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비틀어진 암후유증 환자도 웃게 한 이것은...

투병으로, 우울증으로 힘든 노인들에게 새 삶의 기회를 준 청노실버앙상블

등록 2012.10.17 14:05수정 2012.10.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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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곱게 물들어 가는 가을빛 같은 소박하고 멋진 여인들이 있다. 비너스 같은 미모는 아니지만 굴곡을 이기고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어가고 있기에 그 여인들의 미소와 마음의 빛은 비너스 못지 않게 빛난다. 예순을 넘기고 70대 중반과 80세도 얼마 남지 않았고 또는 80세를 넘긴 분들도 있다.


사회적으로 우울증이 크게 문제가 되어 우울증의 그림자가 본인의 삶뿐만 아니라 주변의 삶 나아가 사회 공공의 안녕에 문제가 될 정도로 날마다 많은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우울증의 원인을 불시에 찾아온 가족간의 갈등이나 질병과 환경 탓으로 돌리는 영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 암수술을 받고 찾아온 우울증을 이기고 자신감을 얻어 민들레꽃 같은 또는 달맞이꽃 같은 소박한 행복을 찾아서 살아가는 여인들이 있다. 우리들의 어머니뻘이 되고 세상에서는 할머니들이라고 통칭하지만 나는 황혼의 멋진 여인들이라고 지칭하고 싶다.

이 여성들의 모임은 충북 청주의 '청노실버앙상블'이다. '청노'란 '맑은 노인'이란 뜻이며 '실버앙상블'은 '은빛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말한다. 청노실버앙상블 음악반은 크로마하프반과 합창반, 아코디언반 세 개로 나뉘어져 있지만, 이 음악단이 이루어지게 된 원조는 뭐니해도 크로마하프반이다.

크로마하프반은 2007년부터 시작됐다. 음악을 좋아하는 할머니 몇 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악기를 배우고 싶다고 복지관 청각장애 기획자인 내게 말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치열한 공모교육사업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고 악기를 대여해서 시작할 수 있었다.

암수술 후 우울증... '크로마하프' 연주로 즐거운 삶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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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노실버앙상블 충북여성포럼 공연 리허설 ⓒ 이영미


크로마하프반은 단원이 20명 내외이다. 합창단은 40명, 그리고 아코디언반은 18명이다. 최연소 회원이 60대 초반이고 최연장자는 83세이다. 그 중에는 집에 가면 혼자서 벽을 보고 밥 먹는다는 할머니도 계셨고 가부장적인 '호랑이 할아버지'와 사시는 분도 있었다.

작사 시간에는 만나고 싶은데 만나지 못하는 손주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사무치게 가사로 표현한 분도 있었고, 우리 집 안방에 호랑이가 있어 툭하면 큰소리라고 하면서도 함께 살아 고맙다며 애틋한 황혼의 부부애를 나타낸 분도 있었다.


악기를 배우고 싶었지만 우리나라 환경적 특성과 접근이 어려웠던 어머니들. 경제적인 문제도 그랬지만 항상 물 젖은 손이라서,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꿈같은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하는 것인줄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일 년, 이 년, 삼 년 악기연주를 우연히 배우면서 삶이 달라졌다.

한 분은 칠십이 다 된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손주들이 멋있다고 하여서 너무 행복하시단다. 암수술을 받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분은 말한다. 나는 이 분 얼굴 반쪽이 어긋나서 화상이나 안면마비를 가진 여성장애인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야 암투병 후유증으로 인한 것을 알고 놀랐다.

"암수술을 받은 후 한쪽 눈도 입도 내려앉았어요. 사람 앞에 나서는 것도 힘들고 구석만 찾아다녔어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젊었을 때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악기연주에 대한 소식을 우연히 들었어요. 용기를 냈죠. 그렇게 밖으로 나오고 크로마하프 연주단 활동을 하면서 삶에 변화가 생겼어요. 남이 뭐라 하든 즐겁게 살자하고 말이죠. 지금은 구석을 찾지 않아요."

뒤늦게 들어와 항상 자기 의견을 내지 않고 수동적이고 조용한 성품이었던 분은 활동적으로 변했고, 급기야 나중에는 가족공연을 하고 싶어했다. 칠십고개를 바라보고 있다는 어머니는 서울에 거주하면서 청주로 이사와서 우울증을 겪었다. 그 분은 악기연주를 배워 지역을 찾아 나눔연주를 하면서 자신을 가꾸게 됐고, 자신을 가꾸니 삶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서울에서 청주로 이사온 그 분도 갑자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만큼 우울증을 힘들게 겪었다.

"서울에서 주부합창단으로 활동하면서 음악과는 친했어요. 청주로 이사오면서 아는 사람도 없고 소외감이 들면서 우울증이 왔어요. 책을 보다가도 갑자기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여러번 느꼈는데 악기연주를 하면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충동도 사라지고 인생이 즐겁습니다. 배운 걸 남편에게도 들려주면 좋아해요."

평범하고 소박한 작은 꽃들처럼 눈여겨 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는 삶처럼 보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소풍길의 보물찾기 같은 그러한 삶이다.

단풍처럼 인생을 물들이고 있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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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노실버앙상블 2011년 하프공연 ⓒ 이영미


청노실버앙상블은 세월을 거듭하며 지역에 소문이 났다. 올해는 충북여성포럼 여성문화제에 초청공연을 받아 노인 여성들의 현실과 차별에 대한 가사를 개사해서 고기잡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충북에서 처음으로 도심 한가운데인 성안길에서 거리공연도 펼쳤다.

인생의 아름다운 단풍색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여인들에 대해 노인문제를 구세대로 바라보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암이나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우울증이 찾아오더라도 가능한 그것을 스스로 치유하며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모습에 박수를 한정없이 보내고 싶다.

노후의 물질의 빈곤에서 오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독거라는 소외된 현실을 당장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마음에 그림자처럼 드리우는 우울증이나 마음의 빈곤감은 문화예술적인 활동을 통해서 또는 문화예술나눔활동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분들은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악기를 연주하는 실버여성들은 더 이상 실버가 아니다. 그냥 아름다운 멋진 여인들이다. 가을 단풍을 말할 때 우리가 가을이라는 단어보다 그냥 단풍이라고 더 많이 말하지 않는가? 단풍처럼 곱게 인생의 마지막 장을 멋있게 물들이고 있는 그분들에게 깊은 사랑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실벙문화예술교육인식개선 #노인인식개선 #청노실버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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