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광릉수목원이 이렇게 깊어갑니다

국립수목원, 광릉, 봉선사 여행... 지난 삶을 돌아본 시간

등록 2012.10.14 16:02수정 2012.10.1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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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을수록 세월이 더 빨리 흐르는 듯합니다. 가는 시간을 애써 붙잡아보지만 잡히지 않습니다. 벌써 가을이 왔습니다. 지금까지 계절이 바뀌어도 늘 그런 것이라 여기고 아무 생각 없이 맞이하곤 하였지요.

유난히 무덥던 여름이 가고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옵니다. 또 가을은 그렇게 지나가버리겠지요. 올해는 이 가을을 애타게 잡아보려 합니다. 수목원에 다녀왔습니다. 3년 전 이맘때에 다녀왔으니 벌써 3년이나 지났네요. 그 때보다 3-4일 앞서 다녀오긴 했지만 그 때의 가을 색과 지금과는 많이 다릅니다. 가을은 하루가 다르게 익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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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정경 수목원에도 가을이 왔습니다(2009년 10월 촬영) ⓒ 김정봉


수목원 가는 길은 아름답습니다. 도로 양편에 200살은 넘게 먹은 전나무가 죽죽 뻗어 한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지요. 도로 한편엔 냇물이 흐릅니다. 폭이 좁고 조그마하여 사납지 않습니다. 이 수목원 길 한가운데에 국립수목원이 있고 그 곁에 광릉이 있습니다. 광릉이 있어 흔히들 광릉수목원이라 부르지요. 그리고 수목원 끝에 봉선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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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천 폭이 좁고 조그마하여 사납지가 않습니다 ⓒ 김정봉


500여 년 보전된 산림의 보고, 수목원

세조는 생전에 이곳을 둘러보고 능터로 정한 후 경작과 매장은 물론 산림훼손 방지를 위해 일반 백성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였다 합니다. 이른바 봉산(封山)으로 지정한 것이지요. 수목원 입구에 표석을 만들어 놓아 이곳이 봉산지역이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500여 년 동안 광릉 숲이 이처럼 보존이 잘된 것도 세조 덕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목원에 들어가 봅니다. 양옆으로 잎이 붉게 물들고 큰 나무 밑에 벤치가 있습니다. 영화의 한 주인공이 된 것 같습니다. 키가 큰 나무에 이끌려 그 곳으로 가봅니다. 우리 동요 <반달>에 나오는 계수나무더군요. 노랗게 물든 잎을 한 잎 한 잎 떨어뜨리고 내년을 기약합니다. 단풍이 들 때면 향기가 그윽하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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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나무 계수나무가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동요 때문에 정다운 나무이지요 ⓒ 김정봉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옆에 있는 아내는 <반달> 동요를 부르며 즐거워합니다. 가벼운 발길로 작은 동산에 오릅니다. 동산으로 오르는 길은 휘어져 비밀 정원을 걷는 것 같습니다. 이 동산에 오르면 광릉 숲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리 높지 않지만 시원하게 뻗은 키가 큰 나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릴 적 뛰놀던 뒷동산이 그려집니다.


작은 동산은 당단풍나무 숲으로 되어 그 곳에 들어가면 빨간 물이 드는 것 같습니다. 같이 간 아내의 얼굴도 붉게 달아오릅니다. 이 조그마한 공간만 보면 어느 깊은 산속에 들어온 느낌이 듭니다. 설악산이 부럽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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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단풍 작은 동산 이 숲에 들어가면 붉은 물이 들것만 같습니다(2009년 10월 촬영) ⓒ 김정봉


동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멀리 단풍이 불타고 있군요. 복자기라 합니다. 가을이면 붉게 물들어 단풍의 여왕이라 불립니다.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귀신의 눈병도 낫게 해준다는 말도 있지요. 박달나무와 같이 재질이 단단하여 나도박달나무라는 재미난 이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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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기나무 단풍이 아름다워 단풍의 여왕이라 불립니다 ⓒ 김정봉


올해는 운이 좋은 모양입니다. 산림박물관 앞에서 들국화 전시회를 열고 있군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감국·구절초·해국·좀개미취 등 여러 국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국화차를 한 잔 들고 국화 앞에 서면 국화 향에 취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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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들국화 수목원에 감국·구절초·해국·좀개미취 등 다양한 자생들국화가 전시되어있습니다 ⓒ 김정봉


국화향의 기운으로 숲생태관찰로로 가봅니다. 전나무와 전나무 밑에 겹겹이 쌓인 나뭇잎은  향긋한 향기를 뿜어냅니다. 옆에 같이 걷는 아내의 손을 지그시 잡아봅니다. 이제 아내의 손에는 화장품 냄새는 나지 않습니다. 아들 둘을 키워낸 손이기에 나무 향처럼 천연향이 납니다. 켜켜이 쌓여가는 나뭇잎 두께만큼 우리의 사랑도 쌓여갑니다.

