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고봉 츄크슈피체를 오르다

[홀로 떠나는 10일, 독일 뮌헨 2] 친절한 쉘 아저씨

등록 2012.05.09 20:35수정 2012.05.0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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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방에서 바라본 설산 4월 20일 아침 호첼 방에서 바라본 설산과 맑은 하늘 ⓒ 허관


4월 20일 금요일, 독일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호텔 창문을 열자 하얀 눈에 덮인 산봉우리가 시야를 가렸다. 날씨가 너무나 친절하게 화창하다. 우리나라의 가을날보다 더 청명했다. 참새 한 마리가 베란다에 앉아 나를 골똘히 쳐다봤다. 독일 참새나 우리나라 참새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깝게 보이는 설산, 거리엔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 보기 드문 풍경이다.

독일은 유럽 중간에 위치하여, 서유럽의 해양성 기후와 동유럽의 대륙성 기후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뮌헨을 중심으로 한 독일남부는 알프스 산맥으로 인해 날씨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덕이 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제 뮌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그리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화창한 날씨로 나를 맞이하다니. 장기간 비행과 시차 때문에 피곤할 만도 한데, 맑은 하늘을 보자 모든 피곤함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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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독일 정통 아침식사,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던 음식. 신선하고 고소했다. 먹는 즐거움을 만끽했던 식사 ⓒ 허관


베이컨과 햄, 빵으로 아침을 배불리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자. 정확히 9시에 셀 아저씨가 호텔 로비에 나타났다. 얼굴에 비해 유난히 큰 뭉툭한 매부리코, 날카로운 파란 눈동자, 꾸부정한 어께. 첫 인상은 차가웠다. 그리고 첫 마디도 차가웠다.

"왜 어제 연락 안 했어?"

셀 아저씨의 첫마디였다. 호텔에 도착하면 연락하기로 메일을 주고받았는데, 어제 너무 늦게 호텔에 도착하여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대한민국에서 자기를 만나러 여기까지 날아왔는데, 문책성 첫 마디라니 서운했다. 하지만 셀 아저씨에게 느낀 서운함은 거기까지였다.

우리는 셀 아저씨의 차를 타고, 그의 연구실로 갔다. 차 안에서 셀 아저씨는 끝없이 말을 했다. 지금 지나고 있는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 마을에 대해서. 이 조그마한 도시에 지역감정이 있다는 것을 재미있게 이야기했다('가르미쉬파르텐기르헨'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소개).

조그마한 도시에 비해 셀 아저씨가 일하는 연구소의 규모는 컸다. 셀 아저씨의 사무실에 둘러앉아 본격적인 업무 이야기를 했다. 셀 아저씨는 대화 내내 조근 조근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혹시나 이 동양의 이방인이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고 있지는 않는지, 중간 중간 상대의 표정을 살피며, 사전에 주고받은 질문 내용에 대해 하루 종일 이야기를 했다. 일방적으로 묻고, 대답을 듣는 형태였지만, 질문에 귀찮은 기색 없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답변을 주었다. 혹시나, 이 먼 곳까지 왔는데 더 줄 정보가 없는지 하는 자세였다. 오히려 질문하는 우리 쪽에서 지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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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아저씨와 점심 오른쪽이 쉘 아저씨 ⓒ 허관


사람 사는 모습은 여기나 대한민국이나 별반 차이는 없었다. 독일은 금요일 오후부터 업무가 종료되고, 주말이 시작된다. 모두 즐거운 주말을 맞이하는 들뜬 얼굴을 하고 오후가 되자 퇴근했다. 하지만 셀 아저씨는 우리 일행 때문에 퇴근은 물론, 내일 토요일까지 꼼짝 못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귀찮은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내일은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오를 계획이다. 옷 따뜻하게 입고, 호텔 앞에서 아침 9시에 만나자."

4월 21일 토요일, 드디어 독일 최고봉에 오르는 날이다. 오늘도 날이 좋다. 아침을 일찍 먹고 호텔 로비에서 앉아 쉘 아저씨를 기다렸다. 어김없이 9시에 쉘 아저씨가 호텔에 도착했다. 쉘 아저씨는 우리를 보자마자 복장 검색을 했다. 우리 일행 중 한 명의 옷이 부실했는지 자신의 차에서 두툼한 조끼를 꺼내어 그에게 주었다. 어제 분명히 말했는데,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의 불만을 표시하는 얼굴로. 한국에서 올 때부터 옷을 가지고 오지 않았고 옷 빌려줘서 고맙다고 하자 그때서야 쉘 아저씨의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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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과 산 차안에서 찍은 독일을 들과 산 ⓒ 허관


우리나라의 산야는 일반적으로 둥글둥글한 봉우리들이 낮아지다가 어느 순간에 밭이 되고, 그 아래로 천수답이 그리고 들과 이어진다. 밭과 들의 경계가 모호하고 밭과 산의 경계 또한 모호한 게 우리나라의 산천이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산은 만만하다. 산 속에 있으면 어느 것이 주봉인지 모르게 드넓게 둥근 봉우리들이 펼쳐져 있다.

