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가 경제를 살린다고? 이제는 증세를 말할 때

[서평] <보수는 어떻게 국민을 속이는가> 조슈아 홀랜드 지음, 이은경 옮김

등록 2012.11.03 12:36수정 2012.11.03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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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세, 재산세 등 세금고지서를 받을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생활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 등과 같은 준조세마저도 당장은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이 된다. 하지만 납기 전 금액과 납기 후 금액을 한 번 쳐다본 후 납기일을 달력에 꼬박꼬박 적어놓는다.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몇 천 원이라도 아끼기 위함이다. 그리고 선생님께 칭찬받으려는 모범적인 초등학생처럼 바르고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한다. 세금을 깎아준다면 더더욱 고마운 일이다. 정부에 절이라도 해야 할까?

가난한 서민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지금 장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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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수는 어떻게 국민을 속이는가>(조슈아 홀랜드 저/이은경 역) 겉그림. ⓒ 한빛비즈

조세는 그 세목이 다양하고 매우 복잡하다. 하지만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금은 크게 세 가지라고 보면 된다. 소득세, 법인세, 부가세가 그것이다. 흔히 보수주의자들은 가난한 서민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면세 이하의 계층이 약 40%라 하면서 이들은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편 맞는 말이지만 사실을 호도가 우려가 크다. 부자감세의 정당성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부자든 서민이든 모두 내는 세금이 있다. 전체 국세 세입에서 약 27%를 차지하는 부가가치세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나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주유소에서 기름을 주유할 때 등 거의 모든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부가세를 내고 있다. 재벌 회장이든 노숙자든 똑같이 부가세(10%)를 내는 것이다. 그러니 고환율 정책으로 수입 물가가 오르면 결국 부가세도 덩달아 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부가세는 간접세이기에 정부의 입장에서는 용이한 세수 확보 방법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소득세가 누진적인데 반면 부가세는 역진적이므로 서민들에게는 더 부담이 된다. 결국 부가세 인상은 전반적인 물가상승 문제뿐 아니라 동시에 서민들의 조세 부담마저 가중시키게 된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당신은 정부에 분명히 세금을 내고 있다. 결국 감세 정책은 부자들이 감면받은 세금만큼 다른 누군가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누구이겠는가? 저자는 말한다.

(감세를 통해) "국가의 세입이 감소해도 국민들은 전화만 하면 경찰이 출동하고 가로등이 켜지길 기대한다. 세입이 감소하면 예산에 부담을 주게 되고 자치단체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직원 일부를 해고하게 될 수도 있다. 이때 지방정부는 다양한 서비스 요금을 올리고 공립대학교 등록금을 인상하며 판매세, 물품세, 재산세를 올려 부족액의 상당 부분을 메우게 되며 이 모든 인상부담은 불균형적으로 빈민과 중산층이 지게 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37쪽)

MB의 추억, 감세를 통해 경기를 살리고 일자리도 늘리겠다고?


요즘 소득세를 올리면 이민가겠다는 부자들이 많다고 한다. 증세하면 사실상 소득의 절반을 '떼인다'며 차라리 투자이민을 가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소득자를 대변하는 보수주의적 전문가들은 조세피난 지역으로 소득을 빼돌리거나 조세 탈루의 위험성이 더 높아질 거라 우려하면서, 이렇게 조세회피의 가능성이 커지면 증세의 효과가 거의 없을 거라 주장한다. 돌이켜보면 지난 참여정부에서 보수적인 언론매체가 만들어낸 '세금폭탄'이란 용어는 보수주의자들의 성공적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주장은 이른바 보수적 경제지가 좋아하는 '래퍼곡선'(Laffer Curve) 법칙에 따른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이 이론은 매우 단순하다. 소득세를 어느 수준까지는 올릴 수 있지만, 최고세율이 어느 특정 지점을 넘어서면 사람들이 세금을 안 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 정부 세입이 감소한다는 가설이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맞을 수도 있겠다. 소득세율이 100%면 즉, 번 돈을 모두 세금으로 낸다면 누가 일할 맛이 나겠는가. 하지만 현재 세율이 적정세율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으로 타당한 증거가 있나? 거칠게 말하면 이건 대선 정국에 대선 후보들의 입을 틀어막아 소득세, 법인세 등의 증세를 막고자 하는 부자들의 압박일 뿐이다.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대선의 최고 이슈가 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사실 부자들, 즉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여전히 감세 정책을 말하고 싶을 것이다. 잠시 2012년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의 주장을 들어보자.

"경제에 돈을 투입하는 방법으로는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줄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부양을 원하는 경우라면 감세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구적인 감세가 경기부양책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30쪽)

보수주의자들은 부자감세가 경기를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지난 대선 MB의 감세 공약은 국민을 기만한 부자들의 탐욕에 편승하여 충실히 실행되었다. 그 결과 감세에 의한 경기부양과 고용 창출이라는 '낙수효과'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의 근거 없는 '신념'임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반대로 계층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어 이제는 고착화의 조짐까지 보이기도 한다. 한 마디로 말해 감세정책으로 재정은 파탄 나고 서민 경제는 사실상 만신창이가 된 셈이다.

이렇다 보니 감세를 주장하고 싶어도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표면적으로 그 누구도 감세를 말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감세정책은 낙선으로 향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감세정책은 부자들을 위한 보수주의자들의 핵심적인 세계관임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누가 끝까지 소득세율과 법인세율 올리는 것을 거부하는지, 그리고 누가 서민과 노동자들의 몫인 부가세를 올리고자 하는지를 말이다.

복지 앞에서 서면 작아지는 정부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큰 정부는 기업 규제를 강화하고 재정 상태를 악화시켜 경제 성장에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적인 MB정부는 작은 정부인가. 재정 건전성이 양호한가.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은 정부의 재정 지출에 반대했는가. 돌이켜보면 보수주의자들의 작은 정부는 복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정부일 뿐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재정 지출(대표적으로 4대강 사업 등 토건사업, 국방산업 등)에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만, 무상급식 논쟁에서 볼 수 있었듯이 그들이 원하지 않는 사업에는 국고를 낭비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 자기들의 이익과 관계있는 사업이라면 정치적 이념에 상관없이 정부의 재정 지출과 확대를 개의치 않는 것이다.

결국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진보와 보수의 실제 차이점은 공공정책의 우선순위 문제일 뿐이다. 시장 경제는 단일한 모습이 아니다. 시장 경제는 한 나라의 역사적 맥락이 녹아들어가 있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경제의 3주체 중 정부를 배제할 수 없다면, 아니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공공정책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 대선 후보들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유권자는 선택해야 한다. 정치인의 실천의지는 결국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보수는 어떻게 국민을 속이는가 - 경제에 관한 가장 큰 거짓말 15가지

조슈아 홀랜드 지음, 이은경 옮김,
한빛비즈, 2012


#부자감세 #감세정책 #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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