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

우리네 서민들 대부분의 삶터, 골목환경의 개선이 시급하다

등록 2012.09.21 13:34수정 2012.09.22 09:1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서울의 주택가의 흔한 풍경 대부분의 주택가의 외관이 거의 동일하다. 개성있는 골목이 많이 생겨야 도시미관이 개선될 것이다. ⓒ 한경희


우리네 골목에는 개성이 없다


언젠가부터 우리네의 골목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발전의 뒤켠에서 뒤처지고 버려져 정비되지 않은 우리의 골목들은 조국의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망쳐져 온 역사의 산 증인이 아닌가. 산이 많은 서울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그저 깎아내리고 파헤쳐져 기형적 건물들만 즐비한 우리의 골목들.

근대화의 시기에 서울은 인구의 무한팽창을 겪으며 이제는 과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다. 그 과정에서 갈 곳 없는 서민들은 도심에서 점점 밀려나 깎아내린 듯한 산 등에 쪽방촌을 일구며 살아왔다. 아직도 서울 곳곳에 산재한 이른바 '달동네'가 그 낭만적인 이름에 걸맞는 곳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a

골목에 색을 부여하고 있는 빗자루 색이 부족한 우리네 골목에 눈에 띄는 선명한 색을 자랑한다. ⓒ 한경희


골목에서 만나는 반가운 색

대체로 우중충하여 색깔이 부족한 우리의 골목엔 이렇게 의외의 물건이 색을 부여한다. 골목에 널부러져 있던 여러가지 지저분한 것들을 한군데 모아놓은, 이제 막 자신의 일을 완수하고 한숨 쉬고있는 빗자루의 색이 선명하다. 덕분에 한눈에도 깨끗해진 계단이며 작은 골목이 눈에 보이는데, 수거된 지저분한 녀석들은 빗자루의 감시망을 뚫고 호시탐탐 바람을 타고 다시 날아갈 준비를 하는 듯하다.

a

아름다운 손수레 산토리니섬에도 어울릴 법한 손수레 ⓒ 한경희


이것은 또 무슨 횡재란 말인가. 골목에서 때때로 이런 의외의 물건들을 만날 때마다 기쁘기 짝이 없는데 이 손수레는 특히 그 색깔과 모양새에 있어 거의 독보적이랄 수 있겠다. 저 흰색으로 아름답게 엮인 그물의 모양새며 초록색의 손잡이와 옆선, 그리고 손수레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선명한 하늘색의 몸체, 게다가 압권인 것은 스페어타이어를 갖췄다는 것이다!


오른쪽 타이어에 묶여있는 도난방지용 체인은 지나가던 행인의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게 할만한 '잇 아이템'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스의 산토리니섬에 당장 가져다 놓아도 썩 어울림직한 이 손수레는 필시 멋진 심미안을 가진 주인의 것이 틀림없다.

a

오래된 아파트의 반사경 오고가는 사람들과 차들을 무심히 지켜보고 있다. ⓒ 한경희


오래된 아파트로 들어서는 길목에 설치해놓은 반사경이 광각으로 동네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아파트의 연륜에 걸맞게 이 거울도 벗겨지고 때가 타 군데군데 잘 보이지 않는 곳도 있지만, 오가는 차량들이 반대편을 잘 볼 수 있게 해 주고 그저 오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범죄의 예방차원에서 모든 것을 감시하고 기록하는 CCTV에 비해 구시대의 유물이지만, 여러 번의 태풍에도 끄떡없이 건재한 그 모습이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감을 갖게 한다.

a

얽히고 얽힌 선들 합선이나 누전 등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게 하는 모양새다. ⓒ 한경희


도시는 선이다.....?

