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다리에 쥐가... '자전거 고수'의 길은 험난해!

[공모-여행지에서 생긴 일] 발끝으로 심장으로 느껴지는 남한강변 자전거 여행

등록 2012.06.13 14:22수정 2012.06.1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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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팔당대교도 사람과 자전거가 건너갈 수 있다 ⓒ 김종성


볼일이 있으나 없으나 오며가며 들르는 곳 중의 하나가 동네 자전거 가게다. 새로 나왔다는 자전거나 액세서리들도 구경하고, 베테랑 직원과 자전거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하며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나처럼 자전거 때문에 가게에 찾아온 처음 보는 동네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도 재미있다.     

이번 주말엔 어디를 달려 볼까 하고 자전거 라이딩 코스를 주제로 얘기를 하다가 요즘 수도권의 많은 라이더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남한강 자전거 도로 얘기가 나왔다. 그 길을 몇 번 달려본 나도 끼어들어 '폐철도 위에 만든 길이라 터널도 지나가고 철교 위도 지나가는 등 이채로운 자전거 도로'라고 나름 알은체를 했다.  


그때 나이 지긋한 중장년의 동네 주민 한 분이 남한강의 진짜 자전거 라이딩 길은 그 건너편에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툭 말을 건넨다. 남한강 북쪽의 잘 닦인 자전거 도로는 누구나 달려갈 수 있지만, 강 남쪽의 길은 스릴과 도전의 코스로 자전거 고수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라는 거다. 전에 몰랐던 길이거니와 자전거 라이딩 고수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라니 귀가 쫑끗해진다. 역시 '인생도처유상수(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고수가 존재한다)'다.

라이더를 어르고 달래는 강변 언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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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댐까지 걸어가는 길도 있다. 오른편으로 차도와 자전거 도로가 보인다. ⓒ 김종성



지난 주말(9일) 수도권 중앙선 전철 팔당역에 내리자 주말을 맞아 많은 자전거 라이더들이 나와 있다. 모두들 역에서 가까이에 있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달려가 버리고, 나만 혼자 떨어져 나와 인근의 팔당대교를 향해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 길이 새로 생긴 팔당대교를 가볍게 달려 강의 남쪽으로 건너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로만 지나갈 수 있었던 팔당대교에 어엿하게 생겨난 자전거 도로를 보니 자전거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팔당대교를 건너 '애마' 자전거가 달려가는 곳은 팔당댐을 지나 경기도 광주, 퇴촌 방면의 강변길. 자전거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남한강 분원리 라이딩 코스'로 불린다. 차도 옆에 새로 만든 자전거 도로를 샤방샤방 달리다가 팔당댐부터 본격적으로 자전거 고수가 되기 위한 길이 시작된다. 이제부터는 차도 갓길과 언덕길의 연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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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교 위에서 보이는 팔당호 풍경에 가슴이 탁 트인다 ⓒ 김종성


무릇 자전거 고수가 되려면 도로 위의 차량들을 두려워해선 안 되는 법. 차도 맨 우측의 흰색 선을 생명선 삼아 갓길을 용감하게 내달린다. 몇 년 사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 건지 위협적으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차들이 없다.

아니면 몇 년 사이에 내 자전거 실력이 는 건지도 모르겠다. 도마삼거리, 광동교를 향해 낭만의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했던 강변도로, 연인과의 추억으로 아련한 강변길을 이제 애마 자전거와 함께 달려간다.  

차량과 갓길의 두려움을 떨쳐낸 자전거 라이더에게 두 번째 시험대는 바로 '업힐(고갯길, 언덕길 등을 총칭하는 자전거 용어)'이다. 강 건너의 평평하고 편안한 남한강 자전거 길과 달리 라이더의 다리 힘과 인내심을 테스트하려는 듯한 업힐이 동해 바다의 파도처럼 연이어 밀려온다. 초여름인데 벌써 30도의 무더운 날씨 속, 느리지만 숨 가쁘게 업힐을 오르면, 잘했다며 주는 상처럼 내리막길이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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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 개수 세기를 포기하니 비로소 강변의 정취와 아름다움이 눈과 마음속에 들어온다 ⓒ 김종성



어느새 그런 길에 익숙해졌는지, 쿵쿵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도록 업힐을 오르다가도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올 때면 오르막길의 고통을 그새 잊어버리는 단순한 자전거 라이더가 돼버렸다. 마치 언덕길이 자전거 여행자를 어르고 달래는 기분이다. 다음 여행자를 위해서 밀려오는 업힐을 넘을 때마다 개수를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열 개가 넘는 순간 업힐을 세는 걸 포기하고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다리가 좀 덜 아프고 싱그러운 강변이 눈에 들어오더니 추억 속의 남한강변 수목원, 유원지들이 반갑게 나타난다. 다행히 급한 경사의 업힐이 아닌 야트막한 언덕길들인지라 20인치의 작은 바퀴를 가진 내 애마도 '끌바(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감)'를 하지 않고 파도타기 하듯 오르락 내리락 양평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고,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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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변에는 사십 년이 넘은 전통의 수목원과 유원지들이 남아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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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길에서 마주치는 작은 마을들은 정겹고 좋은 휴식처이기도 하다 ⓒ 김종성



남한강, 팔당호가 장쾌하고 속 시원하게 보이는 광동교를 건너면 '남한강 분원리 자전거 코스'의 그곳 분원리가 그제서야 나타난다. 동네에 세워져 있는 '분원 백자관'이 눈길을 끈다. 유심히 돌아보니 분원리는 조선시대 도공들이 살면서 백자를 만든 곳이었다. 물길이 있어 자기를 한양으로 실어 나르기도 편리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만들기에 좋은 흙도 있고 땔감도 많았단다. 당연히 있었던 가마터는 한 동안 잊혀 졌다가 다시 발굴돼 지금은 그 자리에 분원백자관이 세워졌다.

