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순간, 애도가 시작된다

[서평] <애도예찬> 진정한 애도는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등록 2012.06.05 10:20수정 2012.06.0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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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3년 전,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기간 내내 서울 시청 앞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 안에 있으면, 가슴이 뻥 뚫린 듯 시렸다. 내 몸이 분해되어 하늘로 날아갈 듯해서였다. 마지막 날에는, 시청 앞에서 서울역까지 운구차를 따라갔었다. "애도의 노란 물결이 시청부터 서울역까지 가득했다."라고 언론사마다 한마디씩 했다. 나는 올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년을 맞이하여 추모행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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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 노란 풍선을 날렸다. ⓒ 허관


내일(6월 6일)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국가에서 정한 기념일이다. 현충일하면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 시 나라를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사 이래 한반도를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모든 이들을 애도하는 날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애도란 죽은 사람에게만 쓰이는 말이다. 당연히 슬프고 우울한 단어다. 그런데 "애도예찬"이라니, 슬픔을 죽음을 예찬하자는 것인가. 나는 애도예찬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이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잃고 나는 한참 동안 창 밖 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필도 아니고, 자서전도 아닌 글이 이렇게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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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예찬(문학에 나타난 그리움의 방식들)> 왕은철 씀, 현대문학 펴냄 ⓒ 현대문학

생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죽음이 없으면 생이 없다. 또한 인간은 관계로서 오롯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와 살을 받아 생명으로 태어나고, 나 또한 나의 살을 나누어 자식을 만들고, 의지하며 생을 살아간다. 절대자의 입장에서 보면 생명은 단절이 아닌 큰 강줄기처럼 흐른다. 하지만 인간은 절대자가 아니다. 언젠가는 지금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곁에 있는 자식 또는 부모님과 이별을 해야 한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총 사망자 수는 25만 5천 403명으로, 하루 평균 700명이 숨진 셈이다. 지금도 그 누군가는 그가 지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 속으로 보내고 슬픔에 겨워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언젠가 하나는 상대보다 먼저 죽고 다른 하나는 그 죽음을 애도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닭는 그 순간에 애도가 이미 시작되었다.<35쪽>, 삶의 바다에 넘실대는 죽음의 파도를 말하지 않고 인간사를 애기할 수 없는 탓이다.<44쪽>"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헤어지면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도,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헤어짐의 그 순간이 고스란히 그리고 영원히 기억된다면 아마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말한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슬픔에는 끝이 없어야 하며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애도일지 모른다.<18쪽>"

라고. 얼핏 들으면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과연 인간은 사랑을, 또는 사랑했던 사람의 부재를 완전히 메울 수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메울 수 없다. 왜냐하면 완벽하게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으믄 잊혀지까 안 잊혀지는겨/남덜이사 허기 좋은 말로/날이 가고 달이 가믄 잊혀진다 하지만/슬플 때는 슬픈 대로 기쁠 때는 기쁜 대로/생각나는겨/살믄서야 잘살았던 못살았던/새끼 낳고 살던 첫사람인디/그게 그리 쉽게 잊혀지는감/나도 서른둘에 혼자 되야서/오남매 키우느라 안해본 일 읎서/세상은 달라져서 이전처럼/정절을 쳐주는 사람도 읎지만/바라는 게 있어서 이십 년 홀로 산 건 아녀/남이사 속맴을 어찌 다 알것는가/내색하지 않고 그냥 사는겨/암 쓸쓸하지. 사는 게 본래 조금은 쓸쓸한 일인겨/그래도 어쩌겄는가. 새끼들 땜시도 살어야지/남들헌티사 잊은 듯 씻은 듯 그렇게 허고/그냥 사는겨/죽으면 잊혀지까 안 잊혀지는겨.<도종환 "사랑방 아주머니"전문>

도종환 시인 뿐만 아니라. 대상은 다르지만 프루스트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도 기억의 영속성에 대해 말한다. 기억은 잊는 것이 아니라. 즉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이다. 잃어버린 것은 언젠가는 찾을 수 있다. 잃어버린 동전을 언젠가는 찾을 수 있듯이 말이다. 희미한 마들렌 향기의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 시작하여 11권의 책을 엮어낸 프루스트가 이를 증명해 주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이다. 19세기에서 1차 대전이 끝난 20세기 초반까지 3세대에 걸쳐 무려 5백여 명의 주요 인물을 등장시키며 수천 쪽에 걸쳐 과거를 복원해낸 명작이다. '스완네 집쪽으로'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게르망트 쪽' 등 총 7편, 11권으로 되어있다. 주인공이 홍차에 곁들인 마들렌 향기를 맡고서 아득한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시작된다.

