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사진을 보면 울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서평] 이 땅의 부모들에 바치는 사모곡 <삶의 도구>

등록 2012.11.01 10:29수정 2012.11.0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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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도구> 겉표지 ⓒ 프리스마

다른 사람들은 가을이 깊어짐을 무엇으로 느낄까. 난, 이즈음 채소를 파는 가게나 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발무로 김장철 가까이 깊어져 가는 가을을 느끼곤 한다.

무청이 달린 큰 무 5개를 묶어 파는 다발 무(동치미 무, 김장 무)는 이즈음부터 김장철까지만 볼 수 있는데, 어린 시절 몇 년 해마다 가을이 깊어지는 이즈음에 엄마는 노점에서 다발무를 팔곤 했다.

부모님은 평생 농부로 살아왔다. 땀 흘려 가꾼 농작물들이 헐값에 팔리는 걸 자주 보며 자랐다. 아깝고 억울하기 이를 데 없지만, 차떼기로 헐값에 팔지 않으면 종자 값마저 건질 수 없고, 워낙 가난해 갈아엎는 것으로 호소할 수도 없는 처지라 어쩔 수 없이 팔곤 했던 것 같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 그랬다. 우리 부모님도 그중 하나였다.

비닐하우스가 그리 보편화되지 않았던 70년대 중반,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심어 수확할 수 있는 것이란 배추나 무, 쪽파 등 김장에 필요한 것들뿐이라 어느 집이나 이런 것들을 심다보니 가을이면 넘쳐났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헐값에라도 팔아 돈을 만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엄마는 어느 해 부턴가 배추나 무를 차떼기로 넘기며 김장할 것을 좀 넉넉하게 남겨 4일과 9일에 서는 오일장인 원평장(전북 김제시 금산면 일대)에 내다 팔곤 했다. 고생스럽지만 직접 가지고 나가 파는 것이 차떼기로 파는 것보다 이익이 많았고, 내가 자랄 때 농촌에서 현금을 마련할 길이 거의 없어 이렇게라도 만지는 푼돈이 썩 요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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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3. 경산 ⓒ 신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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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철원 ⓒ 신미식


사실 엄마는 돈이 궁하면 갈무리 해두었던 콩이며 참깨 등을 오일장이 서는 날 내다 팔곤 했다. 돈이 궁해서 팔기도 했지만, 옥수수가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 많이 열려 다 먹을 수 없어서 쪄다 팔기도 했고, 우리가 다 먹지 못할 만큼 많은 열무가 장맛비에 녹고 말지도 몰라 아까운 마음에 몇 단이라도 묶어 내다 팔기도 했다.

우리 엄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동네 다른 아줌마들도, 시골의 많은 아낙네들이 그랬다. 그럼에도 유독 다발무 팔던 이즈음의 엄마 모습을 아리게 기억하는 것은, 엄마가 다발무를 팔던 가을 오일장마다 엄마의 당부대로 장터로 찾아가 국밥이며 팥죽을 얻어먹곤 했는데, 엄마는 그 흔한 국밥 한 그릇 사먹지 않고 집에서 싸간 찬밥을 노점에서 잡수시곤 했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옷깃을 지나 몸속으로 스며드는 초겨울까지 가을 내내.

나이를 먹어갈수록 개천 따라 형성된 노점에서 갈라터지고 거친 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찬밥을 잡수시던 그 모습이 또렷하게 떠오르곤 했다. 어린 나이에 그리 크게 마음 두지 않았던 그 모습이 말이다. 그와 함께 가을 찬바람 속에 까칠해진 손으로 다발 무와 배추, 쪽파 등을 손질해 팔던 모습도 떠올라 거리에서 노점상을 만날 때마다, 요즘처럼 다발무가 보일 때면 유독 더 아프게 떠올라 가슴이 아리곤 한다.

이런 내게 7남매나 되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농사일로 손끝이 항상 갈라터지고 거칠었던, 농사일과 집안일을 놓을 날이 없어서 싸구려 매니큐어 한 번 바르지 못했던, 농사일이 없는 겨울에는 삯바느질로 쉴 날이 없던 친정 엄마의 손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집 <삶의 도구>(신미식 사진과 글, 프리스마 펴냄)는 울컥, 목 메이는 슬픔으로 다가 왔다.

