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때 벗으면 농촌 생활도 재밌답니다"

[탐방여행-명덕마을③] 백두대간 육십령고개 아래 귀농가정을 찾아

등록 2012.05.20 17:50수정 2012.05.2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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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된장국으로 숙취를 해소하니 이번엔 다른 생리가 엄습합니다. 변기에 걸터앉아 신문 하나 있으면 될 터인데, 여기선 그게 그렇게 안 됩니다. 쪼그려 앉아 대·소변 따로 처리해야 하는 '생태화장실'이니까요. 한쪽 귀퉁이에 읽을거리가 쌓여있지만 발이 저려 책을 붙잡고 있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쪼그린 채 몇 번을 일어났다 앉고 이리저리 비틀기를 반복했을까. 간신히 일을 마쳤습니다. 책은 들어보지도 못 했고요. 왕겨를 덮으면 끝입니다. '해우소'를 나서는데 저절로 한숨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휴우~"

쥔장이 마당에서 뭔가를 하는 모양인데, 노랫소리가 우렁찹니다. '선구자'부터 흘러간 유행가, 그리고 오래전 불렸던 민중가요까지 경계가 없습니다. 잘 들어보니 혼자 노래를 그렇게 하는 건 아니더군요. 툇마루에 카세트라디오를 틀어놨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담은 저장매체(USB)를 연결해 켜놓고 한 구절씩 따라 부른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귀농·귀촌한 어떤 분으로부터 막상 현지에 가 정착하고 보니 하루가 좀 길게 느껴질 때가 많다고 한 말을 들었는데, 혹시 쥔장도 무료함을 달래려고 그리하나 싶어 '밝은마을' 운영자인 김혜정 여행생협 추진위원에게 물으니 이렇게 말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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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망졸망 50여개의 크고 작은 장독. 도시에 살다 2년 전 내려온 귀촌자 부부가 뭘 할까 고민하다 음식솜씨가 뛰어난 부인 정씨 덕에 된장 담그는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 최방식



"지루함을 느꼈다는 분은 아직 도시 때를 덜 벗어 그런 것이지요. 이웃·친구·동료들과 늘 경쟁해 이겨야 '제몫'을 늘릴 수 있다고 알고 그리해온 습성이지요. 농촌·산촌에 와 보면 같이 경쟁할 상대가 안 보이니 허전해서 그런 것이고요. 그 때를 넘기면 농촌 삶이 달라져요. 재미를 느끼고, 즐길 수 있거든요."

쪼그려앉아 부르르 떨다 일을 마치니...

마당에서 뭔가를 열심히 만지는 쥔장을 보고 김일섭 여행생협 상임대표가 "어머니 상태는 어떤 거냐? 우리들이 방문했다는 얘기는 했느냐"고 묻자, 전희식씨가 피식 웃으며 "어머니께 이웃 마을에 사는 일꾼이라고 말했으며 그리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곤 덧붙입니다.

"일거리가 있어 이웃을 품삯을 주고 불렀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일도 안 하고 놀기만 하는 데 어서 돌려보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니, 일 할 거'라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에이, 바보 같은 놈아, 일은 안 하고 품삯만 받으러 온 사람들이야'라고 하더이다."

그러면서 쥔장은 방문자를 본격적으로 부리기 시작합니다. 마당 한 귀퉁이에 수도시설이 있고 이걸 연결해 치매 어머니가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집안에서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마당 수도시설을 개량해야 한다고 합니다. 수도꼭지가 얼지 않도록 플라스틱 통에 싸 흙속에 파묻어놨는데, 그 통을 교체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김 상임대표와 기자는 "어머니가 일시키지 말고 돌려보내라고 했는데, 아들이 말을 안 듣고 일꾼을 부려먹는다"고 투덜(?)대며 삽을 들었습니다. 플라스틱 통을 파내고 다른 걸로 대체하는 건 그리 어려울 게 없는데, 문제는 원통 안쪽 수도꼭지입니다. 해체했다가 다시 연결하는 거라 물이 샐 수 있기 때문. 장정 셋이 1시간여 낑낑거리며 일을 간신히 마쳤습니다.

