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안보를 넘어서 핵 없는 세상으로

등록 2012.04.07 11:23수정 2012.04.0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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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핵안보정상회의가 3월 26일-27일 양일간 서울에서 열렸다. 2010년 1차 워싱턴 회의에 이어 '핵테러 대처를 위한 협력 강화와 실천방안'을 논의했다.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핵심 문제의식은 핵테러를 예방하기 위해 핵무기나 방사능 무기로 이용될 수 있는 물질, 특히 '고농축 우라늄(HEU)과 플루토늄에 대한 국제적 관리통제체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안보 문제를 핵군축 ․ 핵비확산 ․ 핵의 평화적 이용으로 요약되는 전통적인 3대 의제와 같은 수준의 의제로 격상시키려하고 있다. 그러나 핵안보를 둘러싼 국제적 논의는 몇 가지 점에서 균형감각을 잃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여하는 국가의 구성에 문제가 있다

우선, 이 논의에 참여하는 국가의 구성에 문제가 있다. 1차 워싱턴 회의(47개국 참석)는 물론 2차 서울회의(53개국 참석예정)에도 핵 확산 혹은 핵물질 관리에 책임이 있는 주요나라 중 일부가 선택적으로 초청되거나 배제되었다.

NPT(핵무기비확산조약) 미가입국인 이스라엘, 파키스탄, 인도는 초청되었다. NPT 가입국인 이란, 시리아, 탈퇴국인 북한은 초청 받지 못했다. 어떤 기준이 작동한 걸까? 포용(engagement)을 의도했다고 말하기에는 북한과 이란에 대해 공평하지 않다. 배제와 압박을 시도한 것이라고 정당화하기에는 핵확산방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파키스탄, 인도 등을 초청한 이유가 납득하기 힘들다.

둘째, 핵군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과 과연 조화되는지 의문이다.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핵물질'이 폐기나 동결의 대상이 아니라 안보의 대상 혹은 관리의 대상으로만 의제화되었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물론 '핵안보'라는 표현에 현실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핵테러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이 시급한 것이 사실이고, 오바마 대통령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핵무기 없는 세상이 그의 생전에 도래할 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안보론이 성립하려면 적어도 핵보유국의 적극적이고 공정한 핵군축 및 비확산 노력이 병행되어야 함에 틀림없다.


이 점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이끄는 미국이 핵 패권주의를 노골화했던 부시 행정부 때와는 달리 '핵 억지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할 만하다. 2010년 미국-러시아 전략핵무기 감축협정(New START) 체결이 그 예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거부해왔던 핵분열성물질생산금지조약(FMCT) 추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참여 등을 공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이 실제 추진한 것은 언발에 오줌누기 수준에 불과하다. 미-러가 전략핵무기 감축협정을 성실히 이행하더라도 미-러는 전세계 핵무기의 90%를 보유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미국은 변경된 핵전략(핵태세보고서NPR2010)에서 조차 '효과적인 핵 억지력은 유지'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또한 불량국가, 혹은 NPT 미가입 국가에 대해서는 '비핵국가라 할지라도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전략도 유지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추구한다면서도 '핵을 방어적 목적에만 사용(Sole purpose)'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 즉 핵보유국간 선제공격금지(No First Use) 정책을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가 핵보유국들에게 요구해온 최소한의 조치였다.

오바마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가입약속은 공화당의 반대로 인해 지금까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핵불열물질생산금지조약(FMCT) 역시 답보상태다. 무엇보다도 유엔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한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핵무기금지협정(Nuclear Weapon Convention)'추진을 거부하고 있다. 핵무기금지협정은 핵비확산조약(NPT)가 핵보유국의 핵폐기 의무를 명시하지 않고 비보유국의 의무만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유엔에서 제시된 대안으로 핵무기를 불법무기로 규정하여 생산을 금지하고 폐기하도록 하는 국제조약안이다.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모호한 경계

셋째, 핵안보정상회의가 핵심적으로 다루는 '무기급 핵분열 물질'의 성격자체가 모호하여 실효성이나 형평성을 지닐 지 의문이다. 특히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모호한 경계 때문에 논란은 더욱 격렬해질 전망이다. 사실 무기용 핵물질과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핵물질을 구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는 어느 핵무기보다 고장난 핵발전소의 위험이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확인되었다. 예컨대, 테러분자에 의해 제조되거나 폭파된 핵물질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원자폭탄을 실전에 사용한 사례는 없다. 하지만 체르노빌, 스리마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 원전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례는 많다.

전세계 약 440개 원자로 중 지금까지 6개가 심각한 핵사고를 일으켰다. '80개 중 하나는 터진다'는 통계가 가능하다. 만약 테러리스트들이 핵테러를 시도한다면 굳이 핵물질을 손에 넣지 않고도 핵발전소를 폭파시킴으로써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도 가능하다. 그런데 핵안보정상회의는 핵발전을 축소하거나 이른바 '평화적 핵 이용'을 제한하기는커녕 도리어 이를 권장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테러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면서, 정작 무엇이 진정한, 그리고 입증된 핵위협이고 어떤 것이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핵보유국들과 그 동맹국들의 자의적이고 편향적인 핵정책

이른바 무기급 핵분열물질 통제의 형평성 문제도 지나칠 수 없다. 미국 정부는 일본과는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의 생산하는 로카쇼무라 재처리 시설을 허용하는 미일 원자렵협정을 맺고 있다. NPT에 미가입국한 핵보유국 인도와는 '민간핵기술'을 교류하는 미-인도 원자력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프랑스 같은 핵보유국의 행보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편, 의장국인 남한의 이명박 정부 역시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한 재처리시설을 건설할 수 있도록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남한은 북한이 핵재처리시설을 보유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쳐왔었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핵안보정상회의의 가장 주된 목적 중 하나가 한국형 원전수출이라고 자랑스럽게 밝히기도 했다. 핵보유국들과 그 동맹국들의 자의적이고 편향적인 핵정책은 다른 핵 비보유국들의 비확산 의욕을 감소시키고 핵보유 열망을 부추길 수 있다.

누구도 안전하게 관리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넷째, 이 회의, 나아가 대부분의 핵관련 국제회의는 기존 핵보유국 혹은 핵발전 선진국들이 핵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황당한 전제하에 출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 나라에게 특권과 예외를 허용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핵무기를 실전에 사용했던 유일한 국가는 미국이며, 체르노빌 사건이나 스라마일 원전 사건 모두 핵개발 선진국인 소련과 미국에서 일어났다.

핵피폭국가로서 방사능에 대한 국민들의 감수성이 가장 큰 나라인 기술강국 일본에서 후쿠시마 사태가 터졌다. 핵무기와 핵물질이 폐기되지 않는 한 누구도 안전하게 관리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 교훈인데, 핵안보정상회의는 '테러리스트'만 걱정하고 있다.

요컨대 핵안보정상회의는 핵안보 문제가 마치 독자적인 지위를 가진 의제인 것처럼 꾸밈으로써, 1) 핵군축 즉 핵무기 폐기의 문제, 2) 핵 비확산 체제의 불공정성 문제, 그리고 3) 평화적 핵이용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핵발전의 위험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회피하는 구실로 악용될 수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핵안보정상회의는 그래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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