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후보 옆에 드리워진 '최태민 목사'의 그림자들

[대선후보 검증-박근혜 후보③] 드러나지 않는 정윤회-최순실 부부의 실체

등록 2012.10.23 14:39수정 2016.10.2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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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관계에 연이어 물음표가 달리는 가운데, 최순실의 아버지인 최태민 목사와 그의 가족, 그리고 박 대통령의 과거 행적에 관심이 쏠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해 예전에 내보낸 기사 중 몇 편을 "다시 보는 오마이뉴스" 로 싣습니다(2016.10.29~30)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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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월 19일 최태민 총재가 새마을 국민운동본부 발족에 따른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연합뉴스

지난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가장 곤혹스럽게 했던 것은 최태민 목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었다.

최 목사는 1994년 사망 전까지 사기와 횡령, 권력형 이권개입 등 끊임없는 논란을 부른 인물로,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 후보를 등에 업고 각종 이권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 목사 사후에는 그의 가족들이 다시 한 번 세간의 구설에 올랐다. 최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57)씨는 박 후보가 정치권에 입문한 1998년 이후 실제로 수년간 박 후보 주변을 맴돌았다. 정씨의 아내이자 최 목사의 다섯째 딸인 최순실(56)씨는 수백억 원대의 자산가로 알려져 최 목사가 비리를 통해 축적한 부를 물려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박 후보는 최 목사 가족과 관련된 일체의 의혹을 부인했다. 2007년 당내 후보 검증위 청문회에서 박 후보는 최 목사와 그의 가족과 관련된 의혹들을 "음해성 네거티브 공세"라고 일축하면서 "의혹이 많이 제기됐지만 제가 아는 한 실체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최순실, 새마음대학생 전국회장 지내는 등 '새마음운동'에 관여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도 최 목사 일가를 둘러싼 세간의 의혹은 여전하다. 의혹은 최 목사와 최순실씨가 지난 1980년대 박 후보가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 운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해 전횡을 했다는 것과 재산형성 과정, 정윤회씨가 여전히 박 후보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등으로 정리된다.

최순실씨는 대학생 시절부터 박 후보와 아버지 최 목사가 의기투합해 1977년부터 전국적으로 펼친 '새마음운동'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국대를 다녔던 최씨를 전국새마음대학생 총연합회장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최씨는 1980년대부터 강남구 압구정동과 신사동에서 학원과 유치원, 아동교육관련 사설연구소를 운영했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온라인 유아교육 사이트도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민 목사와 최순실씨가 육영재단 운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 1987년 9월, '외부 세력이 재단 운영에 개입해 재단활동이 설립목적에 어긋나게 사기업화하고 있다'며 육영재단 직원들이 농성에 돌입하면서부터다. 당시 육영재단 직원들이 지목했던 외부세력이 바로 최 목사 일가였다.

1990년 8월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박 후보의 두 동생인 박근영(후에 서영으로 개명), 박지만씨가 '사기꾼 최태민을 엄벌해 최씨에게 포위당해 있는 언니 박씨를 국가원수 유족의 보호 차원에서 구출해 달라'고 쓴 탄원서가 전달되기도 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 하명사건을 담당하는 이른바 '사직동팀'에 최 목사에 대한 내사를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중앙> 1987년 10월호에 따르면, '최 목사에게 우선 보고해야 박근혜 이사장의 결재를 받을 수 있었으며, 딸 최씨도 어린이회관 운영에 개입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일각에선 최순실씨가 1987년 어린이 생활교육기관으로 어린이회관 안에 개원한 '근화원' 운영과 육영재단이 발행하던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와 <꿈나라> 편집에도 관여했다는 의혹 등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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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 7일 고 박정희 대통령·육영수여사 기념사업회장직과 재단법인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돌연 사퇴, 재단운영권을 둘러싸고 동생 근영씨와 알력이 있는 듯한 추측을 불러 일으켰던 고 박 대통령의 장녀 근혜씨가 서울 성동구 능동 어린이회관 내 문화관 1층의 재단이사장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사장직 사퇴이유와 심경 등을 털어놓고 있다. ⓒ 연합뉴스


최태민 사위 정윤회가 2004년 이후 사라진 이유

최순실씨의 남편 정윤회씨는 연세대 71학번으로 알려졌다. 그는 1998년 박 후보가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함께해 2004년까지 사실상 비서실장 역할을 수행했다. 2002년 박 후보가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 총재로 취임했을 때는 총재비서실장을 맡았다. 지난 2007년 대선 경선에서는 '논현동팀'(일명 '강남팀')이란 비선팀을 이끌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심지어 지난 4·11 총선 공천 당시 정씨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거나 그가 현재 '문고리 권력'으로 알려진 박 후보의 보좌진들을 추천했다는 설도 있다.

