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언젠가는 자기 본색을 드러낸다

박근혜 후보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와 관련하여

등록 2012.08.21 15:40수정 2012.08.2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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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에 참배했다. 그동안 '사실상의 대통령 후보'의 지위를 누려오던 박근혜 후보가 공식 후보로 '추대'된 이후의 첫 행보인 만큼, 이번 봉하마을 방문이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참여정부 당시에는 박근혜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과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웠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할 것이다. 각종 보도들은 이 사실을 전하며 박근혜 후보의 행보가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이자, 국민통합을 위한 행보라고 평가했다. 얼핏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박근혜 후보의 아버지, 박정희가 일으킨 5.16군사반란 당시의 시점으로 한 번 돌아가 보자.

1961년 5월 16일 새벽을 틈타 군사반란이 성공하자, 가장 당혹감에 빠진 이들은 당시 장면 정권 아래에서 민주민족(통일)운동을 활발하게 하던 학생, 청년 및 진보적 인사들이었다. 아직 군사반란 주도세력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정보가 없는 속에서 이들은 곧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에 돌입했다. 그런데 이 시기 진보세력 내부에선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사반란 세력에 막연한 기대감을 가진 이들이 꽤 있었다.

잘 알다시피 장준하 선생은 쿠데타 직후 군사반란 주도세력에 기대를 표명하는 글을 <사상계>에 게재하였고, 당시 혁신계(진보세력)를 대변하던 <민족일보>역시 이와 비슷한 입장을 보인 바 있다. 또 진보세력 가운데 일부는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이런 속에서 당시 진보인사 혹은 지식인 가운데 5.16군사반란의 본질을 간파하고 앞으로 닥쳐올 사태를 정확하게 예견한 이는 함석헌 선생과 '민족경제론'으로 유명한 박현채 선생 정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함석헌 선생은<사상계>에 쓴 '5.16을 어떻게 볼까?'에서 5.16이 4월혁명과는 정반대의 속성을 지녔음을 명쾌히 밝힌 뒤 "민중을 내놓고 꾸미는 혁명은 참 혁명이 아니다. 반드시 어느 때에 가서는 민중과 버그러지는 날이 오고야 만다. 즉 다시 말하면, 지배자로서의 본색을 드러내고야 만다. 그리고 오래 속였으면 속였을수록 그 죄는 크고 그 해는 깊다"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박현채 선생은 "(박정희 같이) 한 번 변절한 놈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며 동지들에게 '튈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이와 관련해선, 김기선,「시대의 불꽃-한국 민중운동사의 거대한 뿌리, 박현채 2」,『희망세상』2006년 3월 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참조)


그리고 실제 이후 사태는 함석헌과 박현채 선생의 예상대로 전개됐다. 군사반란 주도세력은 혁신계(당시는 진보진영을 이렇게 불렀다)를 향해 탄압의 칼을 빼들었고, 혁신세력의 연합조직이던 민족자주통일협의회의 맴버들 중 피신하지 않은 이들은 곧 잡혀갔다. 그리고 <민족일보>의 조용수 사장 역시 '빨갱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1961년 12월, 사형에 처해졌다.

그러면 함석헌과 박현채는 다른 진보인사들과 달리 어떻게 군사반란 세력의 본질과 이후 행보를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이 두 분은 군사반란 세력이 얼마 안 있어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 본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박정희가 지닌 '군인'으로서의, 그리고 '지배자'로서의 본색을 간파했고, 박현채 선생은 박정희가 지닌 '변절자'로서의 본색을 간파한 것이다. 실제 박정희는 자신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이후 18년 간 무지막지한 독재 권력을 휘둘렀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후보의 봉하마을 방문이 과연 진정성 있는 행보인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문다. 봉하마을 방문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가 박근혜 후보의 본색과 전혀 관련성이 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당시 이른바 4대 개혁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것이 바로 과거사 청산, 사학법 개정, 국보법 폐지, 언론관련법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이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래서 과거사법의 경우만 보더라도 '누더기'가 되어 국회를 통과했고, 결국 해방 이후 60년만의 과거사 청산 시도는 정권이 바뀌면서 '미완'에 그쳤다. 이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한 가치와 박근혜 후보의 가치는 전혀 결이 다르다.

그런데 그런 박근혜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물론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묘역 참배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어디까지나 '보여주기'이자 '선거 전략'에 불과한 행보를 '이명박과의 차별화', '국민통합을 위한 행보' 등으로 수식하는 언론이다. 과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한다고 해서 박근혜 후보의 본색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은 단지 표를 의식해 잠깐의 시간 동안 자신의 본색을 감춘 것일 뿐이다.

박근혜 후보의 언어세계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단 한 번도 타자화 된 적이 없다. 그녀가 존경하는 인물도 여태껏 자신의 아버지였다. 박근혜 후보에게 있어 '차별화 대상'은 이명박이 아닌 근원적으로 박정희가 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그녀에게 5.16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도 역사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 점을 명쾌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는 이상 박근혜 후보가 지닌 본색은 과거와 동일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노무현 #함석헌 #박현채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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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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