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고장으로 가다(1)

경북도립청도공공도서관 주최 봄길 따라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등록 2012.05.01 10:43수정 2012.05.0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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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문학관 뒷편 전경 이병주 문학관 뒤편의 전경이 평온하다. 먼 산 봉우리가 둥글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편안함을 안겨주는 것 같다. 봄볕을 감지한 초목들이 움을 티워 연초록 세상으로 물들이고 있고, 꽃은 피토하듯 붉음을 토해 내고 있다. ⓒ 최종술


봄의 녹음에 마음까지 녹아드니

그동안 관심조차 둘 수 없었던 풍광들이 창을 넘어 나의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들도 지나고 도심도 지나고, 산도 지나고 공장도 지나갔습니다. 밭도 지나고 작은 마을도 지나갔습니다. 뙤약볕에 차잎을 따는 인부들도 지나고 과수원도 지나갔습니다. 같은 도로로 달리는 차들도 지나갔습니다. 


자가용 운전을 하다보면 앞의 교통상황에만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잖아요. 대형버스에 몸을 실으니 이렇게 세상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여행이 가져다주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 속의 삶의 질곡들이야 알 수 없지만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그들(자연과 사람)의 삶을 조금이라도 읽고 싶었습니다. 자연 광경을 보노라면 늘 느끼는 일이지만 참으로 조화롭다는 느낌입니다. 인위적인 작위(作爲)로 꾸미려들면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얼마나 많은 고민이 필요할까 생각하면 생각의 끝을 가늠할 수가 없지요.

느닷없이 어두컴컴한 터널 속으로 버스가 빨려 들어가는 시간에는 이 모든 풍광들의 찬란한 빛이 일시적으로 차단됩니다. 나와 공간 그리고 터널에 설치되어있는 희미한 조명만이 있는 것이죠. 화려함과 단조로움의 대비라고 해야 할까요?

긴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어김없이 햇살처럼 아름다운 녹색 빛들이 나의 시야로 쏟아져 들어 옵니다. 봄! 그 찬란한 빛이 말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새순이 돋은 가지에서 뿜는 녹색 빛은 나의 마음까지도 녹색으로 스미어 듭니다.

봄길 따라 문학기행


지난 4월 28일, 경북청도도서관에서 주최한 이용자들의 문학기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여행에 "봄길 따라  문학기행"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하동지역이었는데요. 먼저 <지리산>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병주 문학관을 먼저 찾았고요. 다음은 박경리의 <토지>의 배경으로 나오는 평사리문학관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쌍계사를 다녀왔죠.

날은 참 좋았습니다. 화창한 봄날이었죠. 아니 거의 초여름 날씨만큼 더웠다고하는 표현이 딱 맞겠네요. 단체여행이라 45인승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미취학 아이부터 시작해서 일흔이 넘은 어른까지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습니다. 희한하죠? 이렇게 다양한 계층에 공통분모가 있다는 거지요. 문학이라는 공통점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실은 버스는 신나게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버스 안에는 청도도서관의 독서동아리인 도향독서회와 연어이야기 회원들과 가족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의 장난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군요.

아이들도 어디로 떠난다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해도 먹고 살기가 쉽지 않은 시골생활이라 여행을 고작 외갓댁에 어머니 손잡고 가는 일이 전부였는데, 그 것도 버스를 타고 가는 호사는 아예 생각도 못했죠. 산길을 돌아 자갈이 가득한 마른강을 건너, 햇살이 많은 날이면 쏟아지는 햇볕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으며 가곤했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고개를 외면해 버릴 겁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보다 더 이상한 이야기로 생각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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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문학관 안내석 이병주문학관 입구에 세워진 안내석 ⓒ 최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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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문학관 전경 청동지붕으로 된 경사 큰 지붕으로, 이병주 문학관 정면 모습이 이채롭다. ⓒ 최종술