반면, 독일은 산과 들의 경계가 명확했다.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듯이 산의 봉우리들은 날카롭게 하늘을 찔렀다. 고개를 들면 바로 눈앞에 거대한 바위 설산이 괴물처럼 서 있다. 들은 높고 낮음이 없이 평평하게 드넓었고, 초록이 가득했다. 초록들의 끝엔 가파르게 솟아오르는 봉우리가 시작되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이야 인류문명의 발전으로 어느 정도 자연의 지배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인간도 자연의 지배 속에서 살아왔다. 나는 문득 생각해 봤다. 한없이 친절한 셀 아저씨도, 약속을 어기거나 또는 잘못을 하면 가차 없이 그 자리에서 문책을 주곤 하는 것이 자연을 닮아서 그런 건 아닌지. 우리나라 사람처럼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여기며 문제의 본질을 보지 않고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가진 것이 자연을 닮아서 그런 건 아닌지.

"독일 남자에게 부채 선물은 하지 않는 것이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모든 나라의 남자에게 부채 선물을 하면 실레다. 당신이 어제 나에게 준 이 부채는 내가 잘 알고 있는 여자에게 주겠다. 그래도 괜찮겠지?"

서울에서 빈손으로 가기도 그렇고 해서. 우리나라의 전통 문양이 새겨진 부채를 샀다. 그리고 포장된 부채를 어제 그에게 주었다. 아주 고맙게 받았다. 그런데 집에서 포장을 뜯어보니 부채인 것을 확인하고, 차 안에서 우리에게 말했던 것이다.

나는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1만 원 짜리 부채인데, 선물로 받았으면 다른 사람 주든지 하면 되지 굳이 서로 무안하게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셀 아저씨의 행동이 옳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묻어두었으면 또 그런 실수를 했을 것이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상대의 직위가 높고 낮음을 또는 귀인이든 천인이든 가리지 않고 말하는 것이 그들의 국민성인 듯했다. 독일의 들과 산처럼 분명한 가치관이었다.

드디어 독일 최고봉 츄크슈피체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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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크슈피체 케이블카에 오르는 주차장 츄크슈피체 케이블카에 오르는 주차장 ⓒ 허관


알프스 산맥에 속한 추크슈피체산은 해발고도가 2963m이다. 알프스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몽블랑(4807m)에 비하면 턱없이 낮지만, 우리나라 백두산보다 높았고 4월 하순임에도 하얀 눈으로 덮혀 있었다. 독일의 최고봉이지만 10분 만에 오를 수 있다. 산 아래 아이프제 마을 주차장에 차를 놓고 케이블카를 타면 10분 만에 정상에 오른다. 산의 경사가 가팔랐기 때문에 가능한 케이블카 등정이다. 케이블카 요금이 40유로(약 6만 원)였다. 물론, 요금은 친절한 쉘 아저씨가 지불했다. 그리고 기르미슈파르텐키흐헨에서 톱니바퀴식 등산철도를 타고 정상에 오르는 방법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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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크슈피체 등정 안내 직선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와 곡선으로 터널로 올라가는 기차 ⓒ 허관



케이블카가 어느 정도 오르자 귀가 먹먹해지면서, 발 아래로 설산의 봉우리들이 하나둘씩 스쳐지나갔고, 정상 부근에 오르자. 창밖으로 하얀 봉우리들이 물보라 치듯이 끝없이 펼쳐졌다. 알프스 산맥이다. 하늘엔 티끌 하나 없이 맑은 군청색인데도, 물결처럼 일렁이는 하얀 봉우리들의 끝은 보이지 않고, 아련하게 사라졌다. 웅장한 알프스 산맥이 발 아래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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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알프스 산맥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알프스 산맥 ⓒ 허관


정상 반대편 능선에는 뾰족한 산세에 어울리지 않게 평평한 자연 스키장이 있었고, 주말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스키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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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크슈피체 스키장 스키장 슬로프, 자연설이며 5월까지 운영함 ⓒ 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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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를 즐기다가 잠시 점심을 스키를 즐기다가 잠시 점심을 ⓒ 허관


