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작가들이 모였다

[리뷰] 에드거 앨런 포, 마이클 코넬리 <더 레이븐>

등록 2012.07.12 14:18수정 2012.07.1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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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이븐> 겉표지 ⓒ 랜덤하우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었던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특유의 난해한 문체, 대화는 별로 없고 묘사와 서술이 많은 특징 때문인지 당시에 그렇게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그의 작품들 중 <모르그 가의 살인> <어셔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이 세 편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모르그 가의 살인>은 최초의 추리소설이라는 점과 범인의 의외성 때문에, <어셔 가의 몰락>은 작품 전체의 기괴한 분위기와 마지막에 등장하는 피투성이 유령 때문에 기억하고 있다.

<검은 고양이>는 작품을 읽으면서 벽을 뚫고 나오는 음산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당장이라도 들릴 것 같은 공포를 느꼈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나는 오히려 포의 삶 그 자체에 더욱 호기심을 가졌던 것 같다. 빼어난 단편과 시를 남겼지만 그걸로 경제적인 이익은 거의 얻지 못했고,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다가 젊은 나이에 거리에서 객사한 작가. 그는 작품 속에서 자신이 창조한 그 어떤 인물보다도 극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

포를 위한 생일파티

'해리보슈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미스터리 작가 마이클 코넬리가 엮은 책 <더 레이븐>은 바로 에드거 앨런 포를 위한 선집이다. 2009년 포 탄생 200주년을 맞아서 영미권의 대표적인 미스터리 작가들이 포를 위한 생일파티를 열기로 마음을 모았다. 생일파티의 형식은 단순하면서도 독특하다.


미스터리 작가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포에 대한 기억과 애정을 담은 에세이를 한 편씩 써서 책을 엮어내는 것이다. 작가들의 이름도 쟁쟁하다. 마이클 코넬리를 비롯해서 '링컨 라임 시리즈'의 제프리 디버, '여형사 제인 리졸리 시리즈'의 테스 게리첸,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까지 포함되어 있다.

편집을 담당한 마이클 코넬리는 포의 대표작들을 책에 싣고, 각 작품 한 편마다 그 뒤에 현대 작가들의 에세이가 붙는 형식을 택했다. 이렇게 탄생한 선집이 바로 <더 레이븐>이다. 선집 안에는 포의 작품 16편과 포를 기리는 에세이 20편이 담겨 있다.

에세이를 쓴 작가들은 글 속에서 포의 작품을 분석하거나 그가 후대에 미친 영향등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비평가의 몫이다. 이 에세이들은 직간접적으로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길고도 짧은 상념이다.

마이클 코넬리는 포의 단편을 읽으면서 미국 전역을 누비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 <시인>을 구상했다. 로라 리프먼은 포를 위한 행사에 참가하며 '누구나 포의 일부를 원한다'라고 자신의 수첩에 긁적거린다. 넬슨 드밀은 11살 때 포의 영화를 보고난 밤에 혼자서 미친듯이 공동묘지를 가로질러 달려서 집에 도착한다.

작가들에게 드리운 포의 그림자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어둠이 있다. 어둠의 결과도 있다. 밝은 대낮에 타인과 어울릴 때는 어둠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어둠은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 그때는 그 결과들이 우리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포의 이야기는 바로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죽음의 대가이자 공포의 제조자이며 너무도 섬세한 작가였던 포. 그는 그 어떤 괴물도 우리 내부의 악마에 비하면 두려움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진작에 깨달은 인물이다.

포의 작품 속에서는 어릿광대의 모자와 축제의 종소리마저도 악몽의 재료가 된다.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을 내딛으며 어둡고 축축한 지하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

포는 살아 생전에 얼마나 많은 생일파티를 열어보았을지 궁금하다. 그가 죽은 이후에 그에 대한 온전한 평가가 이루어진 것처럼, 태어난지 200년이 지나서야 가장 기억에 남을 생일파티가 열린 것이다. 포가 지금 어디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생일파티를 본다면 분명 흐뭇해하지 않을까. <더 레이븐>은 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마이클 코넬리 엮음 / 조영학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덧붙이는 글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마이클 코넬리 엮음 / 조영학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더 레이븐 :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마이클 코넬리 엮음, 조영학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 2012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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