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 하나 빼고 다 좋습니다

[서평] <새로운 100년>, 지식인의 통일을 민중의 통일로 바꾸려는 책

등록 2012.05.13 21:41수정 2012.05.1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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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100년> 책 표지. 이 책에는 통일 이야기 말고도 법륜 스님의 개인적인 삶과 역사관 등이 담겼다. ⓒ 오마이북


"역사와 민족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1983년 대학 국문과 신입생이었던 오연호는 교정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지리산 근처 시골에서 나무하다 온 촌놈을 웬 역사와 민족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가?' 의문을 품고는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과 그는 소설가의 꿈을 접고 묻혀 있는 사실을 기록하는 사람, 즉 기자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1983년이면 지금부터 30년, 즉 한 세대 전의 시간이다. 무심한 세월이 흘러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 있는 그는 기자로서의 뜻을 이루었을지는 몰라도 과연 역사와 민족의 소청(所請)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을까?

"저만 하더라도 과거에 학생운동을 했던 386세대이고, 요즘도 언론을 통해 사회활동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통일에 대한 생각은 멀리 던져둔 채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거든요....시대와 역사를 생각하며 살았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통일을 잊어버리고 안주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100년>(오마이북)은 무엇보다도 역사와 민족을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한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큰 미덕을 갖는다. '오연호가 묻고 법륜스님이 답하는' 형식으로 된 이 책에서 법륜(法輪)은 거의 대부분의 논의를 역사와 민족을 근거로 하여 풀어 나간다. 이에 오연호는, "30년 전에 '역사와 민족'이라는 단어 때문에 가슴이 뛴 이후 참으로 오랜 만에 스님과 대담을 하면서 다시 가슴이 뛰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등록금 투쟁은 벌일지언정 '역사나 민족' 따위는 거론하지 않는다. 시대가 그렇게 하도록 변화된 것일까, 그리고 이런 변화가 정당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본질을 잊고 있는 것일까? 정작 '고액 등록금' 같은 것은 아예 역사나 민족 따위의 문제와는 무관한 것일까?

<새로운 100년>의 큰 미덕과 작은 아쉬움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우리 역사와 민족이 당면하고 있는 제1 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분단 상황의 극복 곧 통일이고, 지금이야말로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이 법륜이 말하는 핵심 요지이다. 그리고 그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부합하는 통합의 리더십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기성의 리더십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시대를 읽고 대응해야 하는데 기성 정치권은 이걸 못하는 거예요....성장의 리더십, 민주화 리더십에 물들어 있는 사람에게는 시대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가령 안철수 교수처럼 기존 세력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금방 대화가 통합니다."(316쪽)

법륜은 미래 권력뿐 아니라 과거 권력의 대북·통일정책에 대해서도 비교적 분명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의 평가를 거칠게 요약하면 김영삼·이명박은 실패했고, 노무현은 미흡했으며, 노태우·김대중은 성과를 냈다고 진단한다. 특히 그는 노무현 정권이 나름대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역사의식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본다.

법륜은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에 대해서도 비교 평가를 서슴지 않았다. 그는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가 매년 고구려·발해의 유적지를 탐방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당연히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역사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를 내린다.

반면 신라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의 평가를 동시에 내리고 있다. 그는 신라가 가야를 병합하는 과정에서 보인 통합의 리더십과 외세 당나라에 굴하지 않고 통일전쟁을 벌였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지만, 이전에 외세 당나라를 끌어들인 점, 그리고 민족의 영토를 대폭 축소시켰다는 점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처럼 법륜의 역사관은 일단 상식적이고 평이하기 때문에 대중적 호소력을 갖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중적 호소력이란 것은 이런 것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작금 법륜이 얻고 있는 대중적 호소력의 비결은 이런 것 말고도 법륜 특유의 '확장적 민족주의'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의 고대사관은 주로 <환단고기>에 근거한다. <환단고기>는 조선의 요하문명을 중국의 황하문명과 대등 또는 우월하게 인식하는 재야의 역사관이다.