일반 사람들이 바라는, 즉 슬픔을 빨리 잊고자 하는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너무나 큰 슬픔에 못 이겨 모든 것을 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즉 우울증, 트라우마 등 정신병으로 취급한다. 사랑하던 사람의 부재를 서서히 매우면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 우리는 죽은 자와 같이 살아야하고, 떠난 사랑과 같이 있어야한다. 어떻게 죽은 자와 같이 살아가야 하는가. 떠난 첫사랑을 어떻게 보듬고 살아야 하나에 대해 지은이는 여러 문학작품을 통해 가슴 절절히 알려준다. 마들렌 향기에 온갖 기억들이 끌려나오듯이, 책을 읽다보면 나의 아픈 기억들이 떠올라 나를 괴롭히다가. 끝내는 내가 그동안 외면한 또 다른 나, 즉 아픈 기억과 화해를 하게 만든다.

저자는, 진정한 애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여러 문학 작품 속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또는 부재가 가져오는 슬픔을 위한 애도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나보다 더 나야."

이 책에서 언급한 첫 번째 작품, 폭풍의 언덕의 명대사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나 자신 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통속적인 사랑의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떠났는데도 이 감정을 영원히 간직하고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저자는 말한다. 폭풍의 언덕은 사랑의 소설이 아니라, 죽음의 관한 소설이라고,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부재를 인정하지 않고 애도를 거부하고 애도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나보다 더 내가 사랑하는 존재란 누구일까. 아들 일 수 있고, 연인일 수 있다. 이들의 떠남을 받아들이지 않고, 광기로 표출함에 따라 발생하는 비극을 폭풍의 언덕에선 잘 표현했다고. 떠난 사람을 애도하지 못하고 끝없이 사랑하면서 생기는 비극.

지금의 대한 민국에도 이와 유사한 비극들이 벌어지고 있다. 뉴스 말미에 자주 접하게 되는 치정 살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애도하지 못하여 생긴 현상들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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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6월 개봉예정인 폭풍의 언덕 포스터. 여인의 눈에 애련함이 가득하다 ⓒ 찬란


"아빠, 아빠, 이 개자식아, 나는 끝났어."

작품 전체에서 가장 충격적인 문장이다. 아빠란 단어에서 느끼는 유아틱하고 순수함. 개자식이란 퇴폐적인 언어 "나는 끝났어."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그리고 이 문장의 주인공이 여자라는 것이다. 그녀가 자살하기 전 4개월 전에 쓴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아버지를 무척이나 존경하고 사랑하던 한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8살 때 죽는다. 그녀는 어머니의 손에 자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기억을 그녀로부터 지워내려고 한다. 때문에 그녀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꾸역꾸역 자신의 내면에서 삭여야 했다. 그녀는 결혼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속에 간직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꺼내, 그녀의 남편을 아버지와 동일시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바람을 피웠다. 끝내 그녀는 뜨거운 가스오븐 속에 얼굴을 넣고 자살을 했다. 그녀가 바로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최고의 페미니즘 작가로 알려진 실비아 플라스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생긴 부재의 공간을 매울 수 있는 애도의 기간만 있었어도 이와 같은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피아노 소리를 남자가 듣고 있다는 걸 알았다."

2차 세계대전 때의 일이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 시에, 독일군 한명이 상처를 치료하고자 약국에 들렀다. 아버지 대신 약국을 지키던 프랑스 여자는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배운 대로 상대를 쳐다보지 않고 치료를 해주었다. 독일병사는 또 치료를 받으러 약국에 찾아왔다. 그녀는 또 배운 대로 머리를 숙이고 손에 붕대를 감아 주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그 독일병사가 그녀가 피아노 치는 소리를 어둠 속에 서서 듣고 있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되었다.