첫 번째 목적지 이병주 문학관

청도에서 출발해서 2시간 30분 동안 열심히 달려 첫 번째 목적지 이병주 문학관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코끝으로 봄 내음이 한꺼번에 밀려 왔습니다. 한적하고 깨끗하게 정돈 된 마을 한쪽에 자리 잡은 문학관은 자태도 눈길을 끌도록 지어졌습니다. 청동스레트로 지붕을 만들고 원목을 사용하여 벽을 지탱하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일주문처럼 우뚝 솟은 펜대가 특이하였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사용하던 펜과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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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지붕 문학관 지붕이 자연 풍경과 조화롭다 ⓒ 최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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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지붕끝에 매달린 풍경 문학관 지붕끝에 매달린 풍경이 친근하다. ⓒ 최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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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문학관 앞에 세워진 펜 이병주문학관 앞에 세워진 펜모양 기둥 ⓒ 최종술


이병주(李炳注1921~1992), 그의 호는 '나림(那林)'이고 별명은 '한국의 발자크' 랍니다. 같이 간분 중에 어떤 분이 나림(那林)은 이병주가 나고 자란 경남 하동군 북천면에 있는 옛지명이라고 하네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없다고도 합니다. 지명을 호로 삼았다는 것은 그만큼 고향을 사랑한다는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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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문학관의 천정 모습 자연 차광이되도록 설계한 천정의 모습 ⓒ 최종술


이병주문학관에서 우리를 맞은 분은 최증수 관장님이셨습니다. 우리를 강당으로 안내하신 관장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병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삼각형으로 높이 솟은 천정 끝에서 봄볕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선생님은 1921년 하동 북천면 남포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초등학교시절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알퐁스 도데의 단편집인 <월요이야기>에 수록된 단편입니다. 이야기의 주제는 애국심이었는데요. 마지막에는 "프랑스 만세"라는 문장까지 나옵니다. 여기 어린 친구들도 있는데요. 책을 읽으면 책속의 중요한 문장은 꼭 외우십시오. 이병주 작가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소설은 새로운 지식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무엇이 있구나. 나도 이다음에 이런 글을 써봐야지'하는 꿈을 가졌다고 합니다."

관장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아이들도 숨죽여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큰 문학관을 가진 작가가 부러워서 일까요, 아니면 작가는 어렸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서 일까요. 엄마 손에 이끌려 이렇게 훌륭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아이들이 행복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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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문학관 관장님 이병주의 생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 최종술


"중학교 다닐 때 펄벅의 'The mother'를 원서로 만나게 됩니다. 영어도 잘 모르고 한데 이걸 어떻게 읽을까 고민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하루 저녁에 그 책을 모두 읽게 됩니다. 이를 통해 영어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관장님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펄벅의 The Mother라는 책이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그 책을 어떻게 구입할 수 있었고 원서를 하루저녁에 다 읽었다니 이병주 작가는 천재였나 봅니다.

"나중에 일본의 메이지대 문예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때 일화가 있습니다. 입학시험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한 심사위원이 최근에 읽은 책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이병주 선생은 '독일의 짜루투르의 니체를 읽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짜루투르는 이 책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책 말미에 '만인을 위한 한권의 책'이라고 썼을 정도였지요. 1872년 1부를 완성하고 1874년에 4부를 완성하였습니다. 심사위원이 책에서 기억나는 대목이 있는가하고 물었더니 '인간은 탁한 장물이다.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고 받아드릴려면 바다가 되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심사위원이 이 책에서 '초인'이 나오는데 그 초인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보톤 초인이라 함은 괴력이나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하지만 니체에서는 초인은 바다를 닮은 사람을 이야기 합니다. 심사위원이 그 자리에서 이야기했답니다. '자네는 합격이야. 그래야 자네와 니체를 토론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입니다."

당시 일본은 요즘 우리나라에 유행하는 입학사정관제처럼 그랬나 봅니다. 인재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눈이 있던 분이기도 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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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병주 작가이병주의 사진 ⓒ 최종술


"이병주는 프랑스의 작가 발쟈크를 롤모델로 삼았습니다. 발자크는 프랑스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작가로 알려져있습니다. 발쟈크는 나폴레옹 숭배자 이기도 하지요. 발자크는 두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문학분야에서 나폴레옹이 되겠다는 것이고, 하나는 이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글로 써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발쟈크는 매우 가난했습니다. 원고료 수입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1841년 <인간희극>라는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 책은 2000여가지 이상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방대한 작품입니다. 발쟈크는 버릇이 퇴고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작품을 출판하고 그 책을 다시 수정하여 2판을 출판하고 다시 또 수정해서 3판을 출판하는 식이지요. 그래서 최고의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병주는 대학시절 책상 앞에 '나폴레옹 앞에는 알프스가 있고 내 앞에는 발자크가 있다.'라는 문구를 써놓았다고 합니다."

