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전 살림집에 세면대가... 양반의 집이냐고요?

[김수종의 대전 여행기 3] 소제동 철도관사

등록 2012.09.12 14:13수정 2012.09.1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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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경관이 멋진 등록문화재 제19호인 '구 산업은행 대전지점'을 둘러본 우리들은 인근의 중앙시장으로 이동하여 먹자골목을 잠시 걸었다. 돼지머리와 순대를 파는 가게, 시계 등을 수리하는 노점의 모습, 구제 옷을 파는 가게 등을 재미나게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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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앙시장 먹자골목이 좋다 ⓒ 김수종


대전의 중심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보다는 오래된 미래를 다시 보는 느낌이 좋았다. 특히 다양한 옛날식 순대를 발견하고는 잠시 쉬면서 한 점 먹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마음만 남겨두고 몸은 대전역 동쪽의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재무과 보급창고'를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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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철도창고 1950년대에 지어진 창고 ⓒ 김수종


지난 2005년 등록문화재 제168호로 지정된 이 창고는 원래 4동이 있었는데, 작년에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3동을 헐어버린 관계로 현재는 1동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한다. 너무도 안타까운 순간이다.

폭이 6~7미터 정도 되고 길이가 25미터는 되어 보이는 100평이 조금 넘는 크기의 창고는 한국전쟁 직후인 지난 1956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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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철도 창고 목조창고다 ⓒ 김수종


이 창고는 철도 교통의 중심인 대전의 역사를 잘 말해주는 건물로 철도청의 필요 물자를 이동 보관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현재 외부도 특별히 정비되어 있지 않고, 내부도 텅 비어있는 것으로 보아 사용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 창고는 전후에 지어지기는 했지만 일본과 미국의 기술을 적용한 목조 건물이다. 현재 한국에는 근대 목조 건축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희소가치가 높으며 1950년대 창고 건축물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자료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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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철도 창고 지붕 트러스 정돈되어 있지 않아서 강하다 ⓒ 김수종


정면에 문과 창이 각3개 뒤편에 창이 6개, 좌우측에 창이 각 1개씩 나 있는 건물로 특히 상부와 외부 하중을 분산하고 힘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정비되지 않은(?) 목재 트러스 지붕구조를 가지고 있어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았고 사용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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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창고 내부 ⓒ 김수종


건물 내부 중간에 기둥을 설치하지 않아 다양한 공간 활용성이 높아 넓고 크게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보였다. 아울러 외부 마감은 목재 널판을 사용하여 통풍성이 뛰어나다. 아쉽게도 지붕은 석면이 많은 슬레이트로 되어있어 환경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였다.


목조 건물이라 수리하여 다른 용도로 사용이 쉽지 않아 보였다. 지역의 건축가 및 예술가들이 이번 겨울에 노래와 음악 공연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운치는 있을 것 같아 보였지만 공연장으로 적당해 보이지는 않았다.

손방의 어설픈 판단이기는 하지만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면 석면이 많은 지붕의 슬레이트를 걷어내고, 무겁지 않은 불투명 내연 플라스틱으로 지붕을 교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보였다.

물론 내벽을 따라 철근 골조를 사방에 설치하여 안전성을 더 보강한 다음, 대전의 철도 역사를 알리는 철도박물관 같은 것으로 예스러운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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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동 철도관사 1920년 초반부터 1939년까지 건축되었다. ⓒ 김수종


창고를 둘러본 다음, 우리들은 이웃한 '소제동 철도관사촌'을 둘러보기 위해 이동했다. 소제동은 원래 우암 송시열의 고택은 물론 기국정 정자, 솔랑산 등과 소제호수가 있던 작은 마을이었다. 풍광이 좋아 중국 소주의 호수들에 버금간다고 하여 소제호(蘇堤湖)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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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동 철도관사 외부에 호수가 보인다. ⓒ 김수종


소제동의 모습이 크게 바뀐 것은 지난 1907년 일본이 이곳 솔랑산 중턱에 태신궁이라는 일본신사를 건립하고부터다. 경부선 철도가 생긴 이후 대전에 터를 잡은 일본인들은 대전역 주변과 지금의 인동과 대동부근에 집단거주를 시작했다.