정상에는 3개의 큰 건물이 있었다. 하나는 독일에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접안하는 곳이고, 다른 하나의 건물은 오스트리아에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접안하는 건물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1897년도에 지어진 기상관측소였다. 110여 년 전에 나귀에 짐을 실고 올라와 기상관측소를 지었다고 했다. 왜 독일이 과학의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나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였다. 관련자로서 그 건물이 부러웠다. 과학의 강대국다운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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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크슈피체 정상의 기상관측소 멀리 보이는 건물이 1897년에 지어진 기상관측소 ⓒ 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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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크슈피체 정상 정상의 상징물 ⓒ 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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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국관리소 정상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올라오는 케이블카와 독일에서 올라오는 케이블카가 있다. 이 출입국관리소는 오스트리아에서 올라오는 케이블카 근처에 있다. 지금은 자유롭게 왕래하여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 허관




"기후변화의 과학정보를 만들어내는 전 세계의 메카"


독일에서 올라가는 케이블카 접안 건물 한 귀퉁이에 쉘 아저씨가 관리하는 기후변화 원인물질 감시소가 있다. 쉘 아저씨가 우리 일행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 것은 추크슈피체 관광이 아니었다. 어제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이론적인 것과 분석 자료를 보았고, 오늘은 실제로 관측하는 장비를 보여주고자 이곳까지 우리를 데리고 온 것이다.

기상관측과 기후변화 원인물질 관측은 차이가 있다. 100여 년 전만 해도 기상을 알면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주지하다시피 기후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류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자 기후가 변화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사회 경제 정책들을 변화시켜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미래경제학자들은 심심찮게 예측한다. 기후변화를 읽지 못하는 조직이나 국가는 앞으로 생존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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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아저씨가 운영하는 기후변화감시소 멀리 보이는 건물이 쉘 아저씨가 관리하는 기후변화감시소다. 약 3천미터 정상에서 기후변화 원인물질을 자동으로 감시하고 있다. ⓒ 허관


그렇다면 왜 이 높은 오지에서 기후변화 원인물질을 관측할까. 이에 대한 답은 인위적 오염원이 적은 광범위한 균질대기 속에 포함된 이산화탄소 등 기후변화 원인물질을 관측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면, 공장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했다고 해서, 직접적인 기후변화 즉 온실효과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인위적인 온실가스가 발생하여 광범위한 지역에 균질한 농도가 증가해야만 기후가 변화하기에 이와 같이 인위적 오염원이 없는 오지에서 기후변화 원인물질을 관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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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아저씨 자신의 관리하는 관측소 내부에서 장비를 설명하고 있다 ⓒ 허관


우리나라도 충남 태안 안면도와 제주 한경면 고산에서 관측하고 있으며, 그리고 내년부터는 울릉도 독도에서 기후변화 원인물질을 관측한다. 기후변화원인물질을 감시하는 관측소는 UN 산하 세계기상기구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전 세계 약 400여 곳이 있다.

특히, 추크슈피체의 관측소는 전 세계 균질 대기 속의 기후변화 원인물질의 농도를 관측할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최적의 관측소다. 이렇다보니, 이곳에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후변화원인물질 관측기술을 전수하는 교육센터가 있다. 그 하나의 파트를 친절한 쉘 아저씨가 담당하고 있다. 독일의 밝은 미래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곳이다. 괜히 세계를 이끄는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님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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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감시 교육센터 전 세계 유일의 기후변화감시 교육센터. 해마다 2회에 걸쳐 전세계 관련 담당자를 초정하여 교육함 ⓒ 허관


오후 늦게 서야 정상에서 내려왔다. 호텔로 오는 차 안에서 쉘 아저씨는 또 이야기를 했다. 30년 가까이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하여. 올해 9월이면 퇴임하여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자랑스럽다든가 또는 지겹다든가 따위의 감정을 배제한 채, 담담하게 있었던 이야기 만 했다.

"내일은 뭐 할 거냐?"
"피곤해서 쉬겠다. 시간 되면 시가지 구경도 하고?"
"시가지 구경하려면 내가 안내해주겠다."
"괜찮다."
"그러면 자동차 전시행사 중이니 시간 되면 가봐라. 좋다."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쉘 아저씨의 친절을 의심했었다. 모든 판단은 자신이 간직한 지식의 범위 안에서 판단한다. 나는 나의 지식으로 쉘 아저씨의 친절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쉘 아저씨의 푸른 눈동자를 보고 그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악수를 하면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얼굴이, 눈 덮인 하얀 알프스 산맥과 푸른 하늘 속으로 그의 반백 머리카락과 푸른 눈이 녹아드는 듯했기 때문이다.
#츄크슈피체 #기후변화감시 #독일 #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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