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성교회 세습, 역사 되돌리는 일

등록 2012.09.29 18:09수정 2012.09.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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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기독교대한감리회(임시감독회장 김기태 목사)는 '목회자 세습 방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1884년 개신교가 들어온지 130년만에 한 획을 긋는 역사였습니다. 그 동안 일부 대형교회가 아들과 사위에게 교회를 물려주어 개신교 안에서만 아니라 사회로부터도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늦었지만 감리교는 목회자 세습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감리교를 시작으로 장로교와 성결교, 침례교, 하나님의 성회(순복음)가 목회자 세습을 법으로 금지하기를 목사로서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미 세습된 교회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더 이상 아버지가 아들에게, 장인이 사위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부끄러움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과 이틀만에 한 대형교회가 당회(목사와 장로가 모여 결정하는 조직)가 목회세습을 결의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왕성교회 당회는 9월 27일 저녁 회의를 열어 길자연 목사 아들 길요나 목사를 후임 목사로 청빙하는 안건을 투표에 부쳤다. 출석 당회원 99명 중 85명이 찬성하고 12명이 반대해 세습 안건은 당회를 통과했다고 29일 보도했습니다.

왕성교회는 오는 10월 7일 공동의회를 열어 세습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할 예정입니다. 공동의회에서 출석 교인 2/3 이상이 찬성하면 세습은 확정됩니다. 공동의회란 세례교인들 전체가 모이는 회의로 모든 교회 최고의결기구입니다. 하지만 겉으로만 최고의결기구 일뿐, 당회가 결의한 것을 뒤집기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공동의회에서 세습이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손봉호 석좌교수(고신대)는 "사회가 한국교회를 어떻게 보겠느냐"며 "복음 전파를 막는 행위"라고 비판했다고 <뉴스앤조이>는 보도했습니다. 특히 손 교수는 "사회에서 세습이 잘못이라고 하는데도 굳이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행위는 자신들만 옳다는 오만한 태도"라고 지적했습니다.

25일에는 한국 개신교에 드리워진 먹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쳤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먹구름이 그 햇빛을 가려버렸습니다. 그 동안 길자연 목사는 논란되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지난 2011년 3월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릎꿇고 기도했습니다. 당시 기도 인도자가 바로 길자연 목사였습니다. 이 대통령 기도 장면이 논란이 되자 길 목사는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대통령도 착실한 신자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한 것이라 봐 주면 좋겠다. 국부(國父)가 겸손히 무릎 꿇는 게 정말 대단한 용기 아니겠나"라고 했었습니다.


민주공화국 대통령을 '국부'에 비유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었고, 대통령과 '장로'를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당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5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을 방문했을 때 길자연 당시 회장은 나 후보에게 "기독교 입장에서는 예배당을 짓는 문제라든지 또 교회와 관련된 제도적으로나 법적으로 불평등한 문제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유념을 해주시고…"라고 했었습니다.

원래 교회는 손해보는 종교인데, 손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길자연 목사 개인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행위가 목사 또는 한기총 회장으로서 한 벌인이었고,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성경 가르침에 어긋난다면 비판받아야 합니다.

왕성교회 세습을 막는 길이 이제 하나 밖에 없습니다. 당회 결의를 부결시키기 힘들지만, 왕성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지혜롭게 판단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습은 역사를 되돌리는 일입니다.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길자연 #왕성교회 #교회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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