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사료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왜?

도심 길고양이와 공존하기, 그 방법을 고민할 때입니다

등록 2012.06.27 10:30수정 2012.06.2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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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갑자기 고양이가 튀어나왔다. "어! 야옹이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고양이는 도로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 고양이는 차에 머리를 부딪혔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쳤다.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길 한복판으로 뛰어들어갔다. 피를 흘리며 몸부림치는 고양이를 그냥 잡을 수가 없어 일단 모든 차를 도로에 세우고 마침 함께 있던 친구에게 신문지나 쌀 것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친구가 차에서 담요를 꺼내왔다. 담요에 고양이를 싸고 병원으로 달렸다. 달리는 차 안에서 눈물이 흘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얼마나 아팠을까. 병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그리고 병원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 의사선생님이 청진기를 가지고 고양이의 생존여부를 확인했다. 맥박이 거의 사라져가는 상태였고 고양이는 바로 사망했다.

길고양이 로드킬. 간혹 도로에서 고양이 사체를 발견하곤 한다. 누군가의 집에서 유기된 고양이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이다. 일명 길고양이. 도심 지역의 로드킬 대상은 주로 길고양이다. 길고양이는 도심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지역의 고양이 개체수에 따라 영역의 크기가 변한다. 영역이 넓은 경우에는 길을 건너는 빈도수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발정이 나거나 먹이 때문에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도심의 음식물쓰레기를 중심으로 고양이들이 영역을 공유하는데, 새로운 개체가 나타나면 먹이경쟁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 보통 3개월이면 독립하는데 새끼고양이들은 차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판단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5-6월경과 11-12월경에 많은 새끼고양이들이 로드킬을 당한다고 한다.

어릴 때 동네에도 늘 고양이가 있었다. 집집마다 담을 넘어가며 돌아다녀도 보통은 쥐를 잡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도시가 발달하고 인구가 급증하면서 어느 사이 길에 사는 고양이들도 많아졌다. 사람들이 사는 영역에 음식물이 있고 길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번식을 인위적으로 제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집 주변에 고양이들이 많아지자 도시 생태계 내에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고양이를 쫒으려는 사람들과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만나 갈등을 겪게 된 것이다. 2006년 한강맨션 사건이 대표적이다.(관련기사 : <지하실에 갇힌 고양이를 살려주세요>).

'TNR',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을 위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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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지 주택가 주변에서 살고 있는 길고양이. ⓒ 김보경



길고양이의 개체수를 조절할 필요성은 이전부터 있었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는 늘어나는 고양이 개체수 조절을 위해 TNR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TNR이란 T(Trap 포획)-N(Neuter중성화: 불임수술)-R(Return 방사)를 뜻하는 국제적인 공용어다.

TNR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실시된 가장 이유는 고양이들을 무분별하게 포획해 안락사시키는 정책의 인도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실지로 포획과 안락사 정책이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일정한 지역에서 포획해 잡아간다고 해도 주변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이 유입되기 때문에(진공현상) 실질적인 개체수가 조절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길고양이를 유기동물로 보는 경우 신고 후 포획하여 보호소로 가게 되지만 길고양이의 경우 이미 야생화된 고양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보호기간 중 입양을 가기란 불가능하며, 보호소 케이지 안에서 공포와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죽게 된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 중에는 추운 곳에서 떠는 길고양이들을 집으로 들이려는 충동을 가지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길고양이들이 스트레스와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동물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돌봐주고 싶은 것은 훌륭한 본능이나 길고양이들의 경우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TNR을 실시하되, 그 전후 과정에서 길고양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TNR은 발정시 내는 소음과 개체수 증가에 따른 싸움, 그리고 개체수 증가에 따른 민원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포획해 방사하면 동물 복지적 측면에서 심각한 위해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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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수를 조절하고 적절하게 영양을 공급하며 돌봐준다면 길고양이도 도심에서 단순히 밉상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 ⓒ 김보경


길고양이들이 많다고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실지로 길고양이들의 숫자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길고양이는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멀리까지 이동하며, 음식물 쓰레기 주변에 영역이 중첩되는 경우도 있고, 수컷은 번식을 위해 다른 고양이 영역에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같은 고양이가 여러 곳에서 보일 수도 있고 실제보다 많은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다.

