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발의 굵기를 조절하는 사출기를 보여주는 광신제면 이영조씨. 약 50년 전, 종업원이 냉면용 사출기보다 구멍 큰 것을 기계에 잘못 끼워넣은 덕분에(?) 쫄면이 탄생했다.
박소희
10시 40분, "해 봅시다!"라는 하씨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우리들의 행복한 쫄면 뽑기 시간'이 시작됐다. 내공 50년을 자랑하는 성형기가 거침없이 돌아가며 자신의 앞에 위치한 컨베이어 벨트를 향해 쫄면을 던졌다. 날카로운 패스를 받은 컨베이어 벨트는 드르륵 소리를 내며 쫄면의 '컨베이어 에베레스트' 등반과 하산을 도왔다.
"만져 봐요. 뜨끈뜨끈하죠? 면을 뽑는 과정에서 반죽이 기계랑 마찰하면서 열이 발생해 면이 익어서 나와요."차근차근 설명을 하던 이씨는 갑자기 남편을 향해 외쳤다.
"이거 봐. 빨리해서 불량 나오는 거 봐요. 숙성을 충분히 시켰어야 했는데."완성된 반죽은 일정 시간 숙성을 해야 면발과 면발이 붙어버리지 않는다. 사랑으로 하나가 된 면발은, 안타깝지만 불량품을 담는 빨간 소쿠리로 직행해야 했다. 면발들의 순애보에도, 이씨의 태도는 흔들림 없었다. '척척' 소리가 났고, 불량품 쫄면들의 사랑은 막을 내렸다.
쫄면은 면발이 굵어서 1시간정도면 80kg 넘는 반죽을 충분히 다 만든다. 면이 가는 냉면은 같은 양을 뽑을 때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컨베이어 벨트 끝에는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칼날이 기다란 면발을 적절한 길이로 끊어주고 있었다. 이씨는 잘려 나오는 면발을 받으며 "이거 정리하는 일은 아무나 못한다"고 말했다. 한 뭉치에 200g으로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나 못하는 '쫄면 줄 세우기'... 말수는 줄이고 정신은 집중해야이씨는 쫄면을 두 뭉치씩 포개 나무상자에 5개씩 줄을 세웠다. 한 줄에 10뭉치면 2kg짜리 한 봉지 분량인데, 상자 하나에 네 줄이 들어간다. 약 8kg이다. 쫄면 뭉치마다 미세한 무게 차이가 있기 때문에, 면발이 나오는 순서대로 줄을 세우지는 않는다. 중량을 맞추다보면 간혹 쫄면 정리가 밀리기도 한다.
컨베이어 벨트 밖으로 추락할 위기에 놓인 면발을 구한 이씨는 "정신없다"며 점점 말수가 적어졌다. 하씨는 내내 주걱으로 성형기 안쪽에 들러붙은 반죽을 긁어내고, 사출기를 통과하는 면발을 확인하느라 조용해졌다. 윙 하는 기계 소리만이 작업장을 채우고 있었다.
11시 35분쯤 마지막 면발이 하씨의 주걱을 거쳐 이씨의 손에서 하나의 쫄면 뭉치로 태어났다. 성형기를 멈추고 컨베이어 벨트 쪽으로 다가온 하씨는 "뜨끈한 것 먹어봐라, 맛있다"며 기자에게 쫄면 조각을 권했다. 제면과정에서 한 차례 익은 쫄면의 맛은 갓 뽑은 가래떡과 비슷했다. 이날 뽑은 면의 양은 나무상자로 13판, 약 104kg이었다.
'쫄면의 탄생지' 광신제면이지만, 여름철 인기상품은 역시 냉면이다. 이곳에서는 생메밀만 쓴 함흥냉면과 볶은 메밀을 첨가한 메밀냉면, 해초를 넣어 녹색빛깔이 도는 클로렐라 냉면 등 세 가지를 만든다. 이씨는 세 종류의 냉면을 보여주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칡냉면은 100% 칡즙을 쓰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칡 원액을 넣은 면의 색은 흐린 밤색"이라며 "보세요, 메밀냉면 색깔이 흔히 알고 있는 칡냉면이랑 같지 않냐"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