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를 112에 신고할래요"

술만 취하면 돌변하는 이 사람, 특효약은 없을까요?

등록 2012.04.12 20:20수정 2012.04.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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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112에 신고하겠다며 전화를 빌려달라는 아이


"아, 아저씨. 전화 좀 빌려 주세요."
"전화? 그래. 그런데 어디에 하려고?"

비교적 손님이 한산한 오후시간, TV를 통해 방송되는 19대 총선 투표율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이웃에 사는 A군(초등학교 5학년)이 급하게 달려 들어와 다짜고짜 전화를 쓰겠다고 한다. 말투가 평소와 달라 물었더니 112에 신고를 하겠다고 했다.

"112라니, 무슨 일이냐?"
"아빠가 술에 취해 막 욕을 해요. 무서워서 경찰 아저씨 부르려고요."

아이 손을 잡았다. 덜덜 떨고 있는 것이 몸으로 느껴져 온다. 금세라도 쏟아질듯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다. 아이가 잡고 있던 수화기를 살며시 잡아 내려놓았다. 술에 취해 욕설을 하는 아이아빠도 그렇지만, 그런 아빠를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아이의 행동을 그냥 두고 볼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빠가 때렸니?"
"아니요, 막 욕을 해요."
"그럼, 이렇게 하자. 아빠가 아마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술김에 그러신 것 같은데, 그래도 경찰 아저씨를 부르는 것 보다는 잠깐 피해 있다가 나중에 집에 가면 어떨까?"
"…, 그럼 엄마한테라도 전화 좀 할게요."


A군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를 않는다. 아이엄마는 얼마 전부터 근처 제조업체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근무시간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는 모양이다.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를 달랬다.

"우선 이곳 가게에서 TV를 보고 있던지, 아니면 할머니 집에 가 있으면 어떨까?"


술취한 아빠의 욕설, 두려움에 떠는 아이를 달래고

아이 외할머니는 약 1km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데, 가끔 아이 엄마아빠가 심하게 다투는 날이면 외할머니 집으로 '피신'하곤 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키지는 않는 모양이다. 외할머니도 농사 품팔이에 가셔서 집이 비었을 터이다.

아이가 휴게소 마당가를 맴돈다. 가끔 자전거를 타며 또래와 놀고 있는 여동생(초등학교 3학년)을 통해 아빠가 있는 집을 살피기도 한다. 집안에 있다가 다급하게 뛰어나온 탓에 밖에 계속 머무르기에는 바람이 쌀쌀하다. 가게 안으로 불러들일 요량으로 밖으로 나가 말을 건넸다.

"춥지 않니? 왜 할머니 집에 안 가고."
"가고 싶지 않아요."

아이가 들릴 듯 말 듯 말끝을 흐린다.

"A야, 아빠를 너무 미워하지 마. 아빠는 아주 좋은 분이란다. 아마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것 같은데, 한 숨 자고 나면 괜찮을 거야."
"아니요, 아빠 안 좋아요!"

아이 목소리가 커졌다. 단호하다. 더 이상 아빠를 두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태세다. 하긴 아이의 이런 태도에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휴게소를 시작한 후 1년간 꽤나 여러 번 아이의 집에서 시끄러운 일이 벌어졌던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한 것도 두세 번쯤은 되는 듯싶다. 그래서인지 아이아빠는 유난히 A군을 미워하는 것으로 보였고, 술기운에 아이에게 욕설을 한 모양이다.

평소에는 모범가장, 술만 들어가면 주정뱅이로 돌변하는 아이아빠

A군 아빠는 30대 후반으로 평소 매우 겸손하고 예의바르며 부지런한 젊은이로 인정받고 있다. 자신의 농지는 거의 없지만 남의 땅을 빌려 주변에서는 꽤나 큰 농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틈틈이 트랙터로 남의 일을 하고 세를 받는데 그 소득도 제법 많다. 농한기에도 영업용 화물트럭 운전을 해 농외소득을 올린다. 빈둥거리거나 취미활동에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다.

이런 것으로 보아서는 1등 남편이자 아빠임이 틀림없다. 단한가지 술버릇이 문제다. 어떤 계기로든 술자리가 시작되면 남들보다 더 자주 술잔을 비우고 취기가 오르면 아예 들이 붓듯 폭음을 한다. 그런 다음 시작되는 주사가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모든 주변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말투와 행동, 심지어는 느닷없이 폭언과 폭력을 휘둘러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 횟수가 잦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러다보니 일단 술자리만 시작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피해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나중에 남게 되는 사람이 그의 주사를 받아야 하는 탓에 앞 다퉈 피하기 급급해하는 모습도 목격한다. 결국 혼자 남게 된 후 자신만 따돌림을 당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자신의 가족을, 친인척을, 마을 사람들 모두를 향해 증오를 표출한다.

알아듣지도 못할 두서없는 말들을 내뱉으며 과격한 몸짓을 하고, 때로는 웃다가 울기도 하는 등 이성을 잃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아빠를 보며 아이들이 공포와 두려움을 가질 것임은 당연할 것이다. 이를 말리는 아이엄마와 싸움이 시작되면 예외 없이 폭력이 가해지니 아이들 입장에서 결국 '112'에 호소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의존하게 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A군 가족 행복 되찾기 특효약은?

두세 차례 동생을 불러 아빠의 동태를 살피도록 한 A군이 집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딱히 아이들을 도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마음이 답답하다. 아이엄마가 퇴근길에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들렀다. 아무 일도 없는 듯 돌려보냈으나 마음이 개운치 않다. 그 사이 아이아빠의 취기가 가셨든지, 아니면 골아 떨어져 가족들이 편안한 밤을 지낼 수 있길 우선은 바랄 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독자들에게도 묻는다. A군 가족이 평화롭게 사는 길, 두려움과 공포에 아빠를 '112'에 신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특효의 처방은 무엇일까? 나의 해답은 '무조건 금주(禁酒)', 그 이상 이하도 없을 듯싶은데….
#술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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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며 각종 단체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는 지역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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