도시는 '선'이다. 전기선과 전화선 등이 얽혀서 어지럽기 그지없는데 저 상태에서는 어떠한 작업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발생 시 우리의 한국전력을 비롯한 여러 유관기관 종사자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해결을 해 낼 것이다. 합선도 되지 않고 환하게 빛나고 있는 저 늠름한 가로등이 그들의 유능함을 대변해 주고 있지 않은가!

a

전선들 얽히고 얽힌 모양새가 어지럽다. ⓒ 한경희


도시는 '선'이다(?!). 아니, 적어도 '골목은 '선'이다'. 비록 원래의 의미에서 조금 비껴갈지라도.

a

골목길의 흔한 풍경. 부동산의 침체로 저런 모습이 더욱 흔해졌다. ⓒ 한경희


우리의 골목, 정서를 잠식하는 주변환경

골목 곳곳에는 분양광고 전단지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 덕지덕지 붙이고 간 것들을 떼러다니는 아주머니들도 볼 수 있었는데, 저런 전봇대들의 모습은 그대로 서울골목들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듯했다.

서울인심이 각박하다고 일부에서 이야기한다면 저 골목들에 녹지가 너무나 부족한 탓이라 하고 싶다. 가끔 보이는 다세대 주택의 창문에 걸어놓은 화분들이 골목의 녹지지분을 거의 차지하고 있는 터, 그 누가 각박한 인심을 탓할 수 있겠는가. 

하루벌어 하루먹고 살기 힘들었던 우리네 살림살이가 채 펴기도 전에 부동산투기광풍으로 오도가도 못한 처지가 되고, 납작하던 집들은 3~4층의 다세대로 변하여 늘어난 가구수에 살기만 더 팍팍해진 서울이 아니던가. 오며가며 꽃 한 포기, 나무 한그루라도 볼 수 있다면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에 곧바로 대답은 못 할지언정 마음 한구석 정서라도 올곧이 가지고 갈 수 있을 터인데.

a

밤이 되다 밤이 되니 교회첨탑의 십자가가 빛난다. 유독 서울의 골목에는 십자가가 많다. ⓒ 한경희


이제는 골목이다, 골목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

여러 동네의 골목을 지나다 보니 밤이 다 되었다. 아파트가 도시인들의 최적의 주거지로 떠오른 지도 오래 전이지만 서민들의 태반이 아직도 골목길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다. 그러나 개선되지 않은 도로며 주변환경이 위험천만한 광경을 연출할 때가 많다. 인도와 차도가 분리돼 있지 않은 곳이 많아 자칫 어린아이들이 교통사고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실제로 사진을 찍고 골목길을 나서다 조그만 골목 사거리에서 한 아주머니가 차에 가볍게 치이는 것을 보기도 했다. 바로 차에 태워져 병원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지만 위험천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가 빠른 시일내에 이주를 할 수 있거나 동네의  재개발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당장은 녹지를 최대한 확보하는 일과 최소한의 인도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유모차를 몰고 가는 사람들과 무거운 가방을 메고 요리조리 차를 피해 다니는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길을 갈 수 있게 말이다. 도로를 정비하여 일방통행길을 만드는 것도 한 방안이다. 적어도 차들이 좁은 길에서 얽히고 설키는 일은 조금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 이리저리 숨으며 놀았던 골목은 이제 모양은 그대로인채로 명목상의 주차대수만 갖춘 다세대, 혹은 원룸촌으로 변모하여 양적으로 더 이상 팽창할래야 할 수도 없는 정도가 되었다. 그에 따라 도시서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져 가고 있는데, 녹지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골목 곳곳의 벽면에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도 좋을 터이다.

골목은 사람사는 이야기가 넘치는 곳이다. 이제는 골목을 살려야 한다.
#골목 #리어카 #전선 #다세대주택 #골목환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서양에선 없어서 못 먹는 한국 간식, 바로 이것
  2. 2 모임서 눈총 받던 우리 부부, 요즘엔 '인싸' 됐습니다
  3. 3 카페 문 닫는 이상순, 언론도 외면한 제주도 '연세'의 실체
  4. 4 생생하게 부활한 노무현의 진면모...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5. 5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