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목동 중학생 자살사건' 기각, "이유는 말 못해"

기각사유 공개 거부... 결정 4일 전 교총 회장 전화 영향 미쳤나

등록 2012.09.19 09:28수정 2012.09.19 09:55
0
원고료로 응원
a

<오마이뉴스>가 민주통합당 소속 김관영 의원실에서 입수한 '사건조사결과보고서'의 일부 내용. 서울 목동의 한 중학교 A 학생의 자살사건과 관련해 학교 교장, 교감, 일부 교사를 징계조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 이주영


서울 목동의 한 중학교에 다니던 A 학생이 투신자살했다. 2011년 11월 18일에 벌어진 일이다. 학생의 부모는 교장·교감·일부 교사들을 상대로 인권위에 '학교 및 교사의 학생 보호 의무 소홀 등에 의한 인권침해' 진정을 넣었다. A학생이 집단따돌림을 당하는데도 학교가 방관했고, 학생들에게 '자살 학생이 이상하다'는 식의 부정적 진술서를 받으며 인권을 침해했다는 게 부모 측의 주장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침해구제 제2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지난 5월 7일, 학교의 집단따돌림 방관 혐의는 '각하', 인권침해 혐의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집단따돌림 방관 혐의는 경찰에서 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각하했다. 학교 측의 인권침해 혐의는 진술서를 얻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없었다는 판단 하에 기각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4월 인권위 실무진의 최초 조사에서는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권고조치 판단이 내려졌다. <오마이뉴스>가 민주통합당 소속 김관영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사건조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담당 조사관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으므로 피진정인에게 징계조치를 내릴 것을  권고했다. 보고서는 "교장·교감은 징계, 교사들은 경고조치 할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한 사건을 두고 실무자와 담당 위원 간의 판단이 엇갈린 것이다. 사건을 조사하는 실무자와 최종 결정을 내리는 위원들 간의 의견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진정 사건과 관련해서는 최초 조사와 최종 의결의 판단 내용이 다른 게 석연치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담당 소위원회의 최종 의결을 나흘 앞두고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과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아래 교총) 회장이 이 진정사건에 대해 전화통화를 했고, 또 하나는 진정인인 부모에게조차 기각 사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병철 위원장, 안건 최종결정 4일 앞두고 교총 회장과 통화

a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7월 1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 ⓒ 남소연


안양옥 교총 회장은 A 학생 안건과 관련한 최종 의결을 앞둔 5월 3일 현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회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약간의 미흡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교원에게 과도한 사회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기 때문에 인권위에서 논의해달라고 이야기했다"며 당시 전화를 건 이유를 밝혔다.


인권위에 조사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는지 여부를 묻자, 안 회장은 "교원을 대표해서 요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뭐가 잘못됐냐"며 "전화를 걸어 교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점을 강력하게 말했다. 이후 상황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화를 받았던 현 위원장은 "전화통화 사실과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비서실을 통해 확인해봐야 안다"고 말했다. 비서실 관계자는 "지난 3일 안 회장에게 전화 온 사실이 기록돼 있다"며 "현 위원장은 당시 전화를 못 받았지만 예의상 안 회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안 회장은 단순한 민원인이 아니고 피진정인인 교원들과 이해관계가 얽힌 단체의 대표다. 그런 안 회장이 독립 준사법기구의 수장인 인권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과 관련해 요청을 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실제로 교총이 발행하는 <한국교육신문>은 이 진정사건에 대한 각하·기각결정이 내려진 뒤인 5월 11일자에 "해당 학교 교장은 '학교가 어려운 상황에서 안 회장이 나서준 데 크게 감동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진정인, 기각사유 서면으로 요구... 인권위 "밝힐 수 없다"

a

서울 목동 한 중학교에 다니는 A 학생 자살 사건과 관련해 지난 5월 25일 인권위가 피해 학생 부모에게 보낸 진정사건 처리결과 통지서. "인권침해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지만,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 이주영


인권위 측은 최종 기각한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진정인이 서면을 통한 구체적 기각 사유 공개를 요구했는데도 이를 거부했다. 단순히 최종의결 결과만을 밝힌 통지서도 사건을 기각한 지 약 3주가 지나서야 보냈다. 인권위 내부 규정상 기각은 의결 이후 지체 없이 통지해야 한다.

인권위 관계자는 "기각된 사건은 결정문이 없으므로 서면을 통해 자세한 기각사유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보고서와 최종의결의 판단 내용이 다른 이유와 관련해서도 "안건이 통과됐다면 위원회 의견으로 말하겠지만, 이건 폐기된 안이므로 밝힐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인권위 측 설명에 인권위 상임위원 출신의 한 인사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사회적 논란이 있을 만한 판결에 대해서는 위원들이 합의해 기각사유를 밝히기도 한다"며 "특히 진정인이 원하면 결정문이 없다 하더라도 기각사유를 서면으로 줄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김관영 의원실 관계자는 "독립성을 지켜야할 인권위가 안건 의결을 앞두고 이해관계가 얽힌 단체장과 전화통화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교총 회장의 전화통화가 기각 결정에 영향을 준 게 아니라면 당시 통화내용을 상세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인권위 결정이 합당하다면 보고서와 최종 소위원회의 판단 내용이 다른 이유를 밝히지 못할 리 없다"며 "최종 기각 사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병철 #인권위 #교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5. 5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