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시간 연장 논쟁으로 노동자의 현실을 보라

국민의 투표권을 돈으로 환산하는 저급한 인식에 대한 고언

등록 2012.11.05 11:58수정 2012.11.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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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향한 열기가 점차 뜨거워지면서 투표의 마감 시간 연장에 대해 여야 간의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투표 시간을 늘리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투표에 참여하게 될 것이므로 헌법상 국민의 참정권 보장의 폭을 넓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당에서는 느닷없이 돈 문제 등을 들고 나옴으로써 기본권에 대한 자신의 저급한 인식을 널리 알리는데 정성을 쏟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이에 국민의 한 표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영화 <스윙 보트>를 보고, 유권자의 중요성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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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윙 보트 (swing vote)>의 한 장면. ⓒ 영화 <스윙 보트>

영화 <스윙 보트>는 주인공인 버드(케빈 코스트너 분)는 식품 가공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이며 남는 시간에는 술과 잠을 즐기고 정치에 관한 관심은 전혀 없는 평범한 미국 시민입니다. 그런데 그의 어린 딸은 곧 다가올 미국 대통령 선거의 투표와 관련한 사회과목의 과제 때문에 아빠가 반드시 투표하라고 부탁합니다.

아빠를 믿지 못하는 딸은 아빠의 유권자 등록도 대신 우편으로 해 놓은 상태입니다. 투표일이 다가왔음에도 술과 당구에 정신을 빼앗긴 버드가 투표소에 가지 못하게 되자, 아빠를 기다리던 그의 딸이 대신 투표하기 위해 투표소에 갑니다. 스크린 터치 방식의 기표 화면에 터치하려는 순간, 청소하기 위해 건물 내부로 들어오던 청소노동자의 실수로 전원 플러그가 뽑혀 나가면서 기표 화면은 먹통이 됩니다.

이 작은 사건으로 인해 미국 전체가 혼란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전국의 투표 결과를 집계한 결과 양측의 후보는 같은 표를 얻은 무승부 상태가 되었으므로 버드의 한 표에 의해 미국 대통령이 결정되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뉴멕시코주의 선거법에 따라 버드 한 사람만을 위한 재투표 날짜가 잡힙니다.

이제 공화당과 민주당 양 진영의 선거본부와 지지자들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이목은 버드라는 한 사람에게로 쏠리고 TV의 선거 광고는 오직 버드 한 사람만을 위해 방영이 되는가 하면 그의 집 앞에는 수많은 언론의 취재진과 양측의 지지자들이 버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진을 칩니다. 심지어 현재 대통령인 공화당의 후보는 대통령 전용기에 버드를 초대하기까지 합니다. 한 사람의 유권자를 향한 열흘간의 막대한 물량 공세의 유세 기간이 지나고 주인공이 투표소로 향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투표시간 연장에 대해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다...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요즘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투표권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투표시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에 맞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반대하는 측이 늘어놓는 이유를 보면 정작하고 싶은 속내를 모두 드러내지는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구차합니다. 심지어 돈이 많이 들게 될 것이라는 핑계까지 등장하니 말입니다. 오죽하면 어떤 교수께서는 선거를 아예 하지 않으면 1천억을 절약하게 될 것이라며 일침을 가했겠습니까?

그런데 투표시간의 연장을 주장하는 측도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투표시간에 일해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접근과 인식이 없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투표시간 연장을 주장하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이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논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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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연장노동을 해야한다는 한 인터넷 구인광고 ⓒ 김상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강제로 일을 시키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연장 노동은 당사자인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야만 가능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만 실제로 그것이 잣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사용자의 눈치가 보여서 투표장보다는 일터에 남아야 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야간과 연장 수당이라도 더 벌기 위해 법에서 정한 노동시간을 훨씬 넘겨 일 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누가 의식 없는 국민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습니까? 투표시간을 연장한다고 해서 그러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선거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투표시간을 연장하자는 측도 주인공인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는 연장을 반대하는 측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복지와 노동에 대해 목청을 높이는 후보들 모두 경제의 중심인 노동자의 현실과 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진짜 이유를 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현장을 돌며 수많은 노동자들과 서민들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대통령 후보들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언론을 통해 보도됩니다. 하지만 진정 국민을 위하는 후보라면 겉으로 보이는 현장이 아니라 근본 문제를 직시하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근로기준법 하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묵묵히 먹고 살기위해 일을 해야 하는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기엔 염치가 없다고 생각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선 연장노동과 야간노동 그리고 휴일에도 일할 수 있는 사람만 지원들 받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어째서 노동자들은 불합리한 것을 알면서도 그런 조건에서도 일하고 있을까요? 투표시간 연장은 국민의 참정권 확대와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노동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 최소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는 세상이 된다면 오지 말라고 해도 투표장으로 향하는 국민의 발걸음은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선거 #투표 #노동 #연장수당 #근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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