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이 두고 중국행... 이렇게 설레다니

[공정여행- 여름 만주를 가다 ①] 공부하고 떠나는 여행 '괜찮네'

등록 2012.08.13 18:38수정 2012.08.1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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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챙기면 좋을 걸 꼭 여행가기 전날 밤에 부산을 떤다. 여권은 깊숙이 넣었고 비가 올지 모르니 우비도 챙겨 가자. 약은 뭘 갖고 가야 하지? 집에 있는 소화제랑 감기약, 1회용 밴드만 챙기자. 기차를 오래 탄다고 했는데 멀미약도 필요 할까. 모기향은 부피가 있으니까 모기 패치를 사가자. 손목시계가 없네. 아들 걸 갖고 가야겠다. 밤 늦도록 여행 가방을 싸면서도 졸리지가 않다. 내일은 내 생애 두 번째 해외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첫 번째 해외여행은 신혼여행이었다. 처음부터 여행사 패키지 신혼여행상품엔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해외여행은 흔치 않은 기회인데 여행사가 짜놓은 일정대로 끌려 다니다 오기가 싫었다. 또 커다란 펜션에 박혀 휴양만 취하기엔 난 너무 혈기 왕성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도 보고 싶었다. 사실 돈이 없기도 했다.


신랑은 무조건 따를 테니 가고 싶은 데를 정하라고 했다. 베트남에 끌렸다. 무수히 인터넷을 헤맨 끝에 현지 교포 여행사 홈페이지로 숙소 등을 예약하고 여행경로도 짰다. 초보 해외여행객은 무식하기에 용감했다. 여행자보험도 안 들었다. 필요한지 몰랐다. 여행사 홈페이지에 돈을 입금했다는 글만 남기고 확인 전화도 깜박했다. 베트남 호치민 공항에 자정이 넘어 도착했다. 여행사에서 픽업을 안 나왔으면 어쩌려고 그리 용감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사람을 너무 믿나 보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6시간이나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봤던 베트남의 시골마을은 잊히지 않는다. 고깃배를 챙기며 하루를 준비하던 어촌마을의 아침도 평화로웠다. 고단하지만 찬란한 일상이 그곳에도 있었다. 그 빛나는 일상과 마주친 것만으로도 우리의 신혼여행은 반짝였다. 다시 해외여행을 간다면 그때처럼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볼 수 있는 여행이길 희망했다.

신혼여행 이후 6년 만에 가는 해외여행,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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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유목민들의 이동식 전통가옥인 게르. ⓒ 신정임


드디어 기회가 왔다. 신혼여행 이후 6년 만이다. 지난 5월 혼자서 남도를 여행한 후 썼던 여행기가 국제민주연대와 <오마이뉴스>가 함께한 '기사 쓰고 공정여행 가자' 공모에 당첨돼 여행비의 일부를 지원받게 됐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다가온 기회는 잡아야 하는 법.

기회는 의지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의지만 있으면 다른 조건들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여행을 가자니 다섯 살 아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 문제는 국제민주연대의 여름 공정여행 프로그램 중 남편의 여름휴가 일정과 겹치는 여름만주 여행을 택함으로써 해결했다. 이번에도 아들은 남편이 책임져주기로 했다. 지난 남도 여행기에 '아내가 여행갈 수 있게 도와준 남편이 멋진 분'이라는 댓글이 달렸던데 이번에 아예 '국민남편'으로 등극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본인은 그런 치하가 좀 찔리겠지만 휴가를 아내에게 반납해준 남편이 고맙긴 하다.


두 번째 해외여행 준비에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이미 여행프로그램이 짜여 있으니 난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이게 바로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리는 경우인가 보다. 인생의 보너스로 받은 여행이니 편하게 다녀오자고 마음을 내려놓는다. 근데 국제민주연대도 나만큼이나 사람을 믿나 보다. 예약금 입금 후 나머지 비용을 언제까지 보내라는 연락이 없다. 다들 알아서 보내나 싶어 나도 알아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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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여행은 여행자가 사용하는 경비를 현지 주민들에게 환원시키는 여행이다. 만주 여행 중 몽골 유목민들의 이동식 전통가옥인 게르에 묵으면서 몽골인들의 전통 환영의식을 받았다. ⓒ 신정임


그래도 여행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했다. 여행 전에 사전모임도 갖고 공정여행과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여행 간다고 강의라니 생소했지만 막상 가보니 유익했다. 낯설던 공정여행이란 용어에도 익숙해졌다. 여행자가 사용하는 경비를 현지 주민들에게 환원하는 여행이 바로 공정여행이란다.

생각해보니 대개의 여행은 항공사, 여행사, 다국적 호텔체인들, 외지 자본으로 운영하는 큰 식당들만 돈을 벌게 하지 현지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건 별로 없어 보인다. 호텔 벨보이나 룸메이드와 같은 저임금 일자리도 한정돼 있으니.

그래서 공정여행은 가능한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고 비행기보다는 버스나 기차로 이동한다고 한다. 여행지를 찬찬히 둘러보기 위해 걷기도 많이 걷는다고. 딱 내가 찾던 여행이다. 여행지의 삶을 챙겨보고, 여행지의 삶을 지켜내는 여행이어서 마음에 든다.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 프로그램이 주로 중국 소수민족이 사는 곳이어서 소수민족 정책에 대한 이야기들도 전해준다. 중국의 한족 위주 정치가 소수민족을 점점 더 소수화하고 있는 현실을 깨닫는다.

예습도 마쳤으니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여행가방도 든든하게 멨다. 얼마 만에 가보는 인천공항이냐. 가슴이 벅찰 따름이다. 아들도 어린이집에서 수영장 간다고 신났다. 혼자만 들뜨면 많이 미안했을 텐데 아들 역시 흥이 나 있어서 다행이다. '결이야, 다음번엔 꼭 함께 여행가자.' 속으로 약속한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앞으로 4박 5일간 우리가 같은 일행임을 표시하는 작업들로 분주하다. 여행 가방에 여행사 스티커를 붙이고 이름표를 목에 건다. 단체여행비자여서 번호도 부여된다. 나는 18명의 일행 중 18번이다. 최정규 작가가 우리 18명을 이끄는 가이드다. 이름표를 걸고 일렬로 줄을 서니 꼭 어렸을 적 소풍날 같다.

오늘 소풍은 좀 멀리 간다. 비행기는 하얼빈 공항으로 향할 것이다. 한국은 아침부터 뜨거웠다. 며칠째 계속되는 폭염에 언론은 가마솥 더위라고 난리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가르며 비행기가 솟아올랐다. 북쪽에 있는 하얼빈의 햇살은 한국보다 약하겠지. 시원한 바람을 기대하면서 구름 위 풍경을 만끽한다.

덧붙이는 글 | * 지난 7월 27일부터 4박 5일간 만주지역으로 공정여행을 떠났던 여행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27일부터 4박 5일간 만주지역으로 공정여행을 떠났던 여행기입니다.
#공정여행 #국제민주연대 #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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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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