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풀릴 때까지 확인하는 '집요한 버럭남'

[찜! e시민기자] 인권운동가 고상만 시민기자

등록 2012.09.27 14:02수정 2013.01.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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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편집자말]
시작부터 반전이었다. '찜! e시민기자'가 지난 2월 15일 처음 시작됐으니 이제 6개월이 고작 남짓한 시간이 흘렀지만, 고상만 기자를 진즉 '찜'하지 않았다니. 지난 2월 15일 이후 고상만 기자가 올린 기사는 모두 13건. 전부 오름에 올랐다. 내용은 고 김훈 중위의 의문사와 고 장준하 의문사 문제가 대부분.


심지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타 언론에 찜을 빼앗기기까지 했다. 지난 20일 한겨레 신문에 '김용환은 거짓말쟁이…정보기관은 숨은 자료 내놔야'라는 제목으로 큼지막하게 인터뷰가 났던 것. 처음 이번 주 '찜! e시민기자'로 선정되었음을 알렸을 때 "영광이다"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그때 "웬 뒷북이냐?"라고 말해주지 않아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며 인터뷰를 시작할까 한다.

☞ 고상만 시민기자가 쓴 기사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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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만 시민기자. ⓒ 고상만


- 기자님와 첫 통화가 생각난다. 첫인상은 '집요한 버럭남'이었다. ^^ 원래 성격이 그런가.
"원래 그런 사람이 어디 있나. 다 세상이 이렇게 만든 거다. ^^ 학생운동을 거쳐 인권운동에 발을 처음 디딘 곳이 92년 '유서대필 조작 강기훈 무죄석방 공대위'였다. 이후 유가협, 전국연합 인권위, 천주교 인권위, 반부패 국민연대 등을 거쳐 '국방부 김훈중위 사인 규명 특별 합동조사단'과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및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 등으로 일했다. 이런 조사 관련 업무를 하면서 납득이 되지 않는 어떤 일을 만나면 "왜?"라는 의문이 풀릴 때까지 확인하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에서도 이제 이런 오해는 다 풀렸으리라 믿는다. 나 원래 부드러운 사람이다. 그것도 너~무. 알지 않나." 

- 그런데 어쩌면 기자님의 그런 성격이 고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국가폭력에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 또 학교 문제 등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인권운동을 하면서 생긴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들어 준다'. 누군가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권 운동이라고 저는 생각한다. 그렇게 듣다가 거들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는 거다. 두 번째는 '기억한다'. 억울한 그분들의 사연을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지금은 시원하게 이기지 못하지만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둔다고 믿는다."

- <오마이뉴스>에 기사는 어떻게 쓰게 된 건가.
"첫 기사가 2003년 1월 창원 두산중공업 배달호 노조원 분신 사망사건을 다룬 '백만 평 자본 위에 뿌려진 한 노동자의 절규'다. 당시 민주노동당 인권위원장이었던 이덕우 변호사의 요청으로 진상조사를 갔는데 그때 창원에서 우연히 <오마이뉴스> 윤성효 상근기자를 만났다. 그래서 저도 진상조사 결과를 <오마이뉴스>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글쓰기는 2010년 7월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업무 종료한 후, 서거하신 노무현 대통령님께 친일 조사관으로서 활동한 업무를 보고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청와대는 이 보고서를 택배로 보내랍니다'라는 글을 올려 지금에 이르렀다."


- 좋은기사 원고료도 많이 받은 걸로 아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다면?
"대부분 기사가 각별하지 않을 수 없지만 아무래도 지난해 쓴 기사 '전두환의 평생 동지였던 아버지, 사랑합니다'가 가장 특별하다. 2002년 9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사실 제 머릿속에서 아버지는 늘 아픈 기억으로 맴돌았는데 그 기억을 풀어쓰면서 참 많이 울었다. 80매 원고를 약 4시간여에 걸쳐 쓰면서 터진 울음이 끝까지 멈추지 않아 새벽길을 혼자 걷기도 했다. 지금도 그 기사를 읽으면 저도 모르게 주루룩 눈물이 흐른다. 올해는 아버지가 제 곁을 떠난 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그때 다 못 쓴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남기려고 생각 중이다." 

- 기사 한 편을 쓰는데 공을 많이 들이는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역사적 문제를 다루는 일이라 더 신중할 것 같은데, 기사 작성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당연히 공을 많이 들인다. 최소한 서너 번씩 재검토하면서 어색하거나 근거가 좀 더 필요한 것은 더 보강하면서. 그래야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독자에게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팩트'다. 아들을 잃고 슬픔에 빠진 군 의문사 가족 사연이나 장준하 선생 사건 등 실재하는 사건을 다루는 기사다 보니 정확한 사실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많이 하게 되어 좋은 것 같다. 어려운 점은 자료를 쉽게 못 찾아 하루종일 자료만 찾다가 정작 기사는 한 줄도 못 쓰는 일이 허다하다는 거."

- 원래 눈물이 많나. 라디오 방송하다가 울컥하기도 하던데...
"눈물이 많지는 않다. 그런데 인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타깝지 않은 일이 없고 눈물 나지 않는 일이 없더라. 특히 파주 1사단에서 의문사한 오동길 이병 어머니 등 군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으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러면서 도대체 아무 죄도 없는 우리 국민이 왜 이렇게 불쌍하게 살아가야 하나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 미치도록 슬프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저도 모르게 군 의문사 관련 방송 인터뷰를 하다가 울고, 또 어디 가서 강연을 하다가도 울고 그렇게 되더라.