"어머니는 13남매를 낳으셨다. 가난한 집에서 그 많은 자식들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의 삶은 얼마나 처절했을까? 살아생전 따뜻하게 어머니의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한 이 막내아들의 눈에 비친 어머니의 손과 발을 기억하고 싶다. 거친 흙을, 질긴 잡초를 파헤치던 그 손은 언제나 퉁퉁 부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어머니의 손과 발, 그리고 깊게 파인 주름진 얼굴은 자식들의 안위를 위해 사용되어진 삶의 흔적이다. 때론 아프고 안쓰럽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주름진 손과 발을 나는 기억한다.

이번 사진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아니 우리 모두의 부모님을 위한 사진이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사용되어진 그분들의 몸을 사진으로 나타내는 작업이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사랑받기에 합당한 우리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이 사진을 이 땅의 부모님께 바친다." - <삶의 도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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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4. 철원 ⓒ 신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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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철원 ⓒ 신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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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5.107.무의도 ⓒ 신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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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77. 강화 ⓒ 신미식


책의 저자인 사진작가 신미식(50)씨는 그의 어머니가 43세에 낳은 13남매의 막내아들로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아이들이 "야, 너희 할머니 오셨다"고 놀려대는 것이 부끄러워 어머니를 외면했단다. 그리고 어찌 어찌, 대부분의 자식들이 그러는 것처럼 살아생전 손 한번 잡아 드리지 못했단다.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것이 여간 죄스럽고 후회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곁에 없는 부모님이 여간 그리운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평생 자식들을 위한 도구로 살았던 부모님을 찾아 지난 10년간 강화와 철원, 의성, 나주, 고성 등에서 이 땅의 부모들을 만나 찍고 찍었단다. <삶의 도구>는 이렇게 찍은 사진 100여 컷을 간추려 엮은 사진집이다.

"세상엔 외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다른 이에게서 내 부모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이다." - <삶의 도구>에서

사진들은 모두 흑백이다. 작가는 닳고 닳은 손과 검은 때가 끼거나 귀퉁이가 잘려 나간 손톱, 검버섯이 피고 주름이 깊게 패인 얼굴, 마른 장작처럼 푸석푸석해진 살갗, 하얗게 센 머리카락, 갈라지고 거칠어진 손, 구부정한 뒷모습 등 모질고 험한 세상에서 자식들을 키워내느라 삶의 도구가 되어버린 이 땅 부모들의 모습들을 카메라로 담아 전한다.

사진 사이사이에 어머니(부모님)를 향한 그리움과 죄송함과 살아생전 하지 못했던 말들을 고백하고 있다. 노점에서 찬밥을 잡수시던 어머니에 대한 내 아픈 기억처럼 지난날을 회상하며. 올 한해 엄마와 아버지의 주름은 또 얼마나 늘었을 것이며, 또 얼마나 깊어졌을 것인가? <삶의 도구>를 다시 넘겨 읽는 이 밤, 날 낳은 후 생긴 산후통으로 평생 고생하시는 엄마의 오른 어깨와 팔이 측은하고 걱정스럽기만 하다. 제대로 여유 있게 주물러드리지 못했다는 죄스러움과 함께.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누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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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다른 사진 ⓒ 신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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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다른 사진 ⓒ 신미식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누르지 마라'고 스스로에게 늘 다짐하곤 한다는 사진작가 신미식은 지금까지 10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주로 오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표현해 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그렇게 만난 사진들로 그간 25회의 사진전과 아울러 21권의 사진집을 출간했다.

그간 <고맙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이야기>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누르지 마라> <사진에 미치다> < Colors of the Sea > <천국의 땅, 에티오피아> <행복 정거장> <나는 해병이다> 등 27권의 책을 냈다(공저 포함).

이중 < Colors of the Sea >(신미식 사진, 김환기 씀)는 NLL(북방한계선) 인근의 서해 5도와 이웃 섬들을 돌며 기록한 사진 기행집이다. 이 지역을 기록한 (아마도) 유일한 사진집이지 않을까. < Colors of the Sea >에선 우리나라 해안선을 지키는 해병대 병사들의 긴장(생활) 속 웃음과 애환, 사람의 발길이 그다지 닿지 않는 섬들의 적막 속에 흐르는 아름다움, 그곳에서 고기를 잡고 살아가는 어부들 이야기 등을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삶의 도구>ㅣ신미식 사진과 글 ㅣ프리스마ㅣ2012.9ㅣ18000원

삶의 도구 - tools for life

신미식 지음,
프리스마,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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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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