롤모델이 발쟈크여서인지 이병주 작가도 1992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7년 동안 월평균 1만여 매를 쓰셨다고 합니다. 엄청난 작업량이지요. 그만큼 사명감도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은 1943년 학병제도를 만들어서 남태평양 전쟁 에 7,000여명의 학병을 보냅니다. 이 때 학병으로 참전한 사람 대부분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병주는 중국 전쟁에 투입되었지만 살아서 돌아옵니다. 이후 진주농대에서 프랑스어, 철학을 강의하였습니다. 33세에 소설 '내일 없는 그 날'을 부산일보에 연재하였습니다. 1955년 <국제신보>에 입사, 편집국장 및 주필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두 편의 글로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10년간 투옥됩니다. 이때 사마천의 사기를 공부합니다. 감옥이 별거냐 공부나 하자 하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사마천은 B.C 145-B.C86 중국인으로 아버지 태사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태사공은 역사를 관장하는 벼슬을 했습니다. 태사공은 사마천에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만큼 중국 역사를 아는 사람도 없으니 같이 중국역사를 쓰자고 합니다. 이후 친구인 이릉이 전쟁에 지자 탄핵하려 했고 이를 변호하려든 사마천은 궁형에 처해져서 옥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자로써 선비로써 치욕스러운 일을 당한 것입니다. 죽으려는 생각도 많았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사기>를 완성합니다. 이병주와 처지가 비슷하지 않습니까? 옥중에서 소설을 구상했다가 출감하자말자 바로 소설을 써내려 갑니다. 그리고 <소설․알렉산드리아>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70여편의 작품과 역사소설 <지리산>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신 것입니다. 이후 외국어대학, 이화여자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이병주의 작품 특징은 재미있다는 것과 체험을 바탕으로 역사를 복원한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는 이쯤하고 전시실로 가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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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내부 전시실 존을 크게 4구역으로 나누어 연대기 순서에 따라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 최종술


이병주 작가의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 가슴 울리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산맥처럼 줄기를 기록하기 마련입니다. 그 역사의 뒤안길엔 기록되지 않은 민초들의 역사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병주 작가는 삼국사기 보다는 삼국유사를 쓰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역사를 뒷받침하고 있는 실제적인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기록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어쩌면 소설 '지리산'을 통해 금기시 되었던 빨치산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 놓음으로써 우리 민족의 질곡을 사실그대로 남기고자 했을 것입니다. 이병주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어떤 주의를 가지는 것도 좋고, 어떤 사상을 가지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의 주의, 그 사상이 남을 강요하고 남의 행복을 짓밟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기 자신을 보다 인간답게 하는 힘으로 되는 것이라야 한다. - 이병주의「삐에로와 국화」중에서

필화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 느낀 삶의 통찰이라고 하겠지요. 권력 속에 있으면 그 권력의 부패 속성을 모르고 온갖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이데올로기에 따져 있다보면 편협된 줄도 모르고 한방향으로만 치닿게 되는 사람의 속성을 꾸짖는 것 같습니다. 이데올로기도, 권력도 인간이 있고난 다음에 문제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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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내부를 관람하는 관람객 문학관 내부를 관람객들이 관람하는 모습 ⓒ 최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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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디오라마 지리산의 한 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했다. ⓒ 최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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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병주 디오라마 작가 이병주 디오라마 ⓒ 최종술


#문학기행 #청도도서관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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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을 사랑합니다. 그 영롱함을 사랑합니다. 잡초 위에 맺힌 작은 물방울이 아침이면 얼마나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벌이는 지 아십니까? 이 잡초는 하루 종일 고단함을 까만 맘에 뉘여 버리고 찬연히 빛나는 나만의 영광인 작은 물방울의 빛의 향연의축복을 받고 다시 귀한 하루에 감사하며, 눈을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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