으로써 기독교 문명을 타파하고 유태인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목표를 기술해 놓았다.

저자도 불분명한 이 책자는 처음부터 출처를 의심 받긴 했지만, 수많은 번역판을 양산하며 순식간에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더불어 반 유태주의 정서도 또다시 급물살을 탔다.

1920년대에 이르러 이 책자가 러시아 비밀경찰에 의해 완전히 날조된 것이고, 1864년에 발표됐던 프랑스 풍자 작가 모리스 졸리의 <마키아벨리와 몽테스키외의 지옥의 대화>를 표절한 것이라는 분석 기사들이 쏟아졌지만, 이미 대중의 뇌리에 박힌 '유태인의 세계 지배 야욕'을 지우지는 못했다. 히틀러 역시 이 책자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유럽의 뿌리 깊은 반 유태주의에 정점을 찍은 사건, 600만 유태인의 목숨을 앗아간 인류사의 대 참사 '홀로코스트'가 진행되기에 이른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애서 리바이 레크리에이션 센터의 모습. 1904-1906년에 지어진 무료 공중 목욕탕으로 고대 로마 시절의 목욕탕을 본떴는데, 당시 목욕 시설이 없는 슬럼가의 비위생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지어졌다. 센터 이름은 네덜란드 식민지령 시절 저명한 유태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유태인들에게 있어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은 자선행위가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였다. ⓒ 위키미디아 커먼스


신대륙에서도 이어진 수난

이처럼 유럽 대륙의 천덕꾸러기였던 유태인들에게 신대륙으로의 이주는 새로운 희망이자 생존과 직결되는 절박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와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신대륙이라고 해도 그 구성원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유태인에 대한 오래 된 편견도 그들과 함께 대서양을 건너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공영방송 PBS는 지난 2008년 <유태계 미국인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3일에 걸쳐 방영한 적이 있다. 여기에는 1654년 처음으로 신대륙에 발을 디딘 이후 근 350년에 이르는 유태계 이민 역사 속에 명멸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다큐멘터리의 인쇄본을 쓴 베스 웨그너는 어렵사리 성사된 첫 번째 유태인 이민행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브라질의 한 섬이 포르투갈 점령지로 바뀌면서 도망쳐 나온 23명의 유태인들이 '뉴암스테르담'이라 불리던 지금의 뉴욕으로 항해하는 배를 타게 됐다.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령의 총독은 이들의 입항을 거절하기 위해 본국에 금지령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유태인을 두고 '기만적인 족속'이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독한 혐오스러운 적'인 이들은 새 식민지에 해악만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유태인 이주자들은 본국에 있는 유태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은 네델란드 서인도회사를 설득해 이민을 허가 받았다. 이는 네덜란드에 사는 유태인들이 나라에 충성스럽고 경제적으로도 생산적인 주민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태인 미국 이민사의 첫 테이프를 끊는 데는 성공했지만 20세기 전반부까지도 유태인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때론 조직적이고 억울한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1913년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리오 프랭크 사건은 이처럼 뿌리 깊은 반 유태주의가 미국 사회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보여주는 한 가지 예일 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히틀러에 의한 유태인 대량 학살이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유태인에 대한 동정론이 반 유태주의를 넘어설 때까지 미국 내 유태인들의 고난은 계속되었다.

현대에 와서 우리가 유태인에 대해 갖게 된 긍정적인 이미지는 그러니까 지난 반 세기 동안에 미국계 유태인들과 이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신생국가 이스라엘에 의해 새롭게 구축된 것들이다. 하지만 그 이전 수 세기에 걸친 고난의 이민 역사가 없었다면, 아니 수천 년에 걸친 설움의 세월이 없었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유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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