그렇게 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당연히 그녀에게 사랑은 국가보다도 우선시 되는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노르망디상륙작전이 성공하고 독일군은 퇴각하는 와중에 그가 죽는다. 그녀는 그의 시체위에서 밤을 새워 운다. 그녀는 그를 그렇게 애도하며 그를 보내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그런 그녀를 끌고 가 머리를 밀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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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사랑 여 주인공의 눈물 ⓒ 알랭 레네


마르그리트 뒤라스 영화「히로시마 내 사랑」의 한 부분이다. 뒤라스는 말한다. 2차세계대전시 그렇게 삭발을 하여 거리를 끌려 다닌 프랑서 여자가 2만 명에 달한다고. 

그녀는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것도 실패로 돌아가고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지하실에 살게 한다.

그녀는 정상일 수도 없었고, 정상이어서도 안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은 죽었는데, 따라 죽지 못하면 미치기라도 해야 했다. 죽지 않으니 머리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밤에도 자라고 낮에도 자라고.<261쪽> 그녀는 머리가 자라면서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262쪽>

"히로시마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야 비로소 그녀는 그 지하실에서 나와, 환희에 찬 길거리의 인파 속에 섞이기에 적당할 만큼 머리가 자라 있었다.<"히로시마 내 사랑" 영화중에서>"

살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있게 된다. 물론 그 살아있음은 삶이라 할 수 없다. 생물학적인 생존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녀도 그랬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문자화 한다.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이 언어로 대치되면서, 그것을 잊을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보다 엄청난 변화가 어디 있으랴. 완전히 메우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그녀는 적어도 구멍을, 그녀의 첫사랑이 살고 있는 구멍을 조금씩 메울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265 쪽>

위에 제시한 두 작품은 애도의 실패사례였다면, 적군을 사랑한 여인의 애도는 "떠난 자의 부재를 어떻게 메우나"를 잘 나타낸, 애도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이외에도 이 책에서는 몸으로 연유되는 안티고네의 오빠에 대한 불가능한 애도, 신의 충만한 사랑 때문에 오히려 시험받게 되는 욥의 애도, 복수극으로 비극적인 죽음의 찬지를 벌이게 된 햄릿의 실패한 애도 등 저자는 문학 속에서 다양한 애도의 종류와 이를 대처하는 방법들을 감동적으로 끌어냈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오늘도 대한민국이란 좁은 나라에서 700여 명의 생명들이 사라지고, 죽은 자의 가족 또는 지인 등 몇 천 명이 망자를 위해 애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죽었지만 죽은 자를 마음껏 사랑하는 것이다

애도를 예찬할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만약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시 국민들에게 애도의 장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장은 나라가 조용했을지 모르겠지만, 국민 각자의 마음속에 분노를 키우다가 끝내는 실비아 플라스 처럼, 또는 이 책에서 소개된 많은 애도의 실패자들처럼 국민들은 분노를 지나 광기로 발현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저자가 책 내용 중간 중간에 "진정한 애도는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희미해져가는 기억과의 싸움."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서서히 지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희미해져가고, 6. 25 한국전쟁이 잊혀간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잊으면 또 그와 같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

내일(6월 6일)이면 현충일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애도는 물론, 각자 잊은 듯하지만, 아직까지 가슴 한 귀퉁이에 흔적으로 남아있는, 오래 전에 떠난 사람을 만나는 날로 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들을 만나 무슨 말을 할까는 각자의 자유다.

덧붙이는 글 | <애도예찬(문학에 나타난 그리움의 방식들)> 왕은철 씀, 현대문학 펴냄


덧붙이는 글 <애도예찬(문학에 나타난 그리움의 방식들)> 왕은철 씀, 현대문학 펴냄

애도예찬 - 문학에 나타난 그리움의 방식들

왕은철 지음,
현대문학, 2012


#애도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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