마당이 깨끗해졌다며 쥔장이 '잘됐다'고 감탄사를 연발하자 일행은 안도했습니다. 계곡 위쪽 주민 한 분이 자신과 일행을 초대했다며 가자고 트럭 짐칸에 올라타라고 합니다. 나물캐던 일행을 불러 트럭 짐칸에 타고 5분여 계곡 깊숙한 곳으로 올랐을까요. 그림 같은 전원농가가 나타납니다. 달밤에 이은 아침 산책길에 봤던 그 아름다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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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게 흘러내린 남덕유 서남능선 계곡 중턱. 개울가 계곡 한 가운데 집을 짓고 주변을 정원처럼 가꿔 놓았습니다. 앞마당엔 꽃잔디가 펼쳐져있고, 화단(뜰)엔 제비꽃·할미꽃 등 봄꽃이 매혹적입니다. ⓒ 최방식


개 짖는 소리에 놀라 주위를 살피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장년의 남자 한 분이 모자를 벗으며 반갑게 일행을 맞이합니다. 전원주택 남편 쥔장입니다. 집이 너무 예뻐 화단을 둘러보며 돌계단을 오르는데 이번엔 여편 쥔장이 현관문을 열고나오며 '어서 오라'고 반깁니다.

폭이 그리 넓지 않아 아담하게 흘러내린 남덕유 서남능선 계곡 중턱. 왼쪽 개울로 시냇물이 흐르고 계곡 한 가운데 밭을 일궈 집을 짓고 주변을 정원처럼 가꿔 놓았습니다. 쥔장 성품만큼이나 예쁘다고 해야 할 겁니다. 앞마당엔 꽃잔디가 쫙 펼쳐져있고, 화단(뜰)엔 제비꽃·할미꽃 등 봄꽃들이 매혹적입니다.

"바보야, 일 안하고 삯만 챙기려해"

그 사이로 눈에 들어오는 장독대. 올망졸망 50여개의 크고 작은 장독들에 무엇이 담긴 줄 일행은 알고 있습니다. 전 대표가 귀띔을 해줬거든요. 정년을 마칠 나이의 부부. 도시에 살다 2년 전 내려온 귀촌자. 뭘 할까 고민하다 음식솜씨가 뛰어난 부인 정삼례(64)씨 덕에 된장 담그는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정씨가 데려간 곳도 장독대였습니다. 뚜껑을 열더니 1년 숙성된 된장이라며 한 움큼 퍼내 맛을 보라고 권합니다. 기자야 된장 맛을 제대로 알 리가 없고. 그림 같은 산촌마을에서 마음씨·솜씨 좋은 이의 된장을 맛보는데 어찌 딴소리 나오리까?

정씨 부부는 농촌진흥청 지원을 받아 된장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완주군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개최한 '음식(푸드)축제'에서 발효한 된장(생강)을 활용한 돼지고기 삼겹살 찜·구이로 최고상을 받았고. 상품개발 가치를 인정한 자치단체가 생산을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명덕리 계곡이 백두대간보호법 규제를 받아 제조시설 설립·허가가 안 나오기 때문.

마을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 그녀의 음식솜씨를 활용할 방안을 고민 중이랍니다. 전 대표에 따르면, 백두대간 친환경 마을조성 용으로 정부(아님 자치단체)로부터 수십억 원이 지원돼 쓰고 남은 게 있는데, 시설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인근 마을에 제조시설을 짓는 데 사용하려고 논의 중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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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이름을 잊었습니다. 봄이면 지천을 하얗게 물들이는 꽃. 청정 백두대간 명덕리를 더욱 맑고 곱게 바꿔놓은 주인공입니다. ⓒ 최방식


그녀는 머지않아 된장 사업을 벌일 결심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체력(능력)으로 8백kg 정도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고. 된장 맛은 장소·바람·햇볕이 좌우하는데, 그녀는 여기와 그 최적지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효모 고초균을 제대로 활용하는 기술도 더 연마중이고요.

"된장의 오덕을 보통 다섯 가지로 들잖아요. 오래 둬도 상하지 않아 항심(恒心). 매운맛을 부드럽게 하는 선심(善心).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루는 화심(和心).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제거하는 불심(佛心). 어떤 것과 섞여도 제 맛을 유지하는 단심(丹心). 여기 오기 전, 그러니까 3년 전부터 전 새벽 2시 이전 잠자리에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된장의 달인'의 '화심 국수' 먹고선

명덕리에 들어온 건 1년이 조금 넘었고, 그 전엔 영광군에 있는 연안 김씨 종택에서 1년여를 살았다고 했습니다. 군청이 사회적기업으로 문화재(종택 등) 관리자를 선발하고 지원하는 사업에 참여해 귀촌을 준비한 것입니다. 지금 그는 '기능성 된장'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마·표고·고추씨 등을 활용(첨가)한 된장. 그 맛이 벌써부터 궁금하네요.