이들의 거주가 시작되면서 경관이 좋고 일본들이 많이 사는 소제동에 일본신사가 들어온 것이다. 이후 1914년 호남선 철도가 개통하면서 대전은 급성장하기 시작했고 철도원은 물론 기술자들의 거주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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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동 철도관사 사람이 살고 있어 전체적으로 조망이 힘들다 ⓒ 김수종


이에 대전역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 동쪽에 일본의 철도관사촌이 형성되었다. 현재 남북에 있었던 철도관사는 거의 사라지고, 동쪽에 위치한 소제동 관사촌이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남아있다.

소제동의 철도관사촌은 1920년 초반에 형성이 되기 시작했고, 인구가 늘고 철도원이 많아지면서 소제호를 매립하여 그 위에 1939년에 다시 증설되어 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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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관사 42호 지역 문화공간으로 쓰인다 ⓒ 김수종


대전의 역사와 함께 관사촌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해방이 되어 도시가 확장되어 가면서 대전의 중심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소제동을 비롯한 원도심은 상대적인 쇠락의 길을 걸었다. 현재 소제동 지역은 대전의 대표적인 슬럼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그러나 소제동은 단순한 슬럼지역이 아니라 철도시대 대전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문화지구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대전 근대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적산가옥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엄연히 근대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는 근대적 경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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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관사 다락방 ⓒ 김수종


우리들은 길을 따라 40~50채 정도 남아 있는 철도관사촌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담장이 높아 내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6~7급 정도 되는 하급 철도원들의 집 치고는 규모는 크게 보였다.

이곳의 관사들은 두 개의 집을 좌우가 대칭이 되도록 요즘으로 보자면 연립이나 땅콩주택처럼 짓고 중간에 벽을 두고 같이 쓰는 형태로 건축되었다. 각각의 집이 대지는 100평 정도 되고 건물은 각각 25평 정도로 방3개와 부엌, 작은 거실과 화장실이 내부에 설치되어 있는 혁신적인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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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관사 집 내부 ⓒ 김수종


당시로는 화장실과 세면장이 건물 내부에 있던 것은 조선에서는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집의 크기와 구조는 직급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로 6~7급의 하급철도원용 관사로 마당이 넓은 것이 좋았다.

대부분의 집 마당에는 언제 심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감나무, 향나무, 석류나무 등이 많았다. 아울러 집 내부의 다락과 외부의 창고 건물이 독특하게 보였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도 많았지만, 현재는 비어 있는 곳도 몇 군데 있었다.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많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관사촌 북쪽에 위치한 42호 관사를 대전시와 목원대학이 공동으로 만든 '대전 근대 아카이브즈 포럼'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2012 지역문화컨설팅 사업'의 일환으로 임대하여 사용하는 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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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관사 지붕의 기와가 생생하다 ⓒ 김수종


이곳은 '대전 근대유산을 활용한 지역 공동체 문화 활성화'사업으로 연구소와 기념관, 모임 장소, 사진관 등의 용도로 쓰고 있어 누구나 방문하면 자세하게 볼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었다.

건물의 내부는 일부 수리했고 난방시설도 다시 하기도 했지만, 예전의 모습을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고 있었다. 난 다락과 부엌은 물론 화장실이 마음에 들어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벽도 두껍고 지붕의 기와도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지금도 약간의 수리만 더 한다면, 충분히 살 수 있는 공간이고, 멋스러움이 남아있는 터전이었다. 곳곳에 나무도 많고 도로에 차도 많지 않아서 조용히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에게는 정말 멋진 집이나 작업실이 될 것 같아보였다.

해방이 되고 1970년대 민간에게 불하된 철도관사촌은 지금은 그냥 일반인들이 사는 주택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전시와 문화인들의 노력으로 적어도 10여 채 이상은 역사문화적인 가치와 의미를 각인하는 마음으로 수리를 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노력이 절실해 보였다.

몇 년 전 문경시의 은성광업소 자리에 지어진 석탄박물관에서 갔을 때, 안내원이 광업소관사를 철거한 것이 가장 아쉽다는 말을 하길래, 그때는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 와서 보니 철도관사를 철거하거나 재개발하는 것 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활용하는 방안을 조속히 구상하는 것이 절실해 보였다.

교통 물류도시 대전의 근대건축물 답사를 짧은 시간동안 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시간이 되면 충남도청과 도지사공관 등 아직도 멋스럽게 남아있다는 대전의 근대건축물을 한 번 더 보기 위해 조만간 대전 여행을 다시 떠나고 싶어졌다.
#대전시 #철도창고 #철도관사 #소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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