또한 법륜은 유교국가인 조선왕조에 대해서는 의외로 박한 평가를 내린다. 그에 의하면 조선의 유학 정치인들은 역사의식이 미흡한 나머지 사대주의로 흘렀다는 것인데 필자는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일단 조선은 고려에 이어 우리 영토를 압록·두만강까지 확장했다. 또한 조선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정치와 문화를 이루면서 최소 200년 이상 아시아의 1등 국가를 구가했다고 필자는 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문제는 필자에게 이 책이 가지는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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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오연호 대담집 <새로운 100년> 출간 기자간담회가 1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성당 1층 북카페 '산 다미아노'에서 열렸다. ⓒ 권우성


진보 야권의 총선 실패와 차기 대선에 교훈을 주는 책

제목 <새로운 100년>이 말하듯이, 이 책은 향후 100년 우리 역사가 바람직하게 전개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통일이 요긴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개진한다. 요컨대 이 책은 경제와 복지가 살벌할 정도로 강조되는 한국 사회에 근원적인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한국 경제는 벌써 15년째 국민소득 2만 불에서 정체하고 있다. 지나친 개방은 양극화를 파생시켰고 이에 따라 우리 사회는 행복한 복지사회와는 반대의 길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경제 정체와 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분단체제가 혁파되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경제성장과 복지사회를 구현할 수가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다시 웅비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는 점을 이 책은 역설하는데 그것을 매우 과학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실로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진보 야권은 지난 총선에서 실패했다. 물론 이전 국회보다는 세를 불렸지만 이명박 정권의 엄청난 실정을 감안한다면 명백히 패배한 것이다. 게다가 올해 12월로 임박한 대선 전망도 밝지 않다.

보수 여당과 달리 진보 야권은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표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한반도의 비전은 '역사와 민족'을 논의함으로써 창출된다는 점을 간과하지는 않았던가? 오늘날 진보 야권의 지도자 연하는 사람들이 역사와 민족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기회주의적이거나 아니면 법륜의 말대로 역사의식이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 역사와 민족을 경시하거나 백안시하는 사람은 다수 국민의 호감과 존경을 얻을 수가 없다. 결국 그는 큰 인물로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일연과 <새로운 100년>의 법륜

끝으로 <새로운 100년>은 통일을 본격 논의하는 책답게 남북한 정세와 관련된 난감한 질문들에 대해 비교적 명쾌한 답변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왜 지금이 통일의 적기인지, 조선 말기 민란이 빈발했던 북한 땅의 인민들은 왜 굶주리는데도 김일성왕조에 순응하는지, 북한의 3대 세습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주한미군과 전작권 환수 문제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는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또한 이 책은 북한 사회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 북한 정치 지도층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 등의 거시적인 문제, 그리고 북한 주민이 보안원과 멱살잡이까지 하면서 싸워도 탈이 나지 않는 문제는 무엇인지, 심지어 만약 전태일 열사가 지금 평양에 있다면 어떤 운동을 벌여야 하는지 등의 기발한 질문에도 매우 그럴듯하게 답변한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법륜의 철학과 활동상을 전면 기사로 소개했다. 이 기사는 '그는 레스토랑과 술집, 러브호텔로 가득 찬 서울의 뒷골목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은둔과 묵상보다는 속세의 사명을 위해 일한다'고 소개한 바 있다. 기사의 지적대로 그는 분명 세상과 타협하는 속화된 승려다.

13세기 고려의 승려 일연(一然)이 저술한 <삼국유사>는 우리 역사를 '지식인의 역사에서 민중의 역사로, 사대의 역사에서 자주의 역사로 바꿔 놓은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삼국유사>는 전형적인 '야사(野史)'다. 법륜이 구술한 <새로운 100년> 역시 야사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는 '지식인의 통일을 민중의 통일로, 사대의 통일을 자주의 통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새로운 100년 - 오연호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다, 개정증보판

법륜.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2018


#새로운 100년 #법륜 #오연호 #역사와 민족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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