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친일시 주인공 '마쓰이 오장'도 친일파일까

[서평]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등록 2012.03.28 14:40수정 2012.03.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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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표지 ⓒ 서해문집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표지 ⓒ 서해문집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중략)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 서정주, <마쓰이 오장 송가> 중에서

 

시인 서정주가 친일시인으로 분류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마쓰이 오장 송가>의 주인공은 실존 인물이었다. 창씨개명한 이름으로는 마쓰이 히데오, 개명 전 조선 이름으로는 인재웅. 조선인 최초의 특공대원으로 250킬로그램의 폭약을 매단 1식 전투기에 타고 레이테만에 정박 중이던 연합군 수송선단을 향해 돌진해서 숨을 거두었다.

 

'폭풍 추모식' 뒤에 찾아온 것은

 

아들의 전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인재웅의 어머니는 일본 사람들이 전해오는 물건들을 모조리 팽개치면서 "내 아들 내놓으라"며 서럽게 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재웅의 빈소에는 총독부 고위관리를 비롯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뒤이어 대대적인 포상작업이 뒤따랐다. 죽던 당시 오장에서 네 계급이 특진되어 소위로 임관되었다. 개성부의회 주최로 위령제가 열리고 모교인 개성상업학교에서 고별식이 진행되었는데 이날 무려 3000여 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

 

폭풍처럼 밀어닥친 추모 행사 후는 참담했다. 반도가 배출한 최초의 특공대원 '마쓰이 오장'의 유족으로 연금을 받으며 호의호식한 것이 아니라 특공대원 가족에 걸맞은 삶을 강요당했다. 인재웅의 모친은 마흔일곱의 나이에 항공기 공장의 여공원으로, 여동생은 근로정신대원으로 동원됐다.

 

"우리도 헛되이 지낼 수는 없다. 오직 황은에 보답할 길은 전력증강에 이바지하는 것뿐"이라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1945년 2월 15일 기사에서 모녀의 동원 소식을 미담 형식으로 전하고 있다.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내 아들 내놓으라"며 슬피 울던 어머니도 황국신민이란 굴레를 벗지 못한 채 딸과 함께 또다시 근로동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을 노래했던 시인 서정주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오직 황은에 보답할 길은 전력증강에 이바지하는 것뿐"이라며 두 모녀의 동원을 미화했던 <매일신보> 기자의 마음은 편안했을까.

 

일본군 자살특공대원이 된 조선 젊은이들의 삶

 

남해와 살을 맞댄 한적한 도시인 경남 사천에 묘한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이날 소동이 일어나기 두 달 전부터였다. 2008년 3월 일본 여배우 구로타 후쿠미가 주도하는 귀향 기원 위령비 건립실행위원회가 5월 사천 출신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원 탁경현의 위령비 제막식을 열겠다는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좀처럼 한 목소리를 내지 않던 지역의 진보와 보수 단체들은 "물리력을 써서라도 제막식을 막겠다"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책 속에서)

 

일본인들에게는 경외의 대상이면서, 한국인들에게는 친일파라는 낙인이 찍힌 조선인 특공대원들의 삶은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자살특공대의 특성상 피해 당사자들은 대부분 전사했고, 남아 있는 유족들조차도 일본을 위해 자살 공격을 했던 '친일파의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사정을 드러내어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는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을 지킨다는 헛된 명분에 사로잡혀 생을 마감했던 식민지 조선인 자살특공대원들의 삶과 죽음을 보여준다. 서정주의 친일시 '마쓰이 오장 송가'의 주인공인 조선인 최초의 특공대원 인재웅부터 마지막 특공대원 한정실에 이르기까지 조선인 가미카제의 삶과 죽음을 통해 참담했던 과거사를 복원시켰다.

 

해방된 조국에서 그들의 죽음은 정당화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들의 이름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의 죽음을 일방적으로 비판하기엔 당시의 상황이 너무도 참혹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죽음을 섣불리 변호할 수도 없었다.

 

참혹한 식민지 시대만 아니었더라면 모두 저마다의 인생에서 화려한 정점을 찍었을 성실하고 똑똑했던 젊은이들. 그들의 삶과 죽음의 기록 앞에서 꽃다운 젊은이들과 그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통한의 근현대사를 아프게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길윤형 씀, 서해문집 펴냄, 2012년 3월, 368쪽, 1만5000원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 일본군 자살특공대원으로 희생된 식민지 조선인

길윤형 지음,
서해문집, 2012


#가미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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