생태 길을 벗어나면 육림호로 이어집니다. 작은 카페도 생겼군요. 여기가 수목원에서 제일 화려한 곳입니다. 좀 인위적인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요. 물가 주변에 단풍나무는 붉은 기를 토해냅니다. 그래도 가을은 단풍나무 단풍이 제일인가 봅니다. 물가의 단풍나무는 물을 빨아들였는지 색이 아주 진합니다. 아주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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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림호변 단풍나무 물기를 머금어서인지 색이 아주 좋습니다(2009년 10월 촬영) ⓒ 김정봉


붉은 단풍은 없고 황갈색 단풍만 있는 곳, 광릉

육림호의 화려한 단풍과 아주 대조적인 곳이 광릉입니다. 광릉은 세조의 능입니다. 사실 광릉이라 하나 거기에는 세조의 능과 정희왕후의 능이 같이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두 능에 하나의 정자각과 홍살문을 두고 있습니다.

능원은 엄숙한 공간이어서 화려한 단풍나무는 없습니다. 종묘에 꽃밭을 만들지 않은 이유와 같습니다. 광릉도 굴참나무가 길을 안내합니다. 가을철이라도 붉은색은 없고 황갈색의 단풍만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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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가는 길 능원은 엄숙한 공간이어서 화려한 단풍나무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핑크빛 아내의 옷이 튀어 보입니다 ⓒ 김정봉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자각만은 붉은 단청을 합니다. 주칠은 왕의 상징이기 때문이지요. 누릿한 빛깔의 능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붉은 색깔이지요. 능원에서는 정자각 단청(丹靑)이 단풍(丹楓)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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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정자각과 황갈색 나무 능원에서는 정자각 단청(丹靑)이 단풍(丹楓)을 대신합니다 ⓒ 김정봉


수목원 끄트머리에 자리한 봉선사

수목원 끄트머리엔 봉선사가 있습니다. 군데군데 손바닥 만한 논과 연밭이 있어 수목원에 비하면 사람 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수목원에서 몸을 치유 받았다면 여기서는 마음과 정신을 치유 받습니다. 봉선사 앞 느티나무도 잎을 떨어뜨리며 가을을 재촉합니다.

봉선사는 고려 광종 20년(969년)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해 운악사라 하였는데 조선 예종 1년(1469), 세조비 정희왕후 윤씨가 세조의 영혼을 봉안코자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절의 이름도 '선왕의 능을 받들어 모신다'(奉護先王之陵)라 하여 봉선사라 하였지요.

봉선사를 말할 때 운허스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운허스님은 청년기에는 일제의 침략에 당당히 맞선 항일투사였고 종교인으로서는 불경의 번역가로서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신 분입니다. 이의 상징물이 '큰법당'이라 적힌 대웅전 편액입니다. 대웅전은 1970년 운허스님이 복원하고 편액은 스님 뜻에 따라 대웅전 대신 '큰법당'이라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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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정경 수목원에서 몸이 치유되고 봉선사에서는 마음이 치유됩니다 ⓒ 김정봉


봉선사는 춘원 이광수와도 연을 맺고 있습니다. 운허스님과 춘원과는 6촌간인데, 해방 후 운허스님이 독립운동가로 명성을 떨칠 때 춘원은 친일파로 낙인찍히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운허스님은 춘원에게 방 하나를 내주며 춘원을 불교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춘원은 여기에서 죄인의 심경으로 기거하게 됩니다. 이런 연유로 몇몇 지인들이 기념비를 세워 춘원과 봉선사와의 연을 기리고 있지요.

가을이 깊어가고 내 나이도 먹어갑니다. 나란히 서 있는 춘원의 기념비와 운허스님의 부도를 보고 조금 떨어져 있는 세조의 능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의 삶은 제대로 살아왔는지 향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찰나 같은 인생의 물결은 억겁 속으로 흘러 사라지나니.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pressianplu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수목원과 광릉은 2009년10월17일, 2012년10월13일에, 봉선사는 2010년8월에 다녀왔습니다
#수목원 #광릉 #봉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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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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