저는 적어도 징병 제도가 존재하는 한 군에서 발생한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의문사를 민관이 조사해서 그 유족에게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 한 여자가 자신의 모든 속을 파내어 키운 그 자식을 국방부가 마치 소모품 다루듯 쓰다가 내치고 다시 부족한 숫자만큼 또 뽑아 쓰면 된다는 식의 반 인권적 행태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 최근 '어머니의 눈물 외면한 박근혜의 '두 얼굴''이라는 기사를 썼다. 최근 박근혜 대선 후보가 과거사 사과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기자회견을 본 느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박근혜 후보는 자신의 주관적인 고통만 바라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참담하게 죽게 된 경위에 대해서만 뼈에 사무치도록 한이 맺혀 있는 반면, 인혁당이라든가 장준하 선생 유족 등 다른 이들의 고통과 상처는 별 감정 없이 '물끄러미'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더라. 이 같은 자세가 과연 대한민국의 최고 공직 후보자로서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래서 과거사 발언 사과 역시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요즘 초등학생도 말로만 하는 사과는 진짜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과한다면 그에 따른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조치가 뒤따라야 하는데 박근혜 후보는 장준하 재조사 등의 합당한 조치 없이 '이제 과거사는 끝났고 미래를 이야기하자'고 한 후 부산으로 내려가 '말춤'을 췄다. 관련 기사를 보고 더욱 참담한 심정이었다."

- 기사 반응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포털에 보면, 군 의문사 문제에 관한 글에는 '우꼴' 군사 마니아들의 댓글도 많이 달리는 것 같더라. 댓글은 챙겨보는 편인가? 대응은 어떻게 하나? 
"댓글 당연히 본다. 아주 꼼꼼히. 그러다가 중요하거나 의미가 있거나 또는 아주 심한 욕설이 있으면 그것도 아내에게 보여준다. 공감해 주거나 또는 같이 욕해 주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물론 나도 사람이라 욕하는 댓글을 보면 화가 난다. 특히 기사를 읽지도 않고 그저 욕하고자 하는 일념의 글을 보면 더욱 그렇다. 다만 몇몇 악플러에게 부탁하건대 욕은 하시되 최소한 기사는 다 읽고 '정성껏' 욕하길 부탁한다."


제 힘의 원천은 저보다 더 휼륭한 아내를 만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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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고상만씨 ⓒ 고상만

- '장준하 죽음 알린 '괴전화', 중정은 알고 있었다'라는 기사에는 개인적인 고민도 담겨있더라. 이걸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그런 개인적인. 다른 기사 같은 경우도 그런 고민이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주변에서 뜯어말리지 않나? 특히 가족들이.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 어떤 이유인가.


"판문점 김훈 중위도 그렇고 그동안 인권운동 과정에서 접한 모든 사건들이 사실 쉽지 않은 내적 갈등의 대상이었다. 이들 사건을 결국 파고 들어가 보면 대척 지점에 늘 누군가가 서 있기 때문이다. 장준하 선생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씨를 15번 이상 만났고 이 과정에서 그와 밥도 같이 먹고 사는 이야기도 더러 나눴다. 그러다가 조사의 접점에 가면 서로가 서로를 미치도록 증오하는 눈빛으로 마주하기도 했다. 그래서 생긴 묘한 애증이랄까 하는 마음도 있는데, 더러 어떤 분은 이 분을 너무 심하게 대한 것이 아니냐며 항의하는 분도 있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김용환씨를 공박하는 것이 유쾌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장준하 선생 사건의 재조사를 거부하는 명분으로 사실과 많이 다른 이 분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묻으려 하니 나로서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불이익, 저런 우려가 없을 수 없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제가 가장 신뢰하는 아내에게 상의했더니 대답이 간결하더라. "지금까지 그런 것처럼 옳다면 양심이 울리는 대로 행동하라고." 그러면서 "과거 재야에서 인권운동 할 때는 어디로 잡혀가서 아무도 모르게 죽여 버릴까 봐 걱정했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은 없으니 자기는 괜찮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힘의 원천이고 저보다 더 휼륭한 아내를 만난 것이 늘 자랑스럽다. ^^ "

- 아쉽지만 마지막 질문이다. 우려했던 대로 많이 길어졌지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롤 모델은 '에밀 졸라'다. 에밀 졸라의 그것처럼 세상의 거짓을 용기 있게 고발하여 진실을 찾고 싶다. 그런데 그런 에밀 졸라도 자신의 고발을 실어줄 잡지가 없었다면 아마 '드레퓌스의 진실'은 밝혀지지 못했을 거다. 나는 <오마이뉴스>가 건강한 고발 창구로서 계속해서 기능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세상에 참 많은 억울한 이들이 찾아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 다시 이를 세상에 전해주는 참 좋은 <오마이뉴스>가 되도록 늘 깨어 있기를 기대한다. 더 하면 길다고 진짜 잘릴 것 같아 이상!" 
#고상만 #장준하 #김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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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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