정씨는 1990년대 중·후반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얀슨' 제과점을, 강남구 청담동에서 '풍운'이라는 일식당을 운영했다. 박 후보는 지난 2007년 검증청문회에서 정씨와의 관계에 대해 "(1998년 보궐선거 당시) 국회의원으로 처음 나왔을 때 상대 후보(엄삼탁)가 안기부 기조실장 출신으로 기세가 등등한 상황에서 정씨가 순수하게 도운 것"이라며 "그게 인연이 돼 돕다가 2004년 당대표 때 그만뒀다"고 했다.

또 박 후보는 "(정씨가) 최 목사의 사위란 것을 알았다"며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당시 정씨가 돕겠다고 해서 순수한 인연이 됐고 이후 입법보조원으로서 도와준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정씨는 2004년 이후 박근혜 후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이 박 후보 캠프 측의 해명이다.

정씨는 박 후보의 해명대로 지난 2004년 이후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다시 불거졌다. 이명박 후보 쪽에서 "정씨가 논현동팀을 이끄는 배후실세"라며 "박 후보와 정씨의 관계를 밝히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박 후보 주변을 오랫동안 조사해온 정치권의 한 인사는 "정씨가 2004~2005년께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것은 이후 박 후보의 대선 준비를 하기 위해서일 것"이라며 "정씨가 '강남팀'을, 홍윤식씨가 마포팀을 이끌며 대선을 준비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정씨는 박 후보의 보좌관 겸 비서실장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박 후보가 지난 2002년 방북했을 때 정씨를 비서실장으로 데려갔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씨는 박 후보의 유일무이한 측근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그동안 박 후보는 유일한 혈육인 박근영과 박지만을 불신해왔고, 박지만의 경우 2004년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하고 나서야 박 후보로부터 인정받았다"며 "그런 상황에서 정씨 부부가 모종의 역할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유치원 운영 성공만으로 수백억 재산 일구었다?

최 목사 일가와 관련된 논란 가운데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재산 관련 의혹이다. 강남구 신사동과 강원도 평창 등에 현재 수백 억원대 규모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정윤회·최순실 부부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과거 최태민 목사가 부정 축재했던 재산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최순실씨는 32살 때인 1988년 7월 다른 2명과 공동명의로 신사동 640-1번지에 661㎡(200평) 규모의 땅을 사들였고, 1988년 12월과 1996년 7월에는 공동지분을 차례로 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됐다. 2003년 7월엔 이 땅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미승빌딩을 지어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 건물의 시가는 160~200억원대로 추산된다. 또 <월간조선> 2007년 7월호는 최순실씨가 27살 때인 1983년 서울 역삼동의 대지 149.1㎡(45평)를 산 적도 있다고 보도했다.

정씨 부부는 평창군 용평면 도사리 일대 17만 9234㎡(5만4218평)의 부동산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04년 6월 매입한 이 땅은 모두 8필지이며 임야 11만410㎡(3만3399평), 목장용지 6만8589㎡(2만748평), 그리고 대지 235㎡(71평)로 이뤄져 있다. 현재 이 땅은 30억 원대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최태민 목사의 의붓아들(최 목사의 다섯 번째 부인의 전 남편 아들)인 조순제씨는 "최 목사가 1975년 박근혜 후보를 처음 만날 당시에는 서울 불광동의 쓰러져 가는 단칸방에서 전화도 없이 살았다"고 폭로했다. 당시 조씨는 수백억 원대 재산가로 알려진 최 목사의 친인척들이 박 후보와 최 목사가 만나기 전까지 가난했었다며 "박 전 대표는 최 목사 유족의 재산형성과정을 모를 리가 없다"고도 주장했다.

당시 박 후보는 "어떻게 육영재단 돈을 빼서 착복할 수 있겠느냐"며 "천부당만부당하고 말도 안 된다"고 최 목사 일가의 비리 의혹을 부인했다. 최순실씨도 검증위에 낸 서면답변서를 통해 "유치원 운영이 잘 돼서 강남에 부동산을 보유하게 됐으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박 후보 측 김재원 의원도 "2007년 정씨 부부의 재산을 역추적해 보니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니라 강남에서 운영하던 유치원이 성공하면서 재산을 불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최순실씨의 강남 부동산 취득 시점이 20~30대였다는 점에서 유치원 운영 성공만으로 거액의 부동산을 사들였다는 해명을 쉽게 납득하기 힘들고, 정씨 부부의 평창 땅 매입 시점이 정씨가 박 후보 보좌관을 지낼 때 이뤄진 것이라면 박 후보 핵심 측근이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심지어 정씨 부부가 박 후보의 숨겨놓은 재산을 관리해왔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정씨 부부의 빵집·식당·유치원 경영은 이러한 재산관리를 숨기기 위한 위장술이라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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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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