길고양이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기도 하는데 일반인의 경우 5~6마리만 모여 있어도 위협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민원인의 주장만으로 TNR을 실시하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불임수술 후 먹이와 물이 급여가 되지 않는 경우 굶어죽는 수도 있다. 따라서 TNR을 실시할 때는 반드시 민원이 발생되는 지역에서만, 지역에서 길고양이를 잘 알고 방사 후 돌봐줄 수 있는 인원이 충분한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종종 일부 지역에서 쥐약을 놓거나, 불법적으로 포획하여 죽이는 경우가 있다는 제보 역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길고양이를 죽이거나 학대하는 경우, 각 구청에서는 동물보호법에 의거하여 고발조치 당한다는 것을 홍보해야 한다.

포획과 방사 과정에서는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너무 어린 고양이를 잡아 수술하는 것은 위험하며 임신한 고양이를 포획해 공포심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사산하기도 하므로 주의가 필요하고, 포획 후나 보호 시에는 천으로 가려주어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방사 역시 중요하다. 길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지역이 중요하다. 반드시 포획한 곳에 방사해야 한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

길고양이는 창고, 지하실, 지붕 및 차고 등과 같은 장소에서 주로 서식을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기반으로 생활한다. 그러나 한국의 음식물 쓰레기는 주로 짜고 매운 것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고양이의 수명을 단축하는 역할을 한다. 길고양이 자묘의 경우 출산-6주까지 50% 이상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게 된다고 한다. 고양이의 자연수명은 15년 이상이나 길고양이의 수명은 2-3년을 넘기지 못한다.

길고양이들의 건강과 복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활동이 필요한 것은 이런 지점이다.지역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을 일명 '캣맘'이라고 부른다. 어떤 공적 절차를 통해 명칭이나 역할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들 중에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정도이거나, 길고양이를 돌보면서 중성화수술을 시키고 치료하는 역할도 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다음은 강남 지역에서 캣맘으로 활동하는 이굴희씨와 한 인터뷰 내용이다.

- 이 일을 시작하신 계기는?

"저희 집에 업둥이가 있거든요. 태어난 지 보름 만에 어미와 떨어져서 빗 속에서 혼자 울고 있던 작은 노랑고양이를 데려와 가족이 되었어요. 그러다 저희 아파트 단지에 누군가 길냥이 밥을 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분이 놓아두신 사료 그릇에 조금씩 보탬이 되어 드렸어요. '아, 이런 방법이 있구나' 하고 알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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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굴희씨가 돌봐주고 있는 '못난씨' 이름과 다르게 늠름한 자태. ⓒ 이굴희


- 사료 값 등 비용이 많이 들어갈텐데요.
"고급 사료는 못 해주고 대용량 사료로 한 달에 두세 번 사고 있어요. 사실 사료보다 간식과 아플 때 처방약 값이 더 무서워요. 몇 개월에 한 번씩 불쑥 나타나는 녀석들은 대체로 배고픔에 지쳐서 혹은 싸움에 져서 아픈 몸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든든한 간식이 필요하구요, 또 약을 먹일 때도 간식에 타서 먹여야 겨우 먹일 수 있기 때문에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공존을 위한 대화와 화해가 필요하다

-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고 돌보는 과정에서 갈등이 있었나요? 혹은 사람들의 잘못된 편견에 대해 속상했던 일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전 아직 그렇게 큰 봉변을 당했다거나 한 적이 없어요. 다만 오히려 제 주변 사람들이 하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걱정과 핀잔이 섞인 말들이 상처가 돼요.

제가 가장 아끼는 길냥이 '못난씨'의 밥을 챙겨주는 곳은 횟집골목의 뒷골목으로 그곳엔 빌라가 있어요. 횟집 사장님들이야 쥐도 잡아주는 고마운 존재라며 싱싱한 회나 장어도 챙겨주시는 등 굉장히 호의적이시지만, 아무래도 빌라의 주민들은 한밤중의 고양이 울음소리가 귀엽게 들리시진 않을거예요. 저도 이해하고요.

