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소녀와 너무 닮은 혜진이,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전한 마을이 필요하다

등록 2012.07.31 17:25수정 2012.07.3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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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2일 실종 일주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경남 통영 한아름양의 살해 용의자 김모(44)씨가 통영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영원히 11살이 될 수 없었던 통영의 아름이는 혜진(가명)이와 너무나 닮았다.

아름이는 새엄마가 저녁 6시 전에는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단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동네 당산나무 아래서 혼자 놀았다. 집에 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밥 해 주는 사람이 없어 남의 집 냉장고를 뒤지고 마당에 열린 토마토를 따 먹고 가기도 했단다.

내가 전에 살던 동네 놀이터엔 늘 혜진이가 있었다. 우리 큰 아이와 같은 나이었으니 당시 10살이었다. 혜진이는 새엄마와 새엄마가 데리고 온 언니 두 명, 김밥집이나 중국집 배달일을 하는 아빠와 살았다. 혜진이 새엄마는 음식점에서 일하는 분이어서 밤늦게 들어왔고 새 언니들은 혜진이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밥 챙겨주면 밥알 하나까지 쓸어먹던 혜진이

놀이터 '붙박이' 혜진이는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저녁식사 시간에도 미끄럼틀 위에 혼자 앉아 사탕이나 젤리를 먹었다. 혜진이의 주머니 속에는 문방구에서 파는 알록달록한 사탕이 항상 들어있어 아이들에게 작은 선심을 쓰기도 했다. 아빠가 배고프면 사먹으라고 조금씩 주는 돈으로 산 끼닛거리였다.

"밥은 안 먹니"라고 물으면 혜진이는 "가끔 먹어요"라고 대답했다. 아빠가 일하는 김밥집이나 중국집에 가서 먹는 것이었는데 그나마 주인의 눈치 때문에 아빠가 오지 말라고 했단다. 혜진이는 가끔 불러 밥을 챙겨주면 밥알 하나까지 쓸어먹고 "잘 먹었습니다"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아름이의 경우, 동네 사람들이 그 아이가 처한 상황을 몰라서 그런 운명에 휩쓸린 것이 아니었다. 도심보다 복잡하지 않은 시골이었고 웬만한 사람들은 아름이가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혜진이도 마찬가지다. 가겟집 주인이나 놀이터에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엄마들은 대부분 혜진이의 상황을 어림짐작했고 몇몇 어른은 가끔 아이의 끼니를 챙기기도 했고 "그러고 다니면 위험하다"고 충고를 해주었다. 

혜진이는 언제라도 광풍에 휩쓸릴 수 있는 위태로운 깃털처럼 보였다. 남자아이처럼 짧게 깎은 머리와 지저분한 옷차림, 땟국물이 흐르는 얼굴은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아이는 또래 아이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했고, 놀 친구가 없는 아이는 언젠가부터 동네를 배회하는 중학생 오빠들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어둠이 깔리는 저녁에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돗자리를 펴고 혼자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를 채근해 집에 들여보내기도 했다. 혜진이를 걱정하는 동네 어른들은 있었지만 부모조차 돌보지 않는 어린 여자아이를 책임지고 보호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혜진이 같은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모두 아름이의 잔혹한 운명을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끔찍한 시도를 하고 싶을 때 혜진이는 그들의 손쉬운 대상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혜진이를 보호할 방법이 있을까? 방치도 학대라는 서양식 사고방식을 대입해 생계유지가 목적인 그 부모를 비난하는 것으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

동네가 함께 돌보는 9살 수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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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마을에 세워진 소통이 있어 행복한 집 '소행주' ⓒ 한진숙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성미산마을이라면 혜진이는 조금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 하나의 온전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아이가 귀한 만큼 다른 집 아이도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돌봐주어야 행복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돌봄두레를 활성화시키려고 애쓰는 동네다. 민간단체와 생협, 마을커뮤니티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가 받기만 하고, 만들어놓은 편의에 무임승차를 한다 해도 크게 노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산다.

이들 중 누군가는 보호자 없이 떠도는 아이를 눈여겨 볼 것이다. 두레생협이 꾸려가고 있는 마을위원회에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아이를 돌봐줄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마을에서 어렵다면 길 건너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아이의 정보를 알려줄 수도 있겠다. 아이를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 부모를 흉보는 것으로 어른으로서의 죄책감을 덜어보려는 소극적인 단계를 넘어서는 일들이 그곳에서는 가능하다. 혼자 떠맡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런 사람들 중 한 명이 우리집 아래층에 산다. 수요일마다 그 집에 9살 난 수연이(가명)가 온다. 지역에 있는 기관에 등록된 아이인데 아버지가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고 돌볼 사람이 없단다. 수연이는 말이 별로 없고 눈에 띄는 행동도 하지 않아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다만 먹을 것 앞에서는 감탄할 만큼 지독한 식탐을 보인다. 한 번도 웃는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수연이는 수요일마다 그 집 아이들과 놀고 밥을 먹는다. 수연이는 최소한 길거리에서 헤매는 상황은 벗어났다.

통영의 아름이는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 그 아이가 끔찍한 상황에 처하고서야 사람들은 겨우 '미리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 하며 머리를 흔들었을 뿐이다. 다행히 우리 마을 수연이는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아름이처럼 내팽개치진 않을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 혜진이가 살을 데일 듯한 뙤약볕을 어디서 피하고 있는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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