어찌 그리 좋은 음식 솜씨를 가졌냐고 물으니, 어머니로부터 배웠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성균관 부관장을 하셨어요. 많은 유림들이 집에 찾아오다 보니, 어머니가 늘 손님 접대를 해야 했죠. 그래선지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남달랐죠. 전 자연스럽게 터득했고요."

6명은 정씨의 집에서 호사를 누렸다. 향기 은은한 국화차에 자신이 직접 담근 간장을 양념장으로 쓴 국수(소면)를 점심으로 맛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 집 된장 맛 속에는 국화향도 한몫 하고 있다네요. 집 앞 화단과 밭에 온통 국화가 자라고 있어 궁금했는데 그 까닭을 알았습니다.

전 대표의 기행 추가. 노랗게 말린 국화꽃으로 만든 차를 한 잔 마시더니 갑자기 노래를 하겠는 겁니다. 생전 처음 들은 노래를 하더군요. 우렁찬 목소리로. 한 소절을 하더니 그만두고는 자작곡이라고 했습니다. 일행은 적잖게 놀라는 기색이었고요. 국화차를 마주하니 소리꾼 장사익이 된 줄 알았을까요? 솔직히 음정은 좀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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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은은한 국화차를 달이며 전희식씨가 갑자기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생전 처음 듣는 노래를요. 한 소절을 하는가 싶더니 그만두고는 자작곡이라 했습니다. 국화차를 마주하니 소리꾼 장사익이 된 줄 알았을까요? ⓒ 최방식


정씨 부부의 정이 담긴 환대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전 대표가 어머니 때문에 먼저 내려간답니다. 일행은 국화 순 따는 노동을 30여 분 했을까요? 맛 좋은 점심 '은혜 갚느라'. 이어 정씨 부부의 환송을 받으며 나머지도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전 대표 얼굴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픈 어머니가 '똥꽃'을 피웠다고 했습니다.

그는 외지 사는 친구집에 상(喪)이 있어 어머니를 돌볼 시설에 모셔드리고 1박2일 출타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방문단도 귀갓길을 서두르기로 했습니다. 연휴라 고속도로 정체 걱정이 컸거든요. 짐을 챙겨 차에 옮겨놓고 기다리는 데 쥔장이 비닐봉지를 바리바리 싸들고 나옵니다. 시래기에 호박말랭이 등 마른나물 거리를 건네며 나눠가지랍니다.

'생명의 조화' 굳센 기상으로 뻗쳐

백두대간, 남덕유, 명덕리, 전희식 대표의 '기'를 잔뜩 나눠 챙긴 일행은 다시 여정에 올랐습니다. 차에 오르기 전 다시 한 번 남덕유를 한참이나 바라봤습니다. '포스 장난 아닌' 전 대표가 여기 남덕유 아래 자리 잡고 사는 이유가 뭔지를 고민했고요.

청년시절 두어 번 남·북덕유에 오른 적이 있는데, 기억에 남은 게 없습니다. 동북으로 영남에게, 그리고 서남으로 호남에게 '넉넉한 덕'을 나눠주는 덕유(德裕). 그 '덕유'가 주봉인 향적봉(북덕유)이라면, 여기 남덕유는 좀 다릅니다. 굳센 기상을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남덕유의 서봉(동봉이 남덕유 정상) 아래 육십령고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덕리. 거기엔 만물이 어우러져 우주 삼라만상의 조화로움이 생명으로 움트고 있었습니다. 전 대표의 그 '기'는 그러니까 '조화로운 생명'이었고, 그 조화가 '굳센 기상'으로 발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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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정씨 부부의 솜씨 좋은 간장을 양념장으로 쓴 국수(소면)를 점심으로 대접받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국화향 가득한 국수 그릇 속에는 제비꽃처럼 생긴 예쁜 꽃이 들어있습니다. 국수 한 그릇 더~ ⓒ 최방식


천재시인 김민부가 쓴 시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임 오지 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눈물 흘렸네~"라는 그의 시에 장일남이 곡을 붙였던 명곡 '기다리는 마음'을 쓴 바로 그 시인입니다.

서른한 살에 요절했는데, 그가 고교 1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출품해 당선된 '석류'라는 시입니다. "불타오르는 정열에/ 앵도라진 입술로/ 남 몰래 숨겨온/ 말 못 할 그리움아/ 이제야 가슴 뻐개고/ 나를 보라 하더라/ 나를 보라 하더라."

덧붙이는 글 | 인터넷저널에도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저널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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