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바귀는 싸리꽃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진주 집현산

등록 2012.05.19 10:59수정 2012.05.1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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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산 오르는 길. 평지같이 생겼지만 가파른 곳도 많습니다 ⓒ 김동수


2005년 가을, 지리산에 올랐는데 등산화가 아니라 운동화를 신고 갔다. 같은 간 한 분이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셨는지 며칠 후 등산화를 선물하셨다. 그 후 등산을 자주 갔을까? 아니다. 1년에 5~6번이다. 그리고 등산을 다녀오면 신발을 닦아 보관했다. 약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등산화는 새것 같다. 나같은 사람때문에 등산화 만드는 회사가 망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짠도리'라는 내 별명이 유효하다는 점이다.


지난 17일 아는 사람들과 경남 진주시 집현면에 있는 집현산(577m)에 올랐다. 진주에 산 지 12년이 되었지만 집현산이 진주에서 가장 높은 산인 줄 처음 알았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조금 가파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평평했다. '이쯤이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정상을 앞둔 100m(길이는 약 800m)는 가팔랐다.

같은 일행 중에 1000m는 넘어야 '산'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분이 계시다. 이 분에게 집현산은 언덕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헐떡고개보다 더 힘들었다. 다행인 것은 이름 모를 꽃들-그 분이 꽃 이름을 다 가르쳐주셨지만 돌아서니 까먹어버렸다-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지 않았다면 되돌아 왔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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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명이 정말 대견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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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디 다들 작습니다. 이 녀석은 5월초쯤이 떨어지는 데 아직까지 살아남았습니다 ⓒ 김동수


씀바귀는 싸리꽃을 질투하지 않아

물론 다 까먹은 것은 아니다. 씀바귀도 있었고 싸리꽃도 봤는데 볼품은 없었다. 하지만 예쁘지 않아도 타박할 수 없다. 예쁘고, 귀엽고, 화려한 것만 꽃이라고 하면 자연은 삭막할 뿐이다. 사람이 모두 똑 같은 생김새로 예쁘다면, 그것은 예쁜 것이 아니라 조금 섬뜩한 일이다. 당연히 꽃들도 마찬가지다. 생김새가 다르기에 자연은 생명이 넘치는 곳이다. 그리고 씀바귀는 싸리꽃을 질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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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꽃입니다. 예쁘지 않다고 지나갈 수 있지만 이런 수수하게 생긴 꽃도 귀한 생명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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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바귀 꽃(?) ⓒ 김동수


질투하지 않는 이들, 사람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배울 것 참 많다. 아주 작은 꽃이다. 어떻게 이런 녀석 그 모든 것을 다 이겨내고 필 수 있었을까? 연약한 것 같지만 한없이 강하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으면 자연이 허락한 그 시간까지 자기를 뽐낼 것이다. 자연의 위대함은 바로 이들이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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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꽃인데, 같은 일행이 가르쳐주었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 김동수


구수한 둥굴레, 꽃은 은은하게 예쁘네

조금 탄 숭늉처럼 구수한 둥굴레차. 꽃도 은은하게 예쁘다. 둥굴레꽃을 처음 봤는데 이런 꽃을 좋아한다. 화려하지 않은 것, 뽐내지 않는 꽃이다. 눈이 뻔쩍할 정도로 화려함은 없지만 보면 볼수록 마음을 끈다.

이 녀석 오래 기억하리라. 그리고 이런 꽃은 질리지 않는다. 화려하고, 눈이 뻔쩍하게 예쁜 꽃은 쉽게 질리고, 지는 모습 역시 추하다. 하지만 이런 녀석은 질리지 않고, 지는 모습도 은은하게 자신을 내려놓는다. 어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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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굴레꽃이라고 합니다. 예쁩니다 ⓒ 김동수


진주가 좋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웬만한 높이 산 정상에 가면 지리산을 볼 수 있다. 서울시가 아무리 좋다지만 지리산을 볼 수 없다. 한라산을 빼고 남녘 하늘 아래에서 가장 높은 곳이 지리산이다. 집현산에서도 지리산이 보인다. 하늘이 맑지 않아 않아 희미하게 보이지만 역시 산은 지리산이다.

지리산을 올라야 산에 올랐다고 하는 그 분, 지리산을 보자 마냥 즐거워한다. 지리산에 오른 지 벌써 7년이 지났다. 얼마 있지 않아, 산 중의 산이 그곳에서 등산화가 자기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산에 올랐다고, 하루 종일 다리가 묵직하다. 게으름 피운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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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산 정상에서 본 지리산. 진주에 있는 높은 산에서는 지리산을 볼 수 있습니다. ⓒ 김동수

#집현산 #싸리꽃 #씀바귀 #둥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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