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기, 황석어, 조기새끼 같은 말이라구?

[포토에세이] 황새기젓 담그기

등록 2012.05.27 10:07수정 2012.05.2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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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새끼 황새기젓, 항석어젓의 재료가 되는 새끼조기 싱싱한 것을 공수했다. 잘 삭여두었다 가을에 김장할때 사용할 예정이다. ⓒ 김민수


"예, 싱싱한 것이 들어왔다고요. 곧 가겠습니다."


아내는 저녁을 먹고 막 쉬려는 데, 내게 들고 올 것이 있으니 공판장에 가자고 한다. 황금연휴가 시작된 금요일 오후, 기력이 쇠할 대로 쇠했는데 또 뭘 시작하려는 것일까? 약간 짜증이 밀려온다.

"뭔데 그래?"
"황새기젓 담그려고…."
"뭐하게?"
"가을에 김장할 때도 쓰고, 잘 삭으면 밑반찬으로 먹지."

갑자기 황새기의 정체가 궁금해졌기에 순순히 아내를 따라나섰다. 집에 돌아와 봉지를 풀어보니 눈이 껌벅거린다고 하면 약간은 거짓말이 될 정도로 싱싱한 생선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게 뭐야?"
"황새기."
"아니, 고기 이름이 뭐냐고?"
"아, 조기새끼, 황석어라고도 해."
"그러니까, 이게 황새기젓, 황석어젓, 조기젓깔이라 이거지?"
"하나를 가르쳐 주니까 열을 아네. 남들이 보면 살림 꽤 하는 남편인 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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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염 어머님이 2년 동안 정성껏 간수를 빼놓은 소금이다. 어머님은 소금값이 오르고, 가짜 천일염이 판을 치자 한껏 자신이 직접 간수를 뺀 소금에 대해 자랑에 자랑을 더하셨다. ⓒ 김민수


아내는 옥상 항아리에서 소금을 잔뜩 퍼왔다.


"이거, 국산 천일염인데 어머니가 2년 동안 간수를 뺀 거야."
"그래?"
"천일염 가짜에다가 소금값 많이 올랐을 때 어머님이 얼마나 유세를 하셨는지…."
"맞아. 소금 많이 사셨다고 뭐라 했더니만 '니들이 뭘 알아?' 하셨지."
"그래, 그리고나서 소금값 올라가니까 얼마나 큰소리치셨다고…."
"큰소리 치실만 하지 뭐."
"칫, 누가 아들 아니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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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기젓 소금과 조기새끼의 비율을 1:1로 하여 항아리에 넣어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잘 삭는다. ⓒ 김민수


아내는 소금 듬뿍, 조기새끼 듬뿍 1:1의 비율로 섞어 항아리에 넣는다.

"그냥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응, 항아리에 넣어서 서늘한 곳에 놓으면 된데."
"간단하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싱싱한 조기새끼 구하는 것하고, 천일염 소금하고, 항아리하고, 그게 다 거저 생긴 줄 알아?"
"아따, 공치사 되게 하네."
"공치사가 아니고, 그렇다는 얘기야. 누가 요새 젓갈을 집에서 담궈 먹냐? 행복한 줄 알아."
"예, 마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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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어젓 작은 항아리에 소금과 조기새끼를 1:1의 비율로 담아 두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자라 삭여진 젓깔이 될 터이다. 잘 삭은 젓깔에 풋고추와 붉은고추를 썰어넣고 참기름 두어방울 떨어뜨리면 밥도둑이 된다. ⓒ 김민수


갑자기 군침이 확 돈다.

"야, 저거 지금 먹으면 안 되겠지?"
"그럴 것 같아서 좀 굵은 것도 사왔어. 다듬어."

헉, 싱크대에 보니 제법 굵은 조기가 한 바구니다. 비늘을 벗겨 내고 지느러미 자르고 손질을 하니 아내가 바로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소금을 뿌려가며 굽는다.

"그런데 이름이 뭐 이러냐? 황새기젓, 황석어젓, 조기젓깔... 얘 정체는 도대체 뭐야?"

오랜만에 젓갈을 직접 담궈 본다. 가을에 잘 삭은 항새기젓을 넣고 김장도 하고, 양념해서 밥상에도 올리고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 군침이 돈다. 뭐든지,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으면 그게 가장 맛난 밥 도둑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옥상 회분에서 키운 상추와 치커리와 실파에 노릇하게 구워진 조기를 올려놓고, 막된장을 올리니 밥 한 그릇이 뚝딱이다. 사는 거 그리 거창하지도 않고, 행복 역시도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다.
#황새기젓 #황석어젓 #조기젓깔 #밥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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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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