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에 언제 또 오겠습니까? 잘 해 드려야죠"

[김이경의 좌충우돌 북한 경험담] 북에서 '수상한 남조선 사람'으로 신고된 선생님

등록 2012.07.18 17:23수정 2012.07.1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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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간, 대북지원사업과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하면서 수없이 방문해서 만났던 북한과 북한 사람들.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고, 다르면서도 같은 것 같은 남과 북의 만남에서 발생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해 볼 지점들을 하나씩 기사로 전합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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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방문한 선생님이 규칙을 어기고 혼자서 평양거리를 산책하다. ⓒ 서영준 화백


평양에 간 남한 사람들은 대개 자유로운 평양 관광을 기대하지만, 미리 협의가 끝나지 않은 곳은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곤 한다. 그분은 속으로는 화가 나지만, '북한이 자유세계가 아니라 어쩔 수 없겠지!'라고 체념하며 크게 투덜거리는 편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오면 그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유로운 관광은커녕 호텔 안에서마저 자유롭지 않다. 북한 대표단이 투숙하는 호텔 각 층마다 아주 세심하게(?) 경호하는 검은 양복 차림의 아저씨들 덕분에 관계 기관의 허가증이 없으면, 설령 그들을 잘 아는 남측 사람이 와도 인사를 나누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대개 고개를 끄덕여 준다.

북한에서 자유관광이 안 되지만... 남한도 '피차일반'

이와 관련한 안타까운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우리는 북한에서 유명한 식당에 갈 때마다 남쪽에서는 어느 식당에 무슨 요리가 유명하며 남쪽에 오면 꼭 대접하겠다고 손가락 걸고 약속한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그분들이 막상 서울에 왔을 때, 자유롭게 유명 음식점을 가기는커녕 유명요리를 포장하여 숙소로 들고 들어가 대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호텔 측에서 "호텔 식당의 음식을 팔아야 한다"며 반입을 금하기 때문이다. 명분은 외부 반입음식을 먹고 탈이 나면 그 책임을 누가 지느냐는 것이지만, 외부로 나갈 수 없는 북측 대표단에게 호텔 음식만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남북 관계가 아직 상호 간의 긴장을 넘어, 양측 민간인이 자유관광을 다닐 정도까지 와있지는 않은데도, 외국에서 자유로운 관광을 통상적으로 경험한 남쪽 사람들에게 평양에서는 자유관광이 안 된다는 것을 말로만이 아닌 실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물론 북측 안내원들은 정말 어렵게 평양에 온 사람들에게 한 군데라도 더 참관시켜 주고자 노력하기는 한다. 하지만 평양은 북한 사람들이 '사상의 고향'이라고 부르는 도시인만큼 그들이 자랑하고 싶은 참관지는 남쪽 사람들이 선호하는 장소와는 정서상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매번 방북할 때마다, 사전에 실무협의를 하면서 참관지와 일정을 조율하는데 이 과정을 잘 모르는 남쪽 사람들은 가보고 싶은 곳을 다 갈 수 없다는 사실에 낙담하여 '참관 코스가 너무 일방적이지 않은가' 하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예도 종종 있다. 오늘은 이런 불만을 품었던,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로 남북 민간 교류의 한 단면을 소개해볼 생각이다.

북한 안내원, 3시간 지각한 이유는?

2007년 여름 무렵이었던가? 우리 일행은 오전 9시쯤 협력사업장을 가기 위해 호텔 로비에 모였는데, 오전 11시가 넘도록 북의 안내원들이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하다 못해 짜증으로 뒤범벅이되어 있었다.

12시가 다 되어가자 북한 안내원들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나타나 왜 늦게 나왔는지 설명조차 없이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가시지요"라고 하니 얼마나 황당한가? 그래도 일정을 소화해야겠기에 우리는 적당히 항의하며 그날 일정을 마쳤다. 그런데 저녁 술자리에서 안내원들이 나에게만 그냥 알고 있으라며 오전에 자신들이 늦은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내용인즉슨 우리의 일행 중 고등학교 선생님이 새벽녘에 혼자서 평양역까지 산책하러 나갔던 것이다. 그 선생님은 평소 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통일의 중요성을 가르쳐 왔던 분이었고, 평양을 처음 방문하게 되어 아주 들뜰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많이 둘러보고 남쪽에 돌아가면 전해줄 북한 사람의 이야기와 평양 거리 이야기를 듬뿍 안고 가려 하는데 혼자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니 답답해했었다.

