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세 여자가 눈물 흘린 그 날

[取중眞담] 이석기·김재연 제명안 부결된 날, 김제남·김미희·심상정은 왜 울었을까

등록 2012.07.29 17:15수정 2012.07.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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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7월 26일, 통합진보당은 세 의원의 눈물로 얼룩졌다.

만감이 교차한 한 의원은 울음을 참다못해 엎드려 펑펑 울었다. 한 의원은 기자들 앞에서 말을 잇던 중 기쁨에 차 눈물을 훔쳤다. 또 다른 의원은 타인의 사연에 가슴이 아파 울먹거렸다.

이들은 바로 김제남·김미희 의원, 심상정 원내대표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제명안이 부결돼 당이 격랑에 휩싸이게 된 이 날, 세 의원은 각기 다른 뜻이 담긴 눈물을 흘린 것이다.

[김제남의 눈물] '캐스팅 보트'로 압박 받아...부결 선언 직후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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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안 표결에서 기권표를 던진 김제남 의원이 27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는 비난을 모면하려 하고 있다. ⓒ 남소연


"찬성 6표, 무효 1표로 제명안은 부결됐습니다."

심상정 원내대표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제남 의원은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고 한다.

자신이 던진 무효표 하나가 당 전체를 흔들 결과를 낳을 것을 그도 알았을 터다. 제명 의총이 열리기 전 주말, 김 의원은 구당권파로부터 100여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캐스팅 보트'로 떠오른 자신에게 쏠린 관심에 많은 부담감을 느껴왔다는 그다.


의총 자리에 함께했던 신당권파 측 한 의원은 "본인의 결정으로 모두 아연실색하고 있는데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엄중한 일임을 모르고 했단 말이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 다시 관심은 김제남 의원에게 쏠렸다. 왜, 그런 결정을 했냐는 것이다.

다음 날 입장 발표를 위해 기자들 앞에 선 그는 "중단 없는 혁신을 위해 무효표를 던졌다"고 설명했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제명하면 두 세력 간 화합이 불가능하고 두 세력이 화합하지 못하면 당을 혁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원석 대변인은 "김 의원은 마치 자신이 혁신종결자처럼 얘기하는데, 그야말로 혁신에 '종결'을 지은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지난 의총에서 제명안 의결을 합의한 김 의원이 이를 배신했다는 것이 신당권파의 주장이다.

김 의원의 '해명'에도 신당권파 측은 입을 모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화합과 단결을 위해 결단했다는 김 의원이지만 그의 결정 이후 당은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져 봉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신당권파 측 한 관계자는 "김제남 의원이 앞으로 의정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김미희의 눈물] 제명안 부결에 벅찬 마음 숨기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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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이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이석기, 김재연 의원 제명안을 처리하기 위한 의원총회를 마친 뒤 의원 1/2 이상 찬성을 얻지 못해 제명안이 부결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울먹이고 있다. ⓒ 권우성


"과반 수 이상의 당원이 제명에 극렬히 반대하지 않았나. 그래서 부결된 거라 생각....."

의총 직후, 구당권파인 김미희 의원은 자진해서 기자들 앞에 섰다. 두 의원 제명 건이 부결됐음을 브리핑하기 위해서다. 부결 소식을 전하는 김 의원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눈물이 맺혔다. 잔뜩 울음이 배인 음성으로 그는 "통합과 혁신의 길로 가겠다"고 강조했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아야 할만큼 눈물은 넘쳤다. 김 의원은 "중앙위의 결정은 자진 사퇴였지 정치적 살인인 제명 결정이 아니었다"라며 "그러니 제명을 거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면서도 김 의원의 표정은 잔뜩 상기돼 있었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회생이 그에게도 기쁜 소식이었을 터다. 보좌관들이 김 의원 뒤에 서서 "그만 하고 가시자"며 김 의원을 끌어도 김 의원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는 "(두 의원에 대한) 새누리당의 자격심사는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마친 후에야 자리를 떴다.

[심상정의 눈물] 삼성 백혈병 피해자 증언대회 참석..."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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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단, 반올림, 발암물질 없는 사회만들기 국민행동 주최로 '삼성 백혈병·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린 가운데, 심상정 의원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거론하던 중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 권우성


'철의 여인'이라고 불리는 그다. 웬만해선 눈물 비치지 않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올해만 벌써 두번째 눈물을 보였다. 중앙위 폭력사태 후,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나던 지난 5월이 첫번째다. 제명안이 부결된 날이 두번째다.

지난 26일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를 개최한 심 원내대표는 피해자 가족들 앞에 서 "세계 초일류 기업에 다닌다는 벅찬 기쁨과 자부심은 오간데 없이 꿈과 청춘, 사랑하는 딸·아들, 아내·남편을 빼앗기고 절망의 나날 보내고 계셨던 가족분들께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한 숨을 크게 쉰 후 다시 입을 뗀 그는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며 겨우 말을 마칠 수 있었다.

심 원내대표는 증언대회에서 울먹거렸지만, 제명안 부결 결과에는 울지 않았다. "의총을 마치고는 너무나 아득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회상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눈물을 보이지는 않은 것.

앞서 흘린 눈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였을까. 지난 5월 14일 공동대표직에 물러나던 그 때 심 원내대표는 "우리가 갖고 있던 낡은 것, 왜곡된 것, 부끄러운 것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국민들께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은 새로운 진보정치를 위한 소중한 기반이 될 것"이라며 "진보정치에 기대는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과 서민들의 바람을 두고 우리는 실패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다,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하며 눈물 지은 바 있다.

그러나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이행되지 못했다. 심 원내대표는 "어제 의총은 당의 새로운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며 "통합진보당이 혁신의 길을 계속 갈 수 있을까, 숙고하겠다"고 말했다.

세 의원의 각기 다른 의미의 눈물이 뒤섞였던 지난 26일 이후, 당 대표조차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할 정도로 당은 표류하고 있다. 모두 '생각 중'이지만 뾰족하게 떠오르는 방책이 없다. 현재로서는 분당, 탈당, 소멸, 봉합 등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통합진보당은, 세 여성의 눈물에 담긴 마음 중 어떤 마음을 담아 나아가야 할까. 한 눈물에서는 '개인'이, 다른 눈물에서는 '조직'이, 또 다른 눈물에서는 '타인'이 배어 있었다. '진보'를 표방하는 통합진보당에 어떤 마음을 담을지, 그 결정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김제남 #심상정 #이석기 김재연 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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