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세력 필살기 '동성애' 카드, 오바마 왜 꺼냈나

재선 위한 꼼수? ...미국 대중의 변화 반영된 결과

등록 2012.05.12 18:55수정 2012.05.1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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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한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자료사진). ⓒ 연합뉴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동성 결혼 지지선언을 하자, 돌연 동성애가 정국의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이 선언으로 오바마는 동성 결혼을 지지한 최초의 현직 대통령이 됐다. 미국 사회에서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뜨거운 감자인 동성애란 화두가 다시 미국 사회를 장식하고 있다. 오바마의 발언으로 정치권에서는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도박', '역풍의 위험을 무릅쓴 소신 발언' 등의 해석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의 선언이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정치공학적 분석이 등장하는 건 당연하다. 그간 오바마의 국정운영에 실망해 등 돌렸던 진보적 지지층의 눈길을 다시 잡아챌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2008년 대선 때 오바마 진영을 달궜던 "변화와 희망"의 열망을 재현하기 위한 오바마의 정치적 승부수라는 해석이다. 경제 문제로 궁지에 몰린 오바마가 동성애라는 뜨거운 이슈로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오바마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란 관측도 무성하다. 오바마가 동성 결혼 지지 선언하기 불과 한 시간 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대규모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이달에 헌법 개정을 거쳐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연합"이라고 명명했다.

동성 커플을 전면 부정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 보수 복음주의권의 대부격인 빌리 그래함 목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수 기독교인들의 결집도 점쳐지고 있다. 오바마의 이번 선언이 비교적 보수적인 노스캐롤라이나를 비롯,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 등에서 '반오바마 정서'를 피어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의 발언이 미국 정치권에서 아주 이례적인 것도 아니다. 미국 네오콘의 핵심 인물이자, 강경 보수의 상징인 체니 전 부통령은 이미 2004년 대선 유세 과정에서 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개하며, "아내와 나는 동성애자 딸을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동성애 이슈에 친숙하다. 사람은 그들이 원하는 식으로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물론 체니 전 부통령은 당시 발언으로 지지 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했다.

정작 주목하는 점은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 결혼 발언의 파격성이나 정치적 여파가 아니다. 그 말을 오바마, 즉 민주당이 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동성애는 공화당의 전유물이었다. 이는 보수 기독교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공화당은 '낙태'와 '동성애'라는 말에 조건반사적으로 발끈하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덕을 선거철마다 적절히 이용했다. 레이건 대통령 때부터 조지 부시에 이르기까지, 공화당은 상대적으로 투표 참여율이 높고 선거 패턴이 단순한 보수 기독교 유권자들 덕을 톡톡히 봤다. 실제로 공화당은 2004년 대선에서 '도덕적 승리(moral victory)'라는 모토로 보수 기독교인들을 자극하며 민주당 텃밭에서까지 표를 긁어갔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이란 낙태와 동성애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바마 대선 행보에 독?...가능성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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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전문 설문조사 기관인 <퓨포럼>에 따르면 동성 결혼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렌지색 선은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비율, 녹색 선은 찬성하는 비율. ⓒ the Pew Forum


하지만 지난번 대선에서는 더 이상 공화당의 동성애 약발이 먹히질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후원자이자, 진보적 복음주의자로 알려진 짐 월리스 목사(<소저너스> 대표)는 동성애나 낙태 등의 자극적인 이슈로 표를 쓸어가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의 당선이) 최초의 흑인(African American) 대통령이 나왔다는 기념비적인 사건이기도 하지만, 단일한 이슈 몇 가지만으로 대통령을 선택하는 'single issue voting' 시대가 종식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지난 대선을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발표는 동성 결혼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의 변화가 가장 큰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25일 발표된 퓨포럼의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조사 결과, 동성 결혼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 전문 설문조사 기관인 <퓨포럼>(the Pew Forum on Religion & Public Life)에 따르면 동성 결혼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에는 동성 결혼을 반대한다는 의견이 60%로 찬성한다는 의견의 31%를 두 배 가까이 앞섰다. 하지만 2012년에는 동성 결혼에 찬성하는 비율이 47%로 반대한다는 의견을(43%) 앞섰다. 8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최근 미국 보수 복음주의의 상징적인 존재인 빌리 그래함 목사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오바마의 이번 선언이 향후 대선 행보에 독이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지난 대선부터 막강한 네트워크와 미디어를 가진 보수 우파 기독교조차 이런 변화를 거스르기 힘들 만큼 변화의 폭이 빠르고 거세다는 것이 감지됐다.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인 흑인 교회의 분열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미국내 첫번째 흑인 교단인 African Methodist-Episcopal Church의 자말 브라이언트 목사는 "우리 교단은 동성 결혼에 반대하지만 모두의 인권을 중요시한다"고 발언했다. 동성 결혼을 인권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겠다는 것으로, 대부분의 흑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지지할 것이라고 관측한 것이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선언을 반전을 노리는 꼼수로 격하시킬 것도, 위기에도 소신을 밝히는 용기 있는 정치인으로 격상시킬 것도 없다. 오바마의 발언은 그 사회적 변화의 결과물이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발언의 배경인 셈이다. 이런 대중의 변화가 공화당의 전유물이었던 동성애라는 이슈를 민주당 대선 후보가 꺼내들게 만든 것이다. 
#동성애 #오바마 #미국 복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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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갈등전환센터 센터장 (서울시 이웃분쟁조정센터 조정위원, 기상청 갈등관리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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