그 분이 혼자서 평양역까지 걸어간 것도 문제였지만, 길거리에서 평양 시민을 만날 때마다 자기는 남쪽에서 왔다며 적극적인 행동을 하셨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말을 걸었던 사람 중에는 같이 대화를 나누어 준 평양시민도 있었지만, 선생님을 '수상한 남조선 사람'으로 여기고 당국에 신고한 시민도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그런 줄도 모르고 산책을 마치고 여유롭게 호텔 로비로 돌아와 우리와 함께 북측 안내원을 기다리며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들의 늦장 행동을 함께 투덜거렸다. 사실 그 시간에 북측 안내원들은 그 선생이 벌려놓은 사고를 수습하느라 어디론가 불려 가고 비지땀을 흘리며 뛰어다녀야 했다.

그때 북한의 안내원들이 수습해야 했던 문제는 남쪽 사람의 개별적인 평양 시내 산책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경위를 설명하는 것과 그 선생이 '수상한 남조선 사람'이 아니라는 신변확인에 대한 것이었다. 남한에서도 간첩신고가 들어왔을 경우를 상상해보면 짐작이 가듯이 북에서도 수상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해결하기가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안내원은 내게 그 이야기를 귀띔해주며 이야기를 전하는 의도가 우리 일행의 행동을 비난하려 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다만 이런 종류의 사고가 자주 일어나게 되면 우리 단체 대표단 전체에 대해 인상이 나빠질 수 있으므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하였다.

안내원 이야기로는 혼자 산책하러 나갔던 선생님에게도 주의하라고 경고했는데, 선생님은 오히려 본인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통일인사의 고민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며 안내원들에게 화를 내셨다고 한다. 본인이 북에 와서 움직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통일을 앞당기고자 하는 큰 뜻을 위해서인데, "왜 제재 하냐"고 말이다. 덕분에 안내원들은 말을 꺼내고 밑천도 못 건졌다고 하니 대표단을 인솔하고 온 내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함이 컸다.  

묘향산 나무마다 '통일을 기원하는 노랑리본' 건다고 고집하는 그 

그 선생님은 다음날 묘향산에 가서도 특이한 요구를 했다. '통일을 기원하는 노랑리본'을 묘향산 나무마다 걸고 오겠다고 학생들과 약속하고 왔단다. 그러니 묘향산 숲 속에 자신이 서울에서 가지고 온 노랑리본 수백 개를 걸 수 있도록 편의를 봐 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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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에서 미리 합의되지 않은 '노란리본'을 걸자는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 서영준 화백


내가 보기엔 어이없는 발상이었다. 묘향산에 가더라도 숲 속을 마구 돌아다닐 수도 없으려니와 그곳의 주민은 노랑리본을 봐도 무슨 뜻인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남쪽 사람들이야 영화나 연극, 소설 등에서 노란 리본 이야기를 한번쯤은 접해봤을 터라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듯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의 표현으로 짐작하겠지만, 북한의 주민이 그것을 보고 얼마나 공감할지는 모를 일이다 싶었다.

결국, 안내원들은 그 선생님을 제재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행동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 같긴 했지만, 긍정성을 중심으로 대하는 북한 특유의 관점 때문인지 그 선생의 마음을 더 이해하고 수용하려 했던 것 같다. 더욱이 고집을 굽히지 않는 선생을 말려보았자 더 큰 언쟁이 날 것 같아서인지 의외로 아주 선선히 그렇게 하시라고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만약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안내원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노랑리본을 걸고 싶은 마음을 어찌 말릴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학생들과의 약속이라는데... 하는 수 없지요. 그런데 총장 선생 걱정 마십시오. 조금 있다가 향산 주민들이 보기 전에 우리 동무들이 다 뗄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께는 너무 많이는 곤란하니, 조금만 매달라고 해두었습니다. 남측 분들이 참 대단한 고집이긴 한데, 우리는 통일을 생각하는 선생의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 분이 언제 또 공화국에 오겠습니까. 잘 해드려야지요."

웃어야 할지, 어이없어해야 할지, 선생님께 화를 내야 할지, 북 안내원들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이것이 2007년 무렵 남북 민간교류의 풍경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블로그(http://blog.krhana.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이경 기자는 겨레하나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블로그(http://blog.krhana.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이경 기자는 겨레하나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평양 #묘향산 #민간교류 #북한자유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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