백자를 만들었던 동네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인심도 후하다. 물통을 채우려 식당에 들어갔다가 이런 더운 날 고생한다며 달달한 냉커피까지 한 잔 얻어 마시고 나왔다. 더불어 아직 지도에도 안 나온다는 강변의 따끈따끈한 신작로 정보도 듣게 되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며 종종 겪는 일이지만 지역 주민들의 동정(?)과 친절은 언제나 흐뭇하고 충만한 기쁨을 맛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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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자에게 휴식과 위로를 전해주는 강가의 나무와 그늘 ⓒ 김종성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고,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다.'고 광동교를 건너 분원리 마을로 가는 차길은 2차선의 작은 길로 바뀌고 오가는 차량들도 드물어 라이딩하기 한결 편해졌다. 더욱 좋은 건 길가에 초입이 있는 정겨운 이름의 마을들을 만나는 것이다. 무수리, 오리, 귀여리... 입구의 마을 표지석만 봐도 피식 웃음이 나는 곳들을 지나쳐 갈 적마다 자전거 페달을 천천히 밟게 된다.

분원리의 이런 강변길은 약 20km 가량 이어진다. 이 길도 한강변으로 뻗어 내린 산자락을 휘감고 돌면서 야트막한 오르막이 자주 나타난다. 한강 강변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구간 중 하나인데다 험하지 않은 오르막들까지 연이어 출현하니 자전거 여행자에겐 즐거움과 모험, 변화무쌍한 스릴을 경험하게 한다. 이 길을 알려준 동네 자전거 고수 아저씨 말대로 자전거 고수가 되는데 최고의 코스다.

무수리, 오리, 귀여리... 정겨운 강변 마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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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리, 오리, 무수리... 남한강변의 정겨운 마을들 덕분에 자전거 페달질이 덜 힘들다. ⓒ 김종성


분원리 마을 주민의 말대로 이름도 재미있는 '귀여리' 마을에 도착하니 강가에 산책로 겸 자전거 도로가 깔려 있다. '아! 이제 업힐에서 벗어나는 구나' 발밑에 펼쳐지는 풋풋하고 여유로운 강변의 풍경보다 언덕 차길에서 벗어난다는 기쁨이 더 컸다. 최근에 만들어진데다 날씨도 덥다보니 인적 없는 이 좋은 강변 산책로를 온전히 혼자 차지하며 달렸다.

강변 산책로는 얼마간을 달리다 검천마을에서 끝나는데, 이상하게 그 전에 편안하고 평탄한 산책로를 벗어나 업힐이 있는 차길로 옮겨 달리게 되었다. 남한강 분원리 자전거 코스에 어느새 매료되었는지 힘들지만 내리막길이 있어 신나기도 하는 언덕길이 그립고, 차도 변에 초입이 있는 작은 마을들과 가게, 주민들이 보고 싶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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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에게 물을 얻어 마시다 강변의 따끈따끈한 신작로 이야기를 주워들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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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위의 백로 ⓒ 김종성


마을 강가엔 커다란 느티나무 밑 그늘이 있어 한 번 앉아가지 않을 수 없고, 여름날 뜨거운 차도 변에서 과일과 채소를 파는 어느 일가족의 모습이 애틋하다가도 할아버지에게 물총을 쏘는 귀여운 아이의 몸짓에 함께 웃음 짓게 된다.

마을마다 모내기가 끝난 연둣빛 논 위를 우아하게 날아다니는가 하면 초병처럼 서 있는 하얀 백로들의 모습에 시선이 저절로 머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바로 논'이라는 누군가의 표현이 공감 가는 정경이다.
  
강하초등학교가 보이는 강하면에 들어서면 예쁜 카페와 독특한 갤러리들이 강변과 길가에 들어서 있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더 이상 언덕길도 나타나지 않아 중앙선 전철 양평역이 있는 양근대교까지 평탄하게 마무리 라이딩을 하면 된다.

양평역에서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니 갑자기 허벅지에 쥐가 난다. 양쪽 다리에 번갈아서 쥐가 나는 건 난생 처음이다. 아무래도 이 길을 몇 번 더 달려야 나도 자전거 고수가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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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중앙선 전철 팔당역에 내려 남한강의 남쪽 강변을 따라 양평역까지 달려가는, 자전거 고수가 되기 위한 길 ⓒ 네이버 지도

덧붙이는 글 | '여행사연 쓰고 공정여행 가자!' 공모 응모 글


덧붙이는 글 '여행사연 쓰고 공정여행 가자!' 공모 응모 글
#자전거여행 #남한강 #분원리 #귀여리 #팔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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