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치 않았던 총선, '닻내림 효과'에 당했다

[리뷰] 노벨경제학상 수상한 심리학자, 그의 <생각에 관한 생각>

등록 2012.04.13 16:21수정 2012.04.1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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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지지 않으리라 '직관'했다. 아무리 '자뻑'을 하고 그랬어도, 이를 이명박 정부 4년에 비할소냐. 게다가 총선 직전 '민간인 불법 사찰'이란 메가톤 이슈까지 터져 나오지 않았던가. 야권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 아래 그림은 전혀 머릿속에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은 이러하다. 이것도 일종의 '닻내림 효과'였던 것일까. 최근 김영사가 펴낸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으면서 든 '생각에 관한 생각'이다.


11일 밤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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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영사가 발간한 <생각에 관한 생각> 표지 ⓒ 김영사

책상 위에서 잠자고 있던 이 책의 제목이 새삼스럽게 눈길을 끌었다. 저자는 대니얼 카너먼, 역자는 이지원. 평소 '외국식 번역'에 대한 선입관 탓에 애써 외면하려 했던 책이었다. 그런데 그 부제가 '강력한' 시의성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11일 밤이었다.

겉장을 넘기자 흥미가 발동했다. "사상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천재 심리학자"란다. 아니,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심리학자, 이게 그 의미가 더 명확하겠다. 2002년에 그랬다고 한다. 이스라엘 출신,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이자 대부란 설명도 뒤따랐다.

행동경제학, '있어 보이는' 그 표현으로 또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외면할까. 어쨌든 "개인으로서의 인간, 그 인간의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을 조종하고 이끄는 생각"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학이다. 이를 창시한 대니얼 카너먼의 첫 대중교양서라고 했다.

딱딱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각설'하자. 다음 사진의 어떤 여자처럼, 나도 지금 매우 화가 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사진이다. 자동 모드로 당신의 생각을 관찰하려면 아래 사진을 흘긋 바라보시라.


닻내림 효과, 그 치명적인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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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닻내림 효과'의 한 예로 제시된 '문제' ⓒ 김영사


"당신은 여성의 머리색이 검다는 걸 알아차린 만큼이나 명확하고 빠르게, 그녀가 화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아울러 당신이 본 것은 미래의 예상으로 이어진다. 이 여성이 크고 거친 목소리로 매우 불친절한 말을 하려 한다는 것을 감지했다. 힘들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그녀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당신 머릿속에 들어왔다... 중략... 이것이 '빠르게 생각하기'의 사례이다."

달리 표현하면 '닻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다. "닻을 내린 곳에 배가 머물 듯, 처음 입력된 정보가 정신적인 닻으로 작용해 이후 판단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이와 같은 '닻내림 효과'에 따른 빠르게 생각하기의 예는 물론 위 사진뿐만이 아니다.

저자의 글처럼 "우리 대부분은 수화기 너머 상대가 내뱉는 첫 단어에서부터 분노를 감지할 수 있는 '절대음감'을 갖고 있다", 또한 "옆 차선에 서 있던 자동차 운전자가 위험하다는 걸 보여주는 미묘한 신호에 재빨리 반응하는" '반사신경'도 갖추고 있다.

사실, 이처럼, 그 작동원리를 생각해 보면 '직관'은 놀라운 것이다. 찰나에 이뤄지는 그 판단은 놀랍도록 '정확하다'. 물론 여기에 치명적인 '함정'도 있지만 말이다. 그 약점의 예, 히틀러는 몇 년에 태어났는가.

빠르게 생각하기와 느리게 생각하기, 그 '편애'의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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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이성의 차이를 나타내는 문제 ⓒ 김영사


두 문장 모두 틀렸다. 히틀러는 1889년생이다. 그럼에도 "여러 실험 결과를 보면 많은 피실험자들이 첫 번째 문장을 믿었다"고 한다. 단지 글씨가 굵다는 것 그 때문일까. 저자는 "인간의 모든 행동과 생활, 인생의 근원인 생각"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빠르게 생각하기와 이성, 즉 '느리게 생각하기'다.

저자 표현대로 빠르게 생각하기는 "노력과 수고가 거의 혹은 전혀 필요없다", 게으르고 즉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기를 주저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반면 느리게 생각하기는 귀찮으며, 부지런해야 하며,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그 정도의 차이는 각각 다르겠지만.

이 책에는 그 정도의 차이를 점검할 수 있는 문제들이 숱하게 나온다. 곱셈, 도형, 그림, 단어로부터의 연상 그리고 살인사건이나 뺑소니 등 여러 사건에 이르기까지. 책 두께에 비해 잘 넘어가는 이유다. 결코 어렵지 않은 문제들이지만, 이들은 독자가 어떻게 결정하는지, 빠르게 생각하기와 느리게 생각하기 중 어느 쪽을 '편애'하는지 깨닫게 도와준다.

그럼으로써 이 책의 주제는 저자가 직접 머리말을 통해 밝혔듯 "직관의 편향"으로 이어진다. 그 편향을 따지는 이유는 또한 '행복한 판단'을 위해서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이 책 마지막에 '두 자아'를 놔둔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한 몸에 있는 두 자아가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기억자아는 소중히 대하면서 정작 경험 자아에는 무관심하다. 즐거운 경험을 위해 여행을 떠났는데, 정작 사진만 잔뜩 찍고 돌아온 경험은 없는가? 인간은 기억자아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항이 있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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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저녁 6시까지 머릿속에 전혀 없었던 그림 ⓒ 오마이뉴스


따라서 이 책은 개인의 행복만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 아니다. 개인의 행복은 결코 사회적인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느리게 생각하기'가 더 필요한 문제다.

그럼에도 사회적 문제에 대한 '느리게 생각하기'를 이른바 전문가에게만 '일임'하고 있지 않은지, 이 책은 스스로 되묻게끔 한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책 지식'을 자신의 생각으로 '치환'하다 창피 당하는 명문대 대학생처럼 말이다.

"중대한 결정일수록 알고리즘을 반대하는 편견은 더욱 강해지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것이 일상생활에 끼치는 역할이 계속 확대되면 알고리즘에 대한 적대감은 더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선거가 떠올랐다. 문제 해결을 위한 명백한 규칙이나 단계적 방법을 뜻하는 알고리즘이란 이 단어를 '보수'로 바꿔놔도 '통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세상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를 과대평가하는 반면, 사건들에서 발생하는 우연과 운의 역할은 과소평가하는 우리"에서 벗어날 때가 아닐까. 위 그림부터 '느리게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8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행동경제학 #노벨경제학상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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