그 빌라의 한 아주머님은 순찰중인 경찰분에게 '여기 고양이들 너무 많아 다 잡아갔으면 좋겠어'라고 하실 정도로 고양이들에게 반감을 갖고 계셨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열심히 빗자루 들고 청소도 했어요.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어느 날 그 아주머님과 딱 마주친 거예요. 사실 화내시면 걱정했는데 아주머님께서 '아유~ 이 동네는 어떻게 쥐××보다 고양이가 더 많아'라면서 살짝 농담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웃으며 '밤에 많이 시끄러우시죠? 요즘 얘들이 영역다툼 할 때라. 죄송해요'라고 하자 '아유 몰라 암튼 깨끗하게만 치워놔' 하시더라구요. '아, 인정받았구나' 하는 마음에 살짝 뭉클해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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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만에 다친 채로 나타난 새디. 이굴희씨가 돌봐주고 있는 고양이. ⓒ 이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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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후 건강이 회복된 새디. ⓒ 이굴희


- TNR정책에서 캣맘의 참여가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할까요?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앞으로 개선방향이 있다면?
"사실 전 과정에서 개입의 필요성이 느껴지지만 특히 포획과정과 방사과정에서는 반드시 캣맘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분별한 포획과 무리한 방사를 막기 위해서요. 어떤 식의 기준도 없이 아직 자라지도 않거나 이미 중성화가 되었거나 하는 고양이들을 마구 잡아들일 수도 있는 일이고, 또 수술 직후 봉합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사되기라도 한다면 굉장히 끔찍한 일이죠.

저는 정부가 위탁업체에 맡기고 손놓고 계시면 안 된다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어요. 또 고양이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도 TNR 시행 방법과 절차 등을 알려서 이런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구요"

고양이,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동물

- 사람들에게 길고양이에 대해 알리고 싶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고양이는 굉장히 깨끗한 동물입니다. 길에서 살다보니 더러워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끝없이 그루밍을 하고 햇빛을 쬐며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유지하고 싶어해요. 그런 고양이들에게는 더러운 환경, 더러운 자신의 몸이 굉장히 큰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또 얼마 전에 SBS에서 고양이 기생충 기사가 나간 적이 있는데요. 고양이를 통해서 감염된다는 톡소 플라즈마는 고양이로부터 감염되기보다는 덜 익은 고기, 생선 또는 채소 뿌리에 묻은 흙 등을 통해 감염될 확률이 훨씬 크다고 해요.

가끔 길을 가다 길고양이에게 공격당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를 보고 '하악'질을 하며 아주 무섭게 공격 자세를 취했다는 건데요. 하악질은 고양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방어기술이랍니다. '난 네가 무서워. 다가오지 마!'라고 하는 거죠.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공격하려는 게 아니예요."

- 캣맘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요?
"혼자 하는 것보다 모임을 통해 접해 보시면 큰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아마 '단기간만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하셔도 장기, 그리고 정기적으로 활동하시게 될거예요.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 하시면 안 되구요.

또 중요한 점은 주변 분들과의 마찰은 되도록 피해주세요. 상대가 화내고 윽박지르면 웃으면서 넘기세요. 대화로 잘 풀어주세요. 우리가 같이 상대하면 그 피해는 고양이들에게 돌아가요. 그리고 이건 좀 말씀드리기 슬픈 얘기지만, 되도록 아무도 모르게 밥을 챙겨주세요."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오늘도 어디선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마다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을 것이다. 싫든 좋든 우리와 도심에 함께 공존하고 있는 길고양이. 공존을 위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다친 길고양이를 데리고 병원까지 동행해주시고 사체처리 등을 도와주신 동물학대방지연합의 한정아님, 사진을 제공해주신 책공장 더불어의 김보경님, 인터뷰를 해주시고 사진도 제공해주신 이굴희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자료는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의 홈페이지를 참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친 길고양이를 데리고 병원까지 동행해주시고 사체처리 등을 도와주신 동물학대방지연합의 한정아님, 사진을 제공해주신 책공장 더불어의 김보경님, 인터뷰를 해주시고 사진도 제공해주신 이굴희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자료는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의 홈페이지를 참고했습니다.
#길고양